『어때? 사우나를 하니 좀 낫니?』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면서 배용정이 물었다.
『사우나를 했어도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듯해.』
『대관절 얼마나 마셨길래 그래?』
『많이 마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술이 약해서 그렇지 뭐.』
『누구하고 마셨니?』
『김용식, 문춘호.』
『김용식? 태권도 한다는 놈 말이니?』
『형도 알아요?』
『알지, 그놈은 학교 태권도 대표선수였잖니.』
『제 단짝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문춘호도 알지. 그놈 집이 부자로 알고 있는데, 맞지?』
『목포 갑부의 아들이죠. 난 가난했지만 나하고는 친했어.』
『친구 사이에 부자와 가난이 무슨 상관이야. 그래, 그 애들은 지금 뭘 하지?』
『김용식은 목포의 태권도 도장에 사범으로 나가고, 문춘호는 광주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어요. 내가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다니까 광주에서 내려와서 술을 마셨지.』
밖은 이미 어둠이 덮이고 거리에는 불빛이 현란했다. 우리는 신촌 네거리를 걸으면서 적당한 음식점을 찾고 있었다. 남녀 대학생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쏟아져 나와서 거리를 메우면서 지나갔다. 그들은 더 없이 즐거워하고 들떠 있었다. 같은 또래인데도 나는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이 수심에 잠겨 있고, 그들은 마냥 즐거워하고만 있는 것이 비교가 되었다. 그 비교는 나를 더욱 위축시켰다. 그렇지만 그들보다 내가 한발 더 사회로 나가지 않는가. 나는 그들보다 더 빨리 성공할 것이고,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가가 되리라. 갑자기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알 수 없는 위축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훗날 기업을 일으켜 놓은 다음에 그날 저녁에 신촌거리를 걸으면서 품었던 순간적인 생각을 돌이켜 보면서,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것이 사실로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 왜 그런 쓸데없는 공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들어맞은 것을 보면 그것은 쓸데없는 공상은 아니었는가 보다. 그 당시로서는 내가 기업가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가진 일이 없었고, 다만 지금 들어가는 회사에 잘 적응해 쫓겨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조바심만 있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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