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성림 작가 “한 권의 책이 지나온 삶을 다시 읽게 할 수 있다면”

32년간 사람의 삶을 마주한 의사이자 소설가…고운숨결문학상에 담은 독서와 성찰의 의미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지만 그때마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서운함으로 남기도 하고, 오래전 헤어진 사람의 마음을 한참 뒤에야 헤아리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일을 바라보는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

한 권의 소설이 그런 계기가 되기도 한다. 책 속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가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고,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다.

의사이자 소설가인 진성림 작가는 자신의 장편소설 '그리고 다시, 우리'를 읽고 보내온 204편의 독후감에서 그 모습을 만났다. 독자들은 소설에 대한 감상을 넘어 부모와 자식, 사랑과 이별, 후회와 화해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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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림 작가.

지난 10월 28일 첫 시상식을 마친 제1회 고운숨결문학상. 진 작가에게 문학이 사람의 삶에 남기는 의미와 문학상을 통해 이루고 싶은 바를 물었다.

Q. 독자들이 보내온 글에는 부모와의 갈등, 이별, 후회처럼 이미 지나간 일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소설을 읽다가 자신의 오래된 기억을 다시 꺼내게 되는 걸까요.

A. 살아가는 동안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서운했던 말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르게 들리기도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뒤늦게 헤아리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작품 속 인물의 선택이나 관계를 보면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이지요.

이번에 독자들이 보내온 글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각자가 돌아본 삶은 모두 달랐습니다.

Q. 처음에는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해 시작한 일이 문학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굳이 문학상이라는 형식을 갖춘 이유가 있습니까.

A. 처음부터 문학상을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한 권의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습니다. 독자들의 글을 접하면서 책을 읽는 경험을 서로 나누는 일이 의미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의 해석을 통해 다른 사람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작품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문학은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을 격려하고, 독자들의 진솔한 글을 정성껏 평가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고운숨결문학상이 한 권의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만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Q. 강진호 성신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심사 총평에서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를 언급했습니다. 선생님이 32년간 의료 현장에서 경험한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을 문학으로 풀어낸 점에도 의미를 부여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이셨습니까.

A. 의학과 문학의 관계를 짚어주셨다는 점에서 뜻깊었습니다. 오랫동안 의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온 경험이 제 작품과 무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치료 방법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삶에는 의학적인 설명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나 살아온 시간, 마음속에 남은 기억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 경험을 문학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는 작가로서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강 교수님의 평가는 제가 걸어온 시간과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Q. 204편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 자신에게도 변화가 있었습니까.

A. 제가 쓴 소설을 독자들이 읽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독자들의 글을 통해 제가 제 작품을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면서 인물의 마음과 선택을 고민하지만, 독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인물을 이해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낸 글도 있었습니다.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돌아본 글,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던 아버지의 안부를 뒤늦게 다르게 받아들인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가족과 지나온 시간을 돌아본 것이지요.

Q. 문학상을 만든 당사자이면서 최종 심사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A. 이 문학상을 시작한 사람이 그 결말까지 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문학은 읽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릅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은 글과 심사위원들이 높이 평가한 글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문학상을 만든 사람의 생각이 심사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전문 심사위원들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충분히 논의해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봤습니다.

Q. 고운숨결문학상이 오래 이어진다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까요.

A. 문학상의 권위는 한 번의 시상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응모자들이 자신의 글을 공정하게 평가받았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하고, 수상작을 선정한 이유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처음 시작한 취지를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상금이나 수상자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어떤 글을 만나고, 그 글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Q. 10년, 20년 뒤 사람들은 고운숨결문학상을 어떤 문학상으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까.

A. 누군가에게는 책 한 권이 자신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로 남을 수 있습니다. 오래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지나온 시간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을 나누는 일이 계속됐으면 합니다. 문학상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만나고, 독자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운숨결문학상이 사람의 진실한 이야기를 귀하게 여기고, 한 권의 책이 지닌 가치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문학상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첫 고운숨결문학상에서는 204편의 응모작 가운데 9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상 박현주 씨에게는 상금 1000만원, 최우수상 이승형 씨에게는 500만원이 수여됐다.

진 작가는 첫 공모를 마치며 수상자뿐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글로 보내준 모든 응모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들의 글은 한 권의 소설을 읽고 각자의 삶을 돌아본 기록이자,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게 해준 또 다른 이야기였다.

“문학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지만 결국 다른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머물 때, 문학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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