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보통신 "표준화 체계" 수립을

국내 통신업체들이 미국 퀄컴사의 로열티 추가 요구에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부심하고 있다.

지난 90년 당시 퀄컴사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의 이동전화시스템 관련 특허에 대한 사용료 이용기한이 지난 95년 7월에 완료된 상황에서 퀄컴사가 이후의 CDMA 관련특허 획득에 대해 국내 업체들에 특허료 지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퀄컴사는 CDAM 특허와 관련, 국내 업체당 초기 특허료로 75만달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업체들은 이같은 특허에 대한 기술료가 합당한 수준인지 또한 이후에 얼마만큼의 특허료를 추가로 요구할지에 대해 머리를 짜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낙후된 이동통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디지털 휴대전화분야에서는 선진국보다 먼저 서비스의 상용화에 나서는 등 이 분야의 자립기반 구축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그결과 불과 몇 년 사이에 디지털 이동통신시스템을 개발하고 일부 업체들은 해외수출의 물꼬를 트는 등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선 과감한 기술개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물론 국내 통신업체들에게 관련 기술을 제공한 퀄컴사 역시 지금까지 CDMA 기술제공과 관련, 수천만달러의 수익을 거두었다. 또한 최근들어 중소 통신업체들이 관련 기술도입에 앞다투어 나서 상당액의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벤처기업이었던 퀄컴사는 불과 몇년 사이에 이동통신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보유업체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국내업체들은 퀄컴사의 CDMA 관련 특허료 추가 요구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별도리가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정 업체에 관련 기술이 종속된 상황에서 별다는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퀄컴사의 로열티 문제가 논란을 일으킬 때마다 과거의 협상과정에서 숱한 실기(失機)를 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부나 기업은 당시 CDMA와 시분할다중접속(TDMA) 등 디지털 이동전화방식을 놓고 논란을 겪었던 표준화 방안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CDMA방식을 국가 표준으로 채택함으로써 이에 따른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천기술력이 없는 상황에선 고도의 협상력이라도 있어야만 한층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기술경쟁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개방화시대에서 특정한 기술을 국가표준으로 채택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부담을 수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례는 비단 이번 CDMA기술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보통신 전분야에 널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진 표준화 전략이 해당분야에서의 국내 산업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가의 표준정책이 특정업체의 이익으로 연결되는 일도 없어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특정 기술을 도입할 경우 협상의 여지를 남길 수 있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정보통신분야의 표준화 체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점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정보통신 연구개발 정책이 현시적인 연구개발의 성과물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표준화 방안을 수립하고 관련정책을 추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개방화시대에 원천기술력이 부족한 우리가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보통신분야의 표준화를 전담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항상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정보통신 표준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