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도 이제는 타성에 젖어 별로 어려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영광스런 것도 아니다. 어쨌든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나는 선배가 보낸 편지를 또 읽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편지를 들고 옆방의 어머니에게 갔다. 그것을 어머니에게 보이는 것은 취업을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은행원이 되겠다는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서울에 올라가서 취직이 된다는 사실은 목포 촌놈인 나로서는 출세일지 모른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편지를 어머니에게 내밀었을 때 어머니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이미 짐작을 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그 편지를 대충 훑어보고 나에게 말했다.
『은행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라는 모양인데, 이곳이 은행보다 더 좋은 곳일지도 모르잖니?』
나로서는 은행보다 더 좋은 직장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깨끗한 유니폼을 차려입은 예쁜 여자들이 많은데, 대관절 어느 직장이 그처럼 여자들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다.
『선배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라. 그리고 올라가서 다녀. 알았니?』
『신사복을 입고 올라오라고 하는데 옷도 없잖아요.』
『옷?』
어머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몸을 일으켜 한쪽 농을 열고 베개를 꺼냈다. 그리고 그 베개 안을 뜯고 그 속에 감추어 놓은 돈을 빼내었다.
『내가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있어. 그렇지 않아도 네가 취직이 되면 쓰려고 준비해 놓았어. 이 돈으로 옷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어머니는 꼬깃꼬깃 접힌 돈을 나에게 내밀었다. 모두 만원권으로 보였는데, 그것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돈을 모아둘 만큼 여유있지 못했다. 계속 땟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에서 그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어머니가 위대해 보였다. 그것은 나에게 돈을 주어서 아부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 어머니는 위대한 법이다. 특히 자식에게는 말이다. 나는 대뜸 손을 내밀어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뭘 망설이니? 싸게 받아.』
어머니가 내미는 돈은 손떼가 묻어 있었다. 그 한 장 한 장의 만원권 지폐가 모아질 때마다 어머니는 아들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의 청사진이든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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