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43)

어두운 뒷골목과 사창가에 창궐했던 음률이 100여년 동안의 강요된 잠을 깨고 갑작스런 자유를 누리게 된 재즈. 재즈가 예술이라면 벌거벗은 남녀가 재즈를 들으며 뒤엉키는 것은 더욱 원초적인 예술이었다.

섹스와 재즈는 현대사회에서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섹스 르네상스. 재즈 르네상스. 재즈 르네상스는 곧 섹스의 르네상스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섹스 르네상스와 재즈 르네상스는 고도의 집중력과 감각만이 통하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현상이었다. 육체적인 노동을 수행하던 시기에는 섹스가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 육체의 노동은 그 결과물이 즉시 인간들에게 제공되었다.

사회가 분업화되고 고도화 되어가면서 인간들은 육체적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감각적 현상을 갈구하게 되었다. 바로 섹스가 주는 몰입과 즉시적인 결과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섹스 르네상스 사회를 만든 것이며 재즈도 자유를 얻게 된 것이었다.

사내는 다시 한 번 길게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노래 가사를 되새겼다. 「나의 세계가, 오 나의 세계가 당신 없이는 공허해요.」 사내는 리모콘을 조작하여 모니터의 소리를 정지 시켰다. 밖의 사이렌 소리와 재즈가 좀더 크게 어우러 지고 있었다. 흑인남자가 엎드린 백인여자 뒤에서 밀착과 분리를 계속하고 있는 모니터에서 눈을 돌려 앞쪽 창가를 바라보았다.

테라코타.

사내는 창가에 놓인 아이비 화분 옆에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는 테라코타를 바라보았다.

1820호실 여자와 첫 관계를 나누고 나서 구입한 것이었다. 꽤 비쌌다. 그 작은 흙덩이를 위해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지만 그것은 일종의 투자였다. 작품에 대한 투자라기보다는 여자에 대한 장기투자였다.

테라코타의 여인에겐 유방과 엉덩이만 있었다.

잘 구어진 흙덩이 작품의 불룩한 가슴과 엉덩이는 1820호실에도 있었다. 똑같은 종류의 테라코타였다. 테라코타는 여자에게 섹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도구가 되었다. 늘 바라보고 만질 수 있는 테라코타의 유방과 엉덩이처럼 그 여인도 늘 자유로이 만질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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