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대형 컴퓨터기술 국산화라는 기치아래 지난 88년부터 추진돼온 국산 주전산기 개발 및 보급사업이 총 1천1백여대의 보급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10년간의 대장정을 끝내고 신천지 개척을 위한 제2의 장정에 나섰다.
지난 10년 동안 4단계에 걸쳐 추진된 국산 주전산기 개발 및 보급사업은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총 1천2백5억원의 연구비가 투입돼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컴퓨터 관련 대표적인 국책 프로젝트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순수기술진에 의해 개발된 중대형 컴퓨터가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외국 중대형 컴퓨터업체의 파상적인 공세를 뚫고 국내 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것인가 하는 일부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현대전자, LG전자, 대우통신 등 국산 주전산기 4사와 주관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혼연일체가 돼 기술 국산화에 매진해온 결과, 국산 주전산기는 지난해 말까지 총 1천1백42대가 국내 정부기관 및 민간기업의 기간업무에 설치, 운영되고 있다.
이를 기종별로 보면 제1세대인 국산주전산기Ⅰ(일명 톨러런트 기종)은 총 2백42대가 보급됐고 제2세대인 국산주전산기Ⅱ(일명 타이컴)는 총 7백21대가 공급됐으며 제3세대 기종은 1백79대가 판매됐다. 또 지난해 말 개발이 완료된 제4세대 국산 주전산기는 독립 상품화되기보다는 일부 핵심기술만이 기존 3세대 기종에 흡수돼 새로운 주전산기(일명 신국산주전산기)형태로 거듭 태어날 전망이다.
결국 국산 주전산기 개발사업은 현재 주력기종으로 보급되고 있는 제3세대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그동안 축적한 기술 및 경험이 융합돼 있는 신국산주전산기에 바통을 넘겨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현대전자는 기존 국산 주전산기Ⅲ의 후속기종으로 신국산 주전산기(하이서버 UX9000)를 개발,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고 삼성전자, LG전자도 제품개발을 끝내고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대우통신도 조만간 신국산 주전산기를 발표할 계획이어서 올 상반기부터는 국산 주전산기 시장은 신국산 주전산기를 중심으로 한 공급경쟁 시대로 급격히 전환될 전망이다.
이같은 신국산 주전산기 시대의 개막은 국산 주전산기 사업이 지난 10년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개된다는 측면에서 주목되고 있다.
지금까지 판매된 국산 주전산기 중 90% 이상을 공공부문에서 사용했다.
즉 정부가 중대형 컴퓨터산업 육성 차원에서 국산 주전산기를 우선 구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위시한 시장 개방화 바람은 더이상 정부가 국산이란 명분으로 제품을 우선구매할 수 없고 상업화를 위한 기술개발에 직접 나설 수 없게 됨에 따라 정부지원 하에 추진돼온 국산주전산기 사업은 사실상 종료됐다. 이제는 외산 제품과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고 기술개발도 제조업체가 자체적인 계획아래 추진돼야 한다.
이는 국산 주전산기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고 삼성전자의 중대형 컴퓨터, 현대전자의 중대형 컴퓨터, LG전자의 중대형 컴퓨터로 각각 판매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국내 중대형 컴퓨터업체들은 IBM, HP, 선마이크로시스템스등 외국 컴퓨터업체와 국내 공공시장은 물론 민수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정부의 보호막에 안주해온 국산 주전산기 업체들이 냉혹한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적용되는 「시장」에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가는 이제 각 제조업체의 역량에 달려 있다.
한국컴퓨터연구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제 어느 업체가 몇대의 국산 주전산기를 판매해 4사 중 몇 위를 차지했느냐 하는 도토리 키재기식 소모적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약 1조원으로 추정되고 있는 국내시장에서 외국업체와 경쟁해 몇 %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느냐 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0년 동안 축적한 개발경험에 미뤄볼 때 해외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설명하면서 올해부터는 국산 중대형 컴퓨터가 외국 유명 컴퓨터업체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공급되거나 동남아국가의 기간전산망에 투입되는 경우가 빈발할 것이라고 밝혀 98년이 국산 주전산기 수출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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