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보통신산업의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고 있다. 국내에서의 사업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공격적인 해외진출과 엑소더스성 해외이전이 보편화해 가고있다.
이같은 상황변화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해외진출 패턴도 달라지고 있다. 최근의 해외진출은 세계화를 전제로 한 실질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 무역장벽이나 고임금을 해결하는 차원의 소극적인 초기 진출과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 산업선도효과와 주변산업 창출효과가 큰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업종들이 주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외국에 공장, 그것도 조립 등 후공정 분야가 아닌 핵심이 되는 웨이퍼 일관가공 공장을 잇달아 건설하고 있는 것도 해외투자의 최근 특징이다. 여러가지 형태의 장벽을 피하고 앞서가는 시장의 기술을 습득하고 마케팅에서의 이득도 꾀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기업 일각에서는 이같은 해외진출을 국내에 공장을 건설하기가 어렵고 환경도 좋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공장입지가 한정되어있는데다 환경문제 등으로 공장설립 절차가 까다롭고 대단위 공장을 건설할 만한 땅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이유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정부나 금융기관, 그리고 관계기관들의 의식 자체가 경직돼 있어 기업비용이 외국에 나가는 경우보다 훨씬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거명되고있다. 미국의 선두 반도체업체들이 해외에 조립이나 마케팅기지는 많이 확보하고 있으나 핵심공정이나 대단위 투자를 지속적으로 요하는 웨이퍼 일관가공 공정은 거의 자국영토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들의 잇따른 해외 대단위 일관가공 공장건설은 그 득실을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중소업체들의 상황은 한층 심각한 것 같다. 「글로벌 소싱」 등의 정책들로 인해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母기업」이 아닌 「구매자」로 변하고 있는 수급업체들을 좇아 나간다는 것은 거의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 가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의 범용제품, 더 나아가 이제는 중급제품 분야에서까지 집요한 추격으로 인해 해외로 도피해갈 수밖에 없었던 중소업체들의 상당수는 중국, 동남아 등 해외 현지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해외시장에 내다팔기 보다는 국내로 반입하는 데 주력, 그나마 해외공장도 설립할 만한 여건이 안돼 국내 중소 생산업체들을 사면초가로 몰아넣고 있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 때문에 중소업체들 사이에서는 물량유입을 완전 규제할 수는 없겠지만 국내 산업 보호 차원에서 해외생산량의 일정비율만 수입하도록 하는 쿼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저임 후발국가들에 밀려 해외로 나간 국내 업체들이 다시 후발국들의 국내시장 공략 대열에 합세해 국내 중소업체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어차피 후발 경쟁국가들이 점유할 부분을 우리 업체들이 역으로 잠식하는 것이 나쁠 게 없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경쟁의 양상이 이미 국경을 넘어서 글로벌화하고 있으며 국내시장 또한 글로벌마켓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국내 생산이 한계에 부닥쳐 해외로 나간 중소 부품업체들 가운데서도 튜너를 비롯한 일부는 현지공장의 저임을 바탕으로 더욱 세계시장 개척에 힘써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듯 해외로 진출하는 중소업체들도 원가를 줄인다는 소극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타깃 시장은 물론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쟁력의 관점도 심각하게 재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도 과거와 같이 우리기업과 외국기업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게 돼가는 상황에 맞춰 국내 산업에 대한 정의와 지원육성 우선 순위를 정하고, 글로벌화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의 틀을 개선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양화해 가는 산업은 어쩔 수 없다손치더라도 코어산업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해 외국에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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