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었다.
길가의 느티나무 잎사귀가 흩어져 내렸다.
김지호 실장은 읽던 원고를 계속 읽어 내려가며 지금 유치장에 있는 승민을 떠올렸다.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다.
우리나라 통신망, 특히 이쪽 광화문 네거리 부근의 통신망과 맨홀에 대해서는 김지호 실장 자신보다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승민. 아까 경찰서에서 보았을 때의 승민의 느낌이 이한글을 지은이로서 승민의 모습과 대치되어 나타나는 것이었다. 너무나 구체적이다. 이 정도로 자세히 파악하였다면 이곳 맨홀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통신사항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김지호 실장은 광화문 네거리 맨홀화재를 비롯한 일련의 사고에서 승민이 관여할 수 있는 역할이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화재에 따른 통신장애를 처음으로 감지하는 부분의한글은 비록 중앙관제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의 통신망을 감시하고 사고 발생시 즉각적인 복구를 총지휘하는 곳으로 나타나 있어 김지호 실장 자신이 책임을 맞고 있는 통제실의 역할과 같았고, 실제 초기상황은 통제실에서 자신이 겪었던 실제상황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긴장감이 도는 중앙관제실. 직원들의 움직임. 청와대와 방송회선 등 주요회선에 장애에 대한 긴박감. 사고 발생시 주요회선을 자동으로 절체시키는 자동절체시스템의 시스템다운. 그리고 위성통신의 송수신 불능에 이은 위성제어 불능상태.
김지호 실장은 자신을 비롯한 통제실 직원들이 대처했던 사항들을 보고 쓴 듯 자세하게 씌어져 있는 내용에 등줄기가 오싹해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전체적인 통신망에 대하여 파악하고 있다면 승민이라는 사람은 다만한글을 쓰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여기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승민의한글은 이제 화재와 혼란의 와중에서 이용자들의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전국의 통신망이 마비되는 것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통화에 실패한 이용자들이 계속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시도하게 되어 전화교환기는 과부하로 시스템이 다운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자신이 그 당시 전국의 교환기에 호를 제한하는 명령어 입력을 지시하지 않았다면 전국의 주요 교환기가 승민의한글처럼 모두 시스템다운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한번 등골이 오싹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김지호 실장은 원고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제한글의 내용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있었다.
여자였다. 남자였다.
요철(凹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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