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45)

파리스.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의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강 과장이 김지호 실장의 말을 받았다.

『실장님. 그렇습니다. 일리아드에서는 아프로디테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황금사과를 넘겨주고 그리스의 왕비 헬레네를 꾀어 낸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스가 죽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킬레스.

그리스 군단에서 가장 용맹스런 장수.

어릴 적 저승의 세계에 흐르는 검고 쓰디쓴 강물에 몸을 담가 전쟁터에서 결코 죽지 않게 된 아킬레스였지만 손으로 부여잡았던 발뒤꿈치 부근은 그 저승의 강물이 묻지 않아 늘 치명적인 약점으로 남아 있었고, 파리스는 그 약점을 활로 쏘아 아킬레스를 죽인 것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아킬레스의 발뒤꿈치 부근과 같이 치명적인 약점을 말할 때 「아킬레스건」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아킬레스를 죽인 것은 독수리? 김지호 실장은 강 과장의 말을 듣는 순간 독수리라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조금 전 운성리 위성관제소의 은옥과 2호 위성이 정상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의 통화를 할 때 들었던, 제작 중에 교체된 칩에 그려져 있었다는 독수리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독수리.

『강 과장, 그 화면 다시 볼 수 있겠나?』

『아, 실장님. 데이터 입력이 끝나면 바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출현했다 사라지기 때문에 출력을 하지 못했습니다.』

『강 과장, 데이터 입력이 끝나려면 얼마나 남았지?』

『다 끝나가고 있습니다.』

김창규 박사도 다시 데이터가 입력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가득 감겼던 테이프가 거의 다 풀어져 있었다.

정상.

아직까지 데이터의 입력은 정상이었다.

만일 데이터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곧바로 입력이 정지되고 시스템도 정지될 것이다.

김창규 박사는 리듬 있게 풀려 감기는 테이프를 다시 바라보았다. 어째든 조금 후면 시스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이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통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창규 박사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끄덕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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