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56)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환철은 경찰서에서 나온 후 이미 가로등이 켜져있는 도로를 걸어 창연오피스텔로 들어서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제 게임은 끝난 것인가? 상승 버튼을 누르고 20층의 숫자를 누르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일단 마무리는 되었다. 어젠가는 한번 겪어야 할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고 너무 쉽게 끝나버렸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 중에도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게임이었고 의도의 소산이었으며, 그 의도보다도 더 완벽하게 알리바이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게임은 끝났다고 해도, 더 이상 자신에게 돌아올 질문이 없다고 해도 더 즐길 여지가 남아 있다. 때문에 아직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환철은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두 사람. 죽음에 이른 두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하지만 선을 위한 악은 합리화될 수도 있다. 중국교포의 가족들에게는 며칠 후면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돈이 전달될 것이다. 서해 방조제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으로 전달될 것이다. 또 한 사람, 승민에게도 거액의 돈이 전달될 것이다. 평생 글만 쓰면서 살아도 될 정도의 돈이 전달될 것이다. 최소한의 예의, 그것이 악을 잉태한 선일지라도 선은 선이며, 그 선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표시일 뿐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희생이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선이다.

20층. 환철은 2020호실 앞에 섰다.

무슨 음악을 들을 것인가. 디주리두. 환철은 디주리두 소리를 생각하면서 혜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누구보다도 좋은 육체를 갖고 있던 여자. 절정의 순간에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줄 아는 여자. 섹스와 생활을 구분할 줄 아는 여자. 손끝과 혀끝으로 느낌이 왔다. 팽팽하면서도 부드러운 젖가슴과 감미로운 혀의 감촉, 그리고 무성한 두덩의 체모 하나하나가 현실처럼 느껴졌다. 이어 아래쪽으로도 느낌이 왔다.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문이 열렸다.

뿌아아아아아- 길게 디주리두 소리가 이어졌다.

환철은 다시 혜경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많은 밤 혜경과 관계를 맺으면서 듣던 디주리두 소리. 그 소리에는 리듬이 있었다. 그 리듬에 따라 혜경의 몸도 따라 반응했다. 여리면서도 강하고, 가냘프면서도 세게 반응했다. 온 몸을 다해 불어대는 디주리두처럼 온 몸을 다 던져 다가들던 혜경이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