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은 국내 자동판매기 산업에 있어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도 「총체적 난국」을 겪은 한해였다. 몇몇 대기업들은 새로운 상품을 속속 내놓으면서 불황탈출을 시도했지만 호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으며 전체적으로는 생산, 수주량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었다.
올해 커피자판기, 음료자판기를 포함한 전체 자판기 생산대수는 통계청의 발표자료를 기준으로 5만9천여대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의 6만5천5백대에 비해 10% 가량 줄어든 것으로 지난 94년 6만8천여대에서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영세업체들의 특수자판기를 포함하면 실제 시장규모는 6만여대, 금액기준으로 1천3백억∼1천4백억원 규모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생산, 수주가 줄어든 것만큼이나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특히 지난 4월 두산기계가 자판기 사업을 포기한 것을 비롯해 합동정밀, 제일산전, 삼경산업 등 여러 업체들이 부도로 쓰러지거나 도중하차했다.
두산기계는 지난 92년부터 5년여동안 캔자판기를 생산해 자사 계열사인 두산음료, 호남식품, 범양식품, 우성식품 등에 연간 1천여대의 자판기를 공급해 왔다. 하지만 95년부터 이들 계열사에 대한 공급물량이 현격히 줄어들면서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올 초 있었던 합동정밀의 부도도 업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자판기업과 역무자동화에 주력했던 합동정밀은 방만한 경영으로 부도를 내고 부품 업체들에 피해를 남겼으며, 제일산전은 회사가 다른 그룹에 합병되는 바람에 사업을 자연스럽게 정리했다.
지난 10월 말 부도처리된 삼경산업도 기존 업체들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삼경산업은 토큰자판기, 사무실용 커피서비스기(OCS) 등을 생산하던 업체로 중소업체로서는 제법 왕성한 영업력을 보였으나 모업체인 삼경건설의 부도로 하는 수 없이 도중하차했다.
이외에도 먹는샘물 자판기를 개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던 동진미드이스트가 부도로 쓰러졌으며 지폐식별기 등 부품업체인 새샘코리아도 문을 닫았다. 건강증진법 시행으로 더 이상 시장확대가 어려워진 담배자판기도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이에 따라 담배자판기 전문업체인 한국담배자판기(주)도 조만간 한국담배인삼공사에 넘어갈 전망이다.
지난해 대우전자를 필두로 두산기계의 자판기사업 정리, 잇따른 중소업체들의 부도는 자판기산업이 더욱 더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 들어 대기업들이 저마다 한계사업 정리방침을 밝히면서 자판기산업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대기업들의 경우 그나마 현상유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부도로 쓰러졌던 합동정밀은 지난 10월 신합정밀이 인수했으며 동진미드이스트도 남양기업이 인수해 먹는샘물 자판기사업을 다시 전개하고 있다.
올해 자판기시장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복합형 바람」을 들 수 있다.
커피자판기가 내수시장에서 포화상태에 접어들면서 LG산전을 시작으로 삼성전자, 해태전자, 만도기계 등이 커피, 캔과 즉석복권을 판매할 수 있는 3종 복합자판기를 경쟁적으로 출시, 하반기 들어서는 이 제품들이 주력으로 떠올랐다. 가격이 고가인 데다 수요도 제법 일어 업계의 활력소가 됐다. 반면에 캔자판기나 복권자판기는 수요가 대폭 줄어 최악의 사태에 직면했다. 심지어 롯데기공의 경우 계열사인 롯데칠성으로부터 캔자판기 물량이 거의 발주되지 않다시피해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다. 이같은 상황은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대부분 음료회사들의 음료매출이 적어 자판기 구매를 보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슬러시기 열풍도 대단했던 한해였다. 해태전자가 국내 중소업체로부터 OEM으로 받아 2천5백여대를 판매,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LG산전과 삼성전자도 각각 1천여대씩, 그리고 만도기계가 7백여대를 수입, 판매했다.
한편 올해는 기존 제품들이 부진을 면치 못한 반면 흰돌시스템의 우동자판기, LG산전의 라면자판기, 원일통상의 피자자판기 등 식품자판기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이밖에 오늘우리의 카세트자판기와 한국TMI의 비디오무인자판기, LG화재의 여행자보험 자판기 등도 신상품으로 관심을 끌었다.
<박영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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