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모의 경제와 "컨텐트산업"

멀티미디어시대가 진전되면서 콘텐트산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기업들이 이 부문에 큰 관심을 기울여 당장에라도 세계적 콘텐트들을 쏟아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적어도 당장 손에 잡힐 만한 결과는 없다. 영화산업에 손을 댔던 여러 재벌 가운데 이미 한곳은 손을 들었다고 알려졌다. 그밖의 재벌그룹 계열 영상미디어 관련사들도 이렇다 할 실적없이 돈을 쏟아부어가며 외국영화 수입에만 열을 올린다고 국내 관련산업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영화, 비디오, 게임을 한덩어리 콘텐트로 보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보이겠다는 의욕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다. 콘텐트가 미래산업으로서 중요성을 더해가리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렇기에 자본 부족으로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기 어렵던 국내 영화, 게임 시장에 대기업들이 자본력으로 활기를 불어넣어보겠다는 의지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콘텐트산업은 분명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재료가 부어지면 일정한 틀 안에서 균질의 생산품이 나오는 그런 산업이 아니다. 새로운 사고, 발상의 전환없이 밀어붙이기식 의욕만으로 당장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현재 영화계에 있는 이들은 재벌들의 영상산업 참여가 크게 두가지 방향에서 잘못된 접근이라고 평한다. 첫째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영상산업이 대량생산된 공산품과 달리 「인간」의 창의성을 토대로 한 창작물이라는 점이 종종 간과된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인간 의지와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제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하나는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른 채 마구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비싼 값에 영화를 들여와 무턱대고 홍보비를 투입하면 장사가 될 거라는 단순한 생각에 대해 오랫동안 영화계에서 일하던 이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고 싶은 얘기는 콘텐트산업의 큰 줄기인 영화라는 것을 대기업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 할지를 생각해봄으로써 미래에 대처할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콘텐트산업은 기본적으로 창의적 인간을 길러내고 개개인의 창의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꽃필 수 없다.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게임이든 그 어떤 종류라도 그렇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환경에 놓여있질 못하다. 창의성을 한창 길러가야 할 청소년기를 입시지옥으로 불리는 대학입시 수험준비로 다 빼앗기며 창의성을 죽여가기에 바쁘다. 그들이 사회로 나서면 처음부터 부닥치는 문제는 개성을 죽이고 사회의 보편성에 길들여지도록 강제된다.

똑같은 가치관과 비슷비슷한 생활양식을 강요받으며 길들여져서는 결코 창의성이 자랄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리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기 시작한 것이 일본으로 본 게임과 애니메이션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올리고 있지만 아직 복합적인 콘텐트산업인 영화 등에서는 유치한 수준임을 상기하면 참고가 되리라 본다. 소니가 할리우드에서 실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세계 영화계에서 유치한 수준인 일본에 비해서도 우리의 수준이 크게 뒤떨어진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수준은 능히 짐작이 가리라 생각된다. 이유는 앞서 지적했듯 사회적으로는 인식의 제약이 너무 많아 창의성이 억압당한다는 것이 그 첫째요, 그로 인해 자본의 부족문제보다도 자본의 적절한 개입 배분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 그 둘째다. 자본을 갖고 콘텐트산업에 뛰어들기 전에 그나마 창의력을 지켜온 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를 먼저 가다듬을 일이며 그 다음에 규모의 경제를 논할 일이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