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엔, 달러 환율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급속한 상승세를 거듭해 최근에는 달러당 1백40엔대를 육박하고 있다. 이같은 상승은 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수치다. 최근 들어 급격한 엔저로 인한 세계경제의 침체를 우려한 미국 정부의 개입에 따라 엔화약세가 다소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현재의 엔 환율은 지난해 말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백20엔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단기간에 무려 15%나 절하된 셈이다.
이같은 엔저현상은 일본경기의 장기침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올 들어 일본 정부의 잇따른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는 소비위축으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다 동남아 외환위기로 인한 경기회복 지연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엔저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달러당 1백50엔 이상으로 상승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단기간에 엔화 급락세가 지속될 경우 아시아 경제는 물론 미국 등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수준의 엔저 상황이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국내 금융 및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에 따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우선 엔저현상은 최근 들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금융시스템 및 외환사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엔저현상의 지속으로 중국 위안화까지 평가절하될 경우 아시아국가들의 금융시장은 혼란의 늪으로 더욱 깊숙이 빠져들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 겪고 있는 IMF 한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 및 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대외무역 수지를 개선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엔저현상이 우리나라 경제회복에 적지않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엔, 달러 환율이 1백40엔 수준으로 1년간 지속할 경우 우리나라의 상품수지적자 규모가 15억 달러에 달할 것이고 최근 민간경제연구소는 분석하고 있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수출구조에 비추어 엔저가 가져다주는 타격은 더욱 크다. 최근 들어 호조를 보이고 있는 대미, 대유럽 수출의 경우 과반수의 제품이 일본산 제품과 경쟁하는 품목으로 가격인하 압력 및 수출 채산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전제품의 경우 IMF위기 이후 환율인하로 수출단가가 25% 이상 하락했지만 엔저로 인해 경쟁대상인 일본제품에 대한 가격경쟁력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국산 가전제품의 수출은 고가 제품의 경우 일본산과, 저가 제품은 중국산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대부분 중저가 제품 위주로 해외시장을 공략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엔저현상 및 위안화 평가절하 움직임으로 인한 해외바이어의 가격인하 압력은 이미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다 수입선 다변화 조치의 해제와 엔저로 가격경쟁력을 회복한 일본제품의 대한진출이 본격화할 경우 대일무역 적자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물론 환율보다는 국제 수급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도체나 정보통신 제품의 경우 엔저의 직접적인 영향권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고 하지만 국내 전자산업의 전반적인 수출과 내수의 위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 전자업계가 엔저 상황에서 환리스크를 최소화하거나 환율변동 상황을 상시 점검하는 등 비상경영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현재로선 하나의 대응책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좀더 근본적인 대응방안은 제품경쟁력의 확보와 틈새시장 개척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점이다.
엔저의 영향이 악재만은 아니다. 국내 전자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인 부품 및 소재산업의 일본제품 의존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호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어려운 난제들로 둘러싸여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반전의 전기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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