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글 부활에서 SW산업 부활로 (4)

벤처투자는 모험이다

소프트웨어(SW) 벤처기업가들은 국내 벤처투자를 곧잘 「저위험 저수익성 투자」라고 말한다. 기술과 의욕뿐인 벤처기업가에게 자금을 대주겠다며 이것저것 담보를 요구하는 국내벤처 투자의 현실을 빗댄 것이다.

이같이 변질된 국내 벤처투자의 모습은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하는 벤처투자 성공률이나 10여년째 벤처기업으로 남은 SW업체들에서도 역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투자 성공률이 높은 것은 벤처자본이 뛰어난 투자능력으로 투자성공률을 높인 결과가 아니라, 투자가치를 잃은 벤처기업에 「투자액을 완전히 회수」할 때까지 계속 투자한 탓이 크다. 그 결과 투자한 벤처기업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정작 자금이 필요한 유망한 벤처기업에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또 성공한 벤처기업들이 몇년째 벤처기업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찌어찌 해서 벤처자금을 유치해 창업하더라도 제대로 된 경영진단을 받지 않아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하고 그대로 성장을 멈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벤처기업가들은 『우리나라 벤처자본에는 애프터서비스가 없다』라고 말한다.

벤처투자는 말 그대로 「모험투자」다. 장래성을 보고 투자해 성공하면 투자금액의 몇십, 몇백배를 회수한다는 게 벤처 투자의 개념이다. 보상이 큰 만큼 위험성도 높다. 그런데도 정책당국과 국내의 많은 벤처자본들은 투자가치보다는 안정적인 수익성을 최우선시하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담보요구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IMF 이후 금융위기가 고조되면서 벤처투자가들의 수익성 추구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활발했던 SW 개발업체에 대한 벤처투자가 올들어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창업투자회사의 관계자는 『SW시장 위축으로 투자 위험성이 높은 상황에서 훨씬 많은 이익을 남기는 확정금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 벤처자본은 창업투자회사와 신기술금융회사를 합쳐 60여개를 헤아린다. 그런데 이들 벤처자본은 높은 설립 납입자본금과 투자 의무비율 등의 각종 규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세제지원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국내 벤처자본들은 투자한 벤처기업의 장래보다도 자신의 생사를 먼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또 국내 벤처자본들은 투자금액을 회수할 수 있는 장치를 갖지 않아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한글과컴퓨터사에 투자한 무한기술투자의 이인규 사장은 『투자회수의 장인 코스닥 시장이 침체된데다 인수, 합병(M&A) 제도마저 활성화하지 않아 벤처자본마다 조심스럽게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벤처자본이 유망한 기업을 발굴해 적극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와 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날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벤처자본 육성도 시급하지만 벤처자본의 역할 재조정과 벤처투자의 실패를 용인하는 풍토조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많은 벤처자본은 벤처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으로 역할이 끝났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벤처기업들은 자금못지 않게 재무분석과 경영, 마케팅 컨설팅과 같은 조언이 필요하다. 벤처자본은 독자적이든 외부 컨설팅 업체와 협력하든 투자한 기업에 대해 자금 이외의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만 벤처기업의 자생을 도울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SW 창업자들은 대부분 한번 이상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한번 망하면 다시는 업계에 발을 붙이기 힘든 우리나라와 풍토가 사뭇 다른 것이다.

「벤처자본은 벤처기업의 젖줄.」 국내 벤처기업의 상징인 한글과컴퓨터가 몰락의 위기에서 그나마 벤처자본의 투자로 회생하는 것을 지켜본 SW업계 관계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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