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이찬진의 꿈

한국의 빌게이츠로 존경받아 온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사장은 주변의 찬사만큼이나 꿈이 컸다.지난 89년 4월 대학생의 신분으로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해 낸 그는 하루아침에 한국 소프트웨어(SW)산업의 우상으로 떠올랐으며 이듬해에는 SW전문기업이 거의 전무하던 상황에서 패키지SW 전문업체인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해,한국SW 산업의 선봉장 역할을 맡아 오기도 했다.

지난해 한컴오피스97을 발표하기까지 기능개선을 계속해온 「한글」은 현재까지 판매수량이 2백만개를 넘어섰고 국내시장 점유율 70%이상을 고수하는 세계적으로도 사례가 없는 성공을자랑해 왔다.

이찬진사장은 한컴의 설립 초기부터 탄탄대로의 성장을 계속해 왔다.회사설립 만 3년만인 93년도 매출 1백억원을 돌파했으며 96년에는 SW전문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장외등록하고 사상 최대인 2백21억원의 매출을 올려 기염을 토했다.

사업영역 확장도 계속했다.한컴은 94년에 지오시스템과 소프트라인의 제품인 「프린트마당」을 인수했으며 95년에는 사무용 SW업체인 나라소프트와 통신용SW업체인 한마이크로시스템즈를 합병했다.이어 한컴은 96년 「한글」을 기반으로 한 그룹웨어 시장에, 97년에는 인터넷콘텐츠 사업에 진출해 이찬진사장은 한국의 빌게이츠라는 꿈을 이뤄가는 듯 싶었다.

그러나 한컴이 가장 줏가를 올리던 96년말부터 한컴에 대한 좋지않은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으며 조금씩 하향세를 걷던 한컴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진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한때 종업원수가 2백여명에 이르렀던 한컴은 분사,매각 등의 방식으로 줄여 최근에는 30명 남짓의 초라한 규모로 남았지만 그나마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태가 됐다.

MS의 투자유치와 함께 이찬진사장은 이제 「한글」 개발의 주역이라는 찬사 대신 「한글」을 팔아먹은 장본인이라는 더 매서운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사실 이찬진사장이 워드프로세서로서는 더 이상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사실 꽤나 오래 됐었다. 하지만 「한글만은 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국민들이 무언의 압력 때문에 이 사장은 한글에 더욱 매달릴 수밖에 고뇌를 거듭하기도 했다.

「한글」이라는 무거운 짐을 털어버리는 순간 빌게이츠처럼 되겠다는 야심과 함께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빌게이츠에 강력히 대응했던 이찬진사장의 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빌게이츠에 의해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창호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