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올바른 구조조정 방향

李伯鎔 바이텍씨스템 사장

요즘 신문에 실리는 대기업이나 은행권의 구조조정 기사를 읽으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조조정은 분명 그 기업이 앞으로 더 많은 이윤을 내고 더 성장하기 위해 스스로 변신하는 것이 분명한데, 마치 서로 다른 이익집단에게 더 많은 이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타협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구조조정안만 잘 만들면 누군가가 도와줘서 기업이 다시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물론 상황이 매우 악화돼 곪은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야 하는 고단위의 처방이 필요한 지금, 구조조정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기업의 장래를 주인의 마음으로 진정으로 걱정하고 협의한다면 의견조정에 그렇게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기업이 가장 잘되는 방안이 나올 테니 말이다.

중소기업을 포함한 많은 기업들은 누가 구조조정하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변신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경쟁력이 떨어져 살아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위기상황에는 더욱 그렇다. 이들 기업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구조조정을 한다. 하기 싫은 구조조정을 할 수 없이 남의 시선 때문에 한다면 그것이 제대로 될리가 만무하다.

이를 제대로 하려면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지 방향이 정확해야 할 것이다. 기업 소유주만을 위한 구조조정이면 성공할 수가 없다. 기업은 망해도 소유주는 잘 되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종업원만을 위한 구조조정이어서도 안된다. 기업은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 자기 몫을 많이 나누어 갖기에 급급한 모습도 우리는 보았다. 정치권에 영향을 받는 구조조정은 더욱 안된다. 기업 자체가 살아남고 건강한 체질로 바뀔 수 있는 구조조정이 돼야 할 것이다.

그 다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없어도 되는지가 분명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정보통신업체의 한 사장으로부터 요즘 각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경비절감을 하는데 1순위로 접대성 경비, 2순위는 광고성 경비, 3순위가 정보화 경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한 제조업체 사장은 경비를 줄이기 위해 ISO 9000 인증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어려운 IMF시대에 경비를 한푼이라도 줄여야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무턱대고 삭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살아 남았다 한들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먹을 것이 떨어졌다고 뿌릴 씨마저 다 먹어버리면 그 다음해에는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이는 변해버린 기업환경과 밀려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의식하지 못하고 60,70년대식 근검절약 정신만을 강요하며 회사를 서서히 죽여가는 것이 아닐까.

87년 말 미국의 경제는 회복 불가능하다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예측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최대의 경제 호황기를 맞고 있다. 과연 미국은 불가능해 보였던 경제를 어떻게 회복시켰을까. 그렇게 엉망이던 시스템을 어떻게 다시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 올렸을까.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먼저 정보화와 품질혁신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TQM(Total Quality Management)을 통한 프로세스의 혁신과 경영 시스템의 정보화를 통해 품질을 개선하고 생산 경쟁력을 회복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는 누구나 품질을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이에 걸맞는 투자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 TQM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많은 기업이 실제로 이를 도입하고 있거나 사용했던 경험이 있다. 또한 TQM이 요구하는 요건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기업들이 KS나 ISO 9000, QS 9000 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기업이 이것을 제대로 지키고 따르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ISO 9000과 같은 품질표준시스템은 그 회사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단순히 외부에 보이기 위함만은 아니다. 만일 ISO 9000 인증을 받았으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감사받을 때만 급하게 서류를 만들어낸다면 과연 품질의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와 함께 우리가 미국의 성공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어려운 시기에 공감대를 바탕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전과 가능성을 제시, 이를 추진해낸 기업 경영자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말 당시 미국의 상황이 우리보다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경영자의 구조조정 계획과 방법에 모두가 찬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그들의 계획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목표를 솔직하고 분명하게 표현했고 과감하게 이를 추진하였고 많은 어려움과 반대를 극복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가며 나아갔을 것이다.

자원이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경제기적을 이룬 원동력은 생산하는 힘이었다. 물론 지금은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앞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그동안 우리가 가장 잘 해왔던 생산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일뿐이다. 우리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솔직하고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영자의 리더십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인 것이다. 그리하여 10년이 지난 후 미국의 지금과 같이 우리도 경기의 최고 호황을 누리며 배우기를 원하는 많은 다른 나라에게 우리는 이렇게 하였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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