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우리 경제에 치명타를 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전자는 나름대로 매우 공격적인 내용의 98년도 경영계획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주력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부문의 1단계 해외투자가 거의 마무리돼 상당 수준의 매출증대가 예상되는 데다 제2의 주력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정보통신부문이 서서히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D램가격의 하락현상이 지속되고 있고 IMF사태로 외자조달의 길이 막히면서 사업계획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확장이나 팽창보다는 내실과 긴축을 우선하는 분위기로 반전된 것이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그룹 임원인사에서 재신임된 김영환 현대전자 사장은 " 단국 이래 최대의 위기로 일컬어지는 시기에 또다시 현대전자를 이끌게 돼 어깨가 무겁다"면서 "수익성 없는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신규 투자를 최소화하는 한편 가용지원의 활용을 극대화해 위기를 헤쳐나가겠다"고 올해 각오를 밝혔다.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금리폭등과 재정긴축으로 국내 경기가 급랭할 것이고 금융산업의 구조개편이 잇따르면서 기업의 자금난이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재벌에 대한 채무국들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대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 책임이 무거우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올해는 IMF협약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지금까지의 제도와 관행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전 산업분야의 시장개방 일정이 앞당겨져 국내 산업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자금난이 겹치면서 국내 경영환경은 크게 악화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기업에 어려움이란 늘상 존재하는 것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전자는 무엇보다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갈 계획입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키워야 할 것으로 모든 동원 가능한 자원을 모아 집중 육성할 작정입니다.
수익성 없는 사업 정리 -전반적인 상황을 미뤄볼 때 98년은 양적 팽창보다는 내실 경영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올해 현대전자의 기본 경영방향은 무엇인지요.
▲그동안 국내 대부분의 기업이 겉으로는 내실 경영을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양적 성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실 없는 양적 팽창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현대전자 역시 수익성이 없는 기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경비절감 및 생산성 향상을 적극 도모하는 방법으로 내실을 다져나갈 예정입니다.
정리 대상 사업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지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조립만으로 무분별하게 영역확보에 집착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자신이 있는 한두 분야의 사업을 집중 육성해 세계 일류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회사는 투자회수 기간이 길고 경제성이 낮은 사업은 과감히 정리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다시말해 가능성이 있는 전략사업에 자원을 집중한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반도체부문과 디지털 이동통신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통신부문을 전략사업군으로 선정해 올해 제한된 투자재원을 이 분야 기술개발에 집중할 방침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위기는 외화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가 예사롭지 않게 들립니다. 특히 수출주도형 산업인 반도체부문을 주력으로 하는 현대전자 입장에서는 반도체 수출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입니다만.
▲동감입니다. IMF체제에서 수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선 주력사업인 반도체부문에서는 64MD램의 생산 안정화를 통해 수출확대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는 통신분야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남미 등을 집중 공략해 이동통신시스템과 단말기의 해외진출을 적극 추진하려고 합니다.
슈링크` 기술 개발 박차 -올해 부문별 매출목표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시는지요.
▲매출목표는 내수 2조원, 수출 4조원 등 총 6조원 정도로 잡았습니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보다는 약 40∼50% 정도 늘어난 것입니다.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 이처럼 고도 성장목표를 잡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현대전자의 사업구조가 내수보다는 수출주도형이라는 점입니다. 16 및 64MD램과 TFT LCD, 시스템 IC 등 반도체 및 소재부문에서 4조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64MD램의 양산이 본격화하고 비교적 부가가치가 높은 S램분야의 경쟁력이 높은 데다 TFT LCD분야 역시 높은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회사는 이동통신분야에 대한 기대가 높습니다. 이동통신시스템과 단말기는 세계적인 호황이 계속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지난해보다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IMF사태로 반도체업계의 투자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습니다. 특히 투자의욕 감퇴로 2백56MD램 이상의 제품시장에서 국내업체의 시장지배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올해 현대전자의 시설투자 총액은 약 1조원 정도입니다. 이 중 70%인 7천억원 가량이 반도체부문에 투자됩니다. 안팎의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부문의 시설투자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기도 하지만 수출주도형 사업이라는 측면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분야라는 의미지요.
최근 급격한 가격하락 및 공급초과로 인해 손익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신제품보다는 제품 소형화(슈링크) 기술개발에 더 비중을 두고 단위당 원가를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 시설투자를 배정했습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문제점으로 메모리분야에 대한 지나친 편식이 지적되곤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반도체산업도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분야에 대한 경쟁력을 높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때문에 메모리와 비메모리사업의 균형있는 발전에 보다 무게를 실을 작정입니다. 특히 올해 비메모리분야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큽니다.
지난 94년 인수한 비메모리 반도체 전문업체인 미국의 심비오스사가 지난해 7억달러라는 기대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는 데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앞으로 본사는 메모리분야, 심비오스는 비메모리분야 사업을 주도하면서 우리 반도체업계의 오랜 숙원인 반도체산업 균형 발전의 모범답안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통분야 결실 가시화 -최근 들어 정보통신분야를 반도체에 이은 제2의 주력사업으로 육성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사실 최근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디지털 이동통신분야에 삼성, LG와 같이 참여했으면서도 사업성과는 매출분야에서 이들에 크게 뒤지지 않았습니까. 통신분야를 주력사업으로 성장시킬 복안이 있으신지요.
▲정보통신, 특히 디지털 이동통신분야는 지난 수년간 투자가 집중됐으면서도 결실이 미미했던 부문입니다. 이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통신분야에 전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이동통신분야에 뛰어들면서 기반기술이 부족했다는 점과 모든 정보통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유선통신분야에 기술이나 제품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최근 유선 국설교환기 사업에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판단합니다. 올해부터는 그동안에 뿌려놓은 씨앗의 싹이 트고 본격적인 수확을 할 때가 왔습니다. 최근 이동통신 단말기분야에 「걸리버」라는 새로운 브랜드명을 도입하고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안에 이동전화 단말기와 개인휴대통신(PCS) 단말기시장에서 20%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생각입니다.
내달 첫번째 위성 발사 -지난 수년간 현대전자는 매우 공격적인 해외기업 인수 및 합병(M&A)작업을 벌여왔습니다. 또한 글로벌스타나 텔레데식 등 국제 위성이동통신사업에도 적지 않은 지분을 출자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해외사업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리십니까.
▲M&A나 지분출자 등은 기업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전자가 그동안 실시한 해외투자는 내부적으로 A 이상의 평점을 받고 있습니다. 하드디스크 업체인 맥스터사는 96년과 97년 연속 흑자를 냈고 비메모리 반도체업체인 심비오스사 역시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7억달러라는 놀랄 만한 매출을 달성하지 않았습니까. 특히 이 두개 회사는 한국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이 관심을 쏟지 못하는 분야의 골을 메워주면서 고도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한 우리회사가 지분참여한 글로벌스타는 우리나라 산업의 미개척분야인 위성체사업에 직접 참여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21세기 유망분야로 예측되는 위성이동통신분야에 주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는 점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그렇다 해도 현재의 자금사정으로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투자지분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텐데요.
▲그정도의 여유는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2월 5일 글로벌스타의 첫번째 위성이 발사되면서 세계 각국에서 서비스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투자회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또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텔레데식 프로젝트는 추진사측의 내부적인 문제로 투자가 1년 정도 연기된 상태기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 상황입니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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