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사태" 몇가지 의문점

『한글과컴퓨터사는 국내 자본을 끌어들일 수 없었나』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굳이 한글과컴퓨터에 투자할 필요가 있었을까』 『정책 당국은 왜 들끓는 여론을 애써 거스르고 있는가』.이같은 몇가지 의문점을 남긴 채 「한글」사태가 보름을 넘기고 있다.갈수록 궁금증만 더해가는 의문점을 살펴봤다.

<대기업의 한컴 투자>

한컴은 MS와 투자문제를 협의하기 전에 몇차례 국내 기업들에게 투자를 제의했다. 그런데일부 대기업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거절해 결국 유일하게 투자의사를 밝힌 MS측과 와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한컴의 설명이다.

한컴이 국내 대기업들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다.그렇지만 무산된 이유에 대해 양쪽의 주장은사뭇 다르다.한컴측과 접촉한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한컴의 제의가 너무 터무니없었다. 투자금액은 젖혀놓더라고 이찬진 사장이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점이나 우리 회사에게 「훈민정음」을 포기하라는 주장은 왜 우리한테 투자제의를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같은 시기에 한컴과 접촉한 다른 대기업 관계자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어 제의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이를 두고 SW업계는 한컴측이 『MS와 합의는 불가피했다』라는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대기업과 접촉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상태.하지만 한컴은 대기업에 제의한 내용에 대해 입을 열지않고 있다.



한컴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침몰이 예고됐다.한컴이 침몰하면 「한글」사업은 당연히 중단되며그 틈을 타고 MS는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런데 MS는 악화될 여론을 무릅쓰면서 그것도 2백억원이상의 막대한 자금을 들여가며 한컴에 투자하기로 했다.왜 그랬을까.

MS는 『「한글」의 포기를 전제로 한 투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대표적인 SW업체인 한컴이 사라지는 것은 국내 SW산업의 발전에 좋지 않으며 인터넷과 같은 신규 사업에서한컴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현재 한컴에 남아있는 사람이 대부분 「한글」개발인력 뿐이라는 사실은 MS의 투자 설명을 선뜻 납득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SW업계는 『MS는 거의 유일한 경쟁상대인 「한글」이 되살아날 어떤 가능성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에 투자라는 족쇄를 한컴에 채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글」의 저변이 워낙 넓은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한글」이 지속될 경우 조기에 국내워드프로세서시장을 장악하려는 MS의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된다.또 MS의 김재민 사장이 올해안에 워드시장 점유율을 1위로 만들겠다고 의욕을 보인 것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이유로 MS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까지 「한글 죽이기」에 나선 것으로 업계는보고 있다.하지만 MS는 『「한컴에 대한 투자」와 「한컴의한글 포기」는 별개의 사항』이라고 되뇌이고 있다.

<정보통신부의 MS 두둔>

한글살리기 운동이 각계로 확산되던 지난달말 정통부는 『사업성이 없는 기업과 제품은 마땅히 시장에서 떠나야 하며 이번 MS의 투자 무산이 외자 유치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이유로 MS의 투자를 허용할 방침임을 밝혔다.

정통부로서는 최근 김대중 대통령이 빌게이츠를 만나 투자를 권유했으며 배순훈 장관도 외자유치에 발벗고 나선 상황에서 한컴에 대한 MS의 투자를 제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통부는 MS나 당사국인 미국에서 「한글살리기」운동에 대해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으며 「한글 포기」에 대한 여론이 극히 부정적인 상황에서 굳이 허용 방침을 발표할 필요는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정통부가 왜 예민한 시점에 그것도 일방적으로 MS의 손을 들어줬을까.상당수 SW업계 관계자들은 여기에 뭔가 또다른 이유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 섣불리 추측조차 삼가하는 분위기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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