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부터 가파르게 상승하던 일본의 엔화가치가 급기야 1백엔당 9백17.79 원을 돌파했다. 엔고에 따라 국내업계도 명암이 교차되고 있다. 수출업계는 엔고의 영향으로 우리상품의 국제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에 의한 수지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주요 핵심부품과 기자재를 일본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업체는 상승일로에 있는 엔고에 적지 않은 불안감과 함께 비상상태 에 돌입하고 있다.
특히 주요 핵심전자부품과 원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오는 국내 전자업계의 고민은 매우 심각하다. 우선 엔고에 따른 원가상승부담이 만만치 않고 이러한 사정을 아는듯 일본의 주요전자부품 공급업체들은 공급가를 기존보다 5~12% 까지 높이고 있을뿐 아니라, 달러로 계약한 공급단가를 엔화로 수정할 것을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핵심전자부품을 둘러싼 일본의 이러한 행태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엔고에는단가조정으로 대처하고, 국제시장에서 시장선점을 위해서는 물량조절등 한마디로 칼자루를 쥔 그들의 입지와 위상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음은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외에도 부품 끼워팔기는 아직도 여전하며, 한국이 독자개발하여 상품화할 경우 가격 덤핑으로 아예 시장에 선보이기도 전에 고사시키는등 독점적 기술과 시장을 가진 일본업계의 횡포는 이만 저만이아니다. 엔고에 따라 국내전자업계가 해결해야할 문제는 단기.중기측면에서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대책강구가 시급할 뿐이다.
단기적으로 주요 핵심전자부품의 공동구매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이다. 본지 에서도 수차 지적한대로 부품의 공동구매는 가격경쟁력 확보와 공급업체의 횡포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사실 천차만별의 수많은 전자부 품을 수요에 따라 공동구매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사용업체 에 따라 제품규격을 약간 달리할 수도 있으며 구매물량과 시기도 서로 다르다는 점 등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동안 각종 조합, 협회를 중심으로 공동구매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동종업계 가 경쟁심리에 기초를 둔 협력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 우리 업계의 고질적 병폐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모두다 공동구매라는 총론에는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막상 세부실천 각론에 이르면 지나친 이기주의 때문에 결렬되는 경우가 많았다.
공동구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원천설계기술부족을 들수 있다.
부품공동구매의대전제는 구매부품의 표준화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설계기술 을 보유하는 것이다. 설계기술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품의 변경은 제품전체에 악영향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속사정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동일부품에 대한 공급 변경조차도 꺼리는분위기는 결국 조립위주의 성장을 구가해온 국내업계의 기술적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계인듯 하다.
이제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대만의 부품공동 구매가 큰 문제없이 잘 추진 되는 것을 분석하여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대만의 성공은 업계가 협력의 필요성 인식과 국가연구기관의 기술적 뒷받침, 그리고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낸 결과이다.
다음은 전자산업의 구조고도화와 국제경쟁력 확보에 필수적인 핵심전자부품 의 국산화개발에 업계와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육성전략이 필요하다. 지금의 엔고는 국내전자업계에 득보다는 오히려 실이 더욱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바로 이때가 과감한 기술개발투자를 통한 핵심전자부품의 국산화에 본격 나설때이다. 정부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다 중도에 힘을 잃어버린 E-21 프로젝트와 같은 기술개발 프로그램을 검토해야할 것으로 본다.
E-21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주요 핵심 전자부품 소재를 집중 개발하여 이들 부품과 기술의 해외 의존도를 과감히 줄여 나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목표와 내용을 재검토.수정하고 원만한 추진이 되지 않았던 사유 를 분석하여 국가적인 추진계획이 재수립되기를 바란다. 특히 WTO 출범이후 정부의 역할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는 기술개발 투자중에서도 핵심 부품.재료와 같은 원천기술개발에 강력한 추진의지를 갖고 끌고 가야할 것으로 믿는다.
핵심부품.재료기술은 전자산업 구조의 인프라로서 파급효과도 지대할뿐 아니라 기술적 파행효과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기발전계획을 수립하여 꾸준히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임을 인식하여 구체화 되기를 기대하면 서 수년전에 기회로 다가왔던 엔고를 내실없이 지나친 전철을 밟지 않기를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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