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자판기 설치 범위를 싸고 관계당국과 관련업계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보사부는미성년자의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서 담배자판기를 소매점안등 극히 제한된 범위내에만 설치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안)"과 이 법시행령을 마련하고 있는데 대해 자판기업계가 자판기를 소매점 밖 5~6m까지는 설치할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논란의 골자다.
담배자판기를 소매점 안에만 두도록 한다는 것은 사실상 담배자판기 설치를금지하는 것과 같으며 이 경우 영세상인의 생존권이 위협당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즉 현재 조그마한 식품가게나 한평도 안되는 좁은 가게에서 담배 를 팔고 있는데 자판기설치를 가게안으로 제한하는 것은 자판기를 없애라는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사부는 강경한 입장이다. 설치 범위를 넓혀 줄 경우 거의 어디에나 자판기를 설치 할 수 있어 청소년층의 담배 구입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것이다. 보사부와 관련업계가 이처럼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자판기가 이제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파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대말 커피나 휴지등을 시작으로 등장한 자판기는 현재 신문, 잡지 는 물론 심지어 스타킹, 구두약, 면도기, 라면, 쌀 등에 이르기 까지 40~50 종에 이른다. 적은 공간에 설치돼 24시간 가동되는 자판기는 자동 발매에 의해 단순하고 반복적인 판매 업무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주고 있다.
이같은 장점때문에 수요도 늘어 현재 국민 2백명당 1대정도인 전국에 20여만 대가 설치돼 있다. 미국.일본등 선진국에서는 자판기가 더욱 널리 보급돼 있는 점을 보더라도 앞으로 우리나라도 자판기수요는 크게 증가할 것은 쉽게예상되는 일이다.
자판기는 이제 현대인의 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앞으로 산업이나 문화적 측면에서 끼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검토해 보지 않으면 안될 시점에 놓여 있다.
당장은 담배자판기 설치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 자판기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보면 담배보다 더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자판기도 얼마든지 등장할 수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자판기로 발생한 부작용도 적지않다. 무허가 자판기가 도로를 침범 해 보행자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것은 다반사 였다. 커피등 음료나 감자튀김 등 음식물을 담고 있는 자판기는 관리소홀로 인해 위생이 문제됐다.
특히 자판기의 상품 용기는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폴등으로 만들어진 1회용품 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데 한몫을 해 오기도 했다.
보사부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담배자판기가 곳곳에 널려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 쉽게 담배를 구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담배는 마약처럼 심각하게 사회 병폐를유발시키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 해악은 이미 잘알려져있다.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할 확률이 크게 높고특히 청소년층에게는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 황폐화 하는 나쁜 영향을 미칠수 있다.
그래서 덴마크나 캐나다등에서는 담배자판기 설치를 법으로 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등 대부분 국가들은 담배자판기 설치를 법으로 금지하지 않고 있다. 우리보다 더욱 강하게 담배에 대해 혐오감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담배자판기 설치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 않는 것은 자판기의 설치규제가 능사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들이 담배에 노출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중요하나 그것을 위해 법으로 담배자판기 설치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없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담배를 구해야 하는 성인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점 외에도 특히 한두대의 자판기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영세민들에게는 작은 일이 아니다.
이같은 방편이 외관상으로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쉽게 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효과는 있을는지 모르나 청소년 흡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에는미흡하다. 청소년들이 본드나 부탄가스 등을 흡입한다고 해서 그 제품 판매 를 금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청소년들에게 자판기를 멀리한다고 해서 금연 이 보장되거나 흡연율을 낮출 수 있다는 생각은 안일한 발상이다.
담배자판기 설치를 완전 자유화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여기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다수의 영세상인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번 담배자판기 설치 논란을 계기로 청소년이 근본적으로 담배를 찾지않는 건전한 정신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사회분위기 조성차원에서 문제를 풀어보려는 노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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