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산품 가격표시제 개선 신중 기해야

정부가 다음달부터 시행할 계획으로 마련한 공산품가격 표시제도 개선안에 대해 전자업계가 강력히 반발하고있다는 보도다. 통상산업부는 유통업체의 공정경쟁 환경 조성과 공산품의 가격안정을 위해 가격표시제도 개선안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방침인 데 반해 전자업계는 취지와는 달리 유통시장의 대혼란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 의존하는 중소 가전업체들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우선 시행시기를 연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통산부가 마련한 공산품 가격표시제 개선안은 현재 전자제품을 비롯 공산품에 표시하는 권장소비자가격을 없애고 공장도가격을 공장 출고가격으로 바꿔 표시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개선안은 정부가 그간 제조업체 입장에서 표시하던 가격표를 유통업체 위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가격표시제를 바꾸려는 궁극적인 목표가 소매업자가 자율적으로 소매가격을 표시하는 오픈프라이스제로 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옳은 방향으로 평가할 만하다.

전자업계로선 이렇게 될 경우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던 무기인 가격결정권을 유통업체에게 넘겨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반발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개선안의 내용 가운데는 이밖에 현실에 맞지 않거나 형평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대목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적이다. 공장 출고가격 산정방법에서 제조업체의 제조원가와 판매관리비, 이윤, 제세는 인정하되 주문자상표 생산에 의한 하청업자의 판매관리비 및 제세 등은 비용에서 제외시킨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전자제품의 공장출고 가격은 제조원가에다 제조업자의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 제세, 이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OEM 제품의 경우는 여기에다 하청업체의 판매관리비 및 제세가 추가돼 있다. 따라서 하청업체의 판매관리비와 제세를 제외할 경우 소형 가전제품과 같은 OEM 제품의 판매가격은 현재보다 3∼4% 정도 인하되는 결과가 되지만 이는 결국 중소 가전업체의 경영수지에 치명적인 타격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가전3사 등 대기업에 제품을 OEM 공급하는 중소기업들이 현재도 납품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 개선안이 시행될 경우 지탱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광고, 판촉능력은 물론 영업인력, 물류, 서비스 등 자체적으로 유통력을 갖출 수 있는 자금력이 열악해 독자적인 판매가 곤란한 중소기업들은 그 타격이 더욱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입제품에 대한 표시를 수입업자의 판매관리비 및 제세 등을 포함하지 않은 수입원가로 바꾸기로 한 것 자체는 수입업자들의 판매관리비 과다 책정 등 폭리를 근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옳지만 자칫 외산제품의 수입을 촉진할 수 있는 요인이 많다. 수입업자의 폭리에도 국산제품과 비슷한 가격에 판매할 정도로 제조원가가 싼 외산제품의 가격표시를 국산과 동일하게 할 경우 국내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고 보고 외산제품을 더욱 선호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의식이 확산되고 가격파괴점이 대거 등장하는 등 유통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가격표시제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특히 개방화 시대에서 국내 전자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유통업체와 연계하여 각 단계에서 일어나는 비용의 낭비요소를 없애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한다. 그러나 공산품 가격표시 개선안이 중소기업의 몰락이나 수입품의 시장점유율을 높여줄 우려가 있다면 이는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사항이다. 정부는 이 안의 시행으로 빚어질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 후 시행하도록 신중을 기하기 바란다.

어떠한 제도든 이상보다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아무리 명분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질 경우 무리가 따르고 업계의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지나치게 서둘러기보다 이를 수용할 만한 분위기를 조성한 후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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