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게임시장의 거품은 걷혀가고 있는가.
관련기업들은 멀티미디어PC의 보급확대에 힘입어 PC게임시장이 연평균 40∼50% 이상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올 한해 PC게임시장은 지난해보다 1백50억원 가량 증가한 5백억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이같은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관련기업들의 지난 상반기 매출실적을 감안해볼 때 올해 PC게임시장 규모는 잘해야 지난해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상반기 게임업체들의 전체 매출실적은 전년수준인 1백70억원선에 머물렀다』면서 『그러나 실제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물량은 이보다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국내 PC게임시장 규모가 전년수준에 그치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올 초부터 불어닥친 컴퓨터 유통업계의 잇따른 부도여파 때문이다. 대형 컴퓨터 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이들 업체와 거래했던 게임 유통업체들도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아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처럼 게임 유통업체들이 흔들리면서 게임 제작사들이 제품공급을 잠정적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난 96년까지만 해도 국내에 출시된 게임타이틀은 크게 증가해왔다. 96년의 경우 전년의 2백90편보다 크게 증가한 3백55편의 게임 타이틀이 출시돼 월평균 30편 정도가 선보였다. 그러나 올 상반기의 경우 게임관련 대기업들이 제품공급을 중단하면서 전년수준인 1백70편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초에 불어닥친 부도여진 때문에 기존 총판체제라는 유통구조가 일순간에 무너지면서 제품을 공급해줄 만한 유통업체들이 없어 고육지책으로 제품공급을 중단해야 했다』고 말했다.
LG소프트, SKC, 삼성영상사업단, 쌍용 등 대다수의 대기업들이 지난 2월들어 게임 공급을 중단하거나 출시작을 줄였다. 이같은 분위기는 4월까지 이어지면서 일부 업체들은 매출감소라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유통업체들의 부도여파는 유통구조의 개편을 불러일으키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위축을 가져왔다. 대기업들은 기존의 총판체제 대신 「대리점체제」로 유통망의 개편을 서둘렀다.
LG소프트는 지난 3월부터 기존 총판체제와 병행해서 직판체제 구축에 나서 전국에 30여개점을 협력점으로 확보해놓고 있다. 이 회사는 관계사인 LG유통의 편의점을 통한 게임 타이틀의 판매를 추진하는 등 유통망 다변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쌍용도 지난 4월부터 직판체제의 구축에 나서 현재 전국에 2백50여개점의 협력점을 확보해놓고 있으며, 중소업체인 에스티엔터테인먼트는 프랜차이즈사업에 진출해 체인점 모집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밖에 대농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한메소프트는 「소프트월드」라는 브랜드로 대리점을 구축하고 있으며, 동서산업개발도 대리점체제로 전환하면서 서울 용산의 직매장 2군데를 비롯해 대전 등 전국 주요 대도시에 직영매장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시장의 공백기를 맞아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온 힘을 쏟은 관계로 상반기에 별다른 마케팅을 전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임시장은 양극화현상을 보이면서 게임 수요층의 저변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인기있는 작품, 이른바 빅히트작의 수요는 예상외로 커졌으나 대다수의 게임들이 소비자들의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채 진열대 위에서 사라져야 하는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에 출시돼 올해 상반기 내내 게임시장을 주도했던 시뮬레이션게임의 대표작 「커맨드&컨커 적색경보」와 「삼국지5」 「워크래프트2」 등은 무려 5만개 이상의 판매량을 가볍게 돌파했다. 현재 이들 제품은 꾸준히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면서 10만개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상반기의 유통시장 붕괴라는 어려운 시기에도 이들 게임은 없어서 못팔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7만∼8만개 규모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면서도 『이같은 수치는 예외적인 것으로, 대다수의 게임들은 기본수량인 3천개 수준도 채우지 못한 채 재고로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일부 한정된 작품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몰리면서 전반적으로 게임시장을 키우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한 제품이 10만개 이상 판매되기보다는 한 작품당 1만개씩 판매되는 작품이 10여편에 이르는 것이 오히려 시장활성화에는 도움이 된다』고 덧붙인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PC게임시장에 새로운 변화의 싹이 모색되고 있다. 우선 대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C는 협소한 국내시장에서 더 이상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 국내게임의 해외수출과 함께 일본 세가엔터프라이즈사로부터 동남아 및 유럽 판권을 획득해 이 지역에 대한 수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쌍용정보통신과 LG소프트도 각각 「전사 라이안」과 「스톤엑스」 등을 개발해 해외수출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소 게임 개발업체들 역시 독자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아울러 유통망의 구조개선을 추진하면서 대기업들은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가격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오픈 프라이스」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오픈 프라이스제란 제조업체 및 개발업체가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대신 일선 소매점에서 자율적으로 최종 판매가격을 정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정책의 하나다.
삼성영상사업단, SKC 등 대기업들과 메디아소프트 등 중소기업들이 아예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오픈 프라이스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해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LG소프트 등도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오픈 프라이스제는 전체 업계로 확산될 전망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게임소프트웨어의 권장소비자가격과 실판매가격 간에 40∼50% 가량의 커다란 격차를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권장소비자가격 자체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가격 자체를 불신, 구매를 주저하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오픈 프라이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PC게임시장은 높은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사그라들면서 「정상화」를 향해 치닫고 있다. 앞으로 관련업체들의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국내 게임시장은 한단계 성숙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원철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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