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약 63억달러(약 8조4155억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탈취되는 사상 최대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해커들이 불과 20분 만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산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북한 해킹 조직이 배후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최근 거래 처리에 사용하는 가상자산 지갑에서 약 63억달러 상당의 자산이 무단으로 유출되는 보안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상자산 해킹 사건 중 최대 규모다.
블록체인 거래 기록에 따르면 해커들은 지난 29일 오후 8시(그리니치표준시·GMT) 직후부터 약 20분 동안 피해 자산 대부분을 탈취했다. 한국시간으로는 30일 오전 5시께다.
바이낸스는 당초 직원의 노트북이 해킹당하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추가 조사 과정에서 다른 보안 침해 지점도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침입 경로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는 해커들이 바이낸스의 거래 승인 체계인 '서명 인프라'를 장악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정상적인 거래 명령처럼 위장한 지시를 내려 지갑에 보관된 자산을 외부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관련 사건을 다루는 홍콩 변호사 조슈아 추는 “쉽게 말해 해커들이 금고의 열쇠를 훔친 것이 아니라, 금고에 돈을 내주라고 명령하는 시스템 자체를 장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격의 배후로는 북한 해킹 조직이 지목되고 있다. TRM랩스를 비롯한 미국 블록체인 분석업체들은 이번 사건의 공격 방식이 과거 북한 해커들의 범행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TRM랩스는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비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건과 이번 공격의 수법이 비슷하다고 밝혔다.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바이비트 해킹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했다.
TRM랩스는 이번 바이낸스 해킹 역시 동일한 조직이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다만 바이낸스 공동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텅은 아직 자체 조사에서 공격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사이버 공격과 가상자산 탈취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반복해서 부인해 왔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북한 측의 공식 입장은 확인되지 않았다.
탈취된 가상자산의 행방도 관심사다. 해커들은 자산을 빼돌린 직후 추적과 동결을 피하기 위해 여러 지갑으로 자금을 분산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피해 자산의 약 절반은 테더와 서클, 리플, 트럼프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체 월드리버티파이낸셜 등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에 의해 동결됐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하도록 설계된 가상자산이다. 테더의 USDT와 서클의 USDC 등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사가 특정 지갑의 자산을 원격으로 동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산이 동결됐다고 해서 곧바로 바이낸스에 반환되는 것은 아니다. 해커들이 해당 자산을 현금화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제한하는 조치에 가깝다.
TRM랩스는 탈취 자산 중 약 24억달러(약 3조2059억원) 상당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현재 동결 조치가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고 추산했다.
싱가포르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인아르고스의 패트릭 탄 법률고문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중앙 발행기관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임의로 동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커들이 자산을 동결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거래소나 중개업체로 보내거나, 수사기관이 개인키를 확보해야만 해당 자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해커들이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복잡한 자금세탁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는 짧은 시간에 수천 건의 거래가 발생한 점을 근거로 해커들이 자동화된 시스템을 이용해 자금 흐름을 숨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산을 단순히 다른 지갑으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주소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이동시키거나 이전에 사용했던 주소로 다시 보내는 등 기존에 관찰되지 않았던 자금세탁 방식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트레이스파이낸스의 베르나르두 브리테스 CEO는 해킹으로 탈취한 자산의 자금세탁이 통상 범행 직후 몇 시간 안에 집중적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해커들이 자금을 다른 거래소나 결제업체로 옮기기 어려워진다”며 “사실상 자산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바이낸스는 이번 사고로 발생한 손실을 자체 자금과 고객 보호 기금을 활용해 충당하겠다는 방침이다.
바이낸스는 보안 사고에 대비해 약 10억달러(약 1조3358억원) 규모의 비트코인 준비금인 이용자 보호 기금(SAFU)을 운영하고 있다. 텅 공동 CEO는 해당 기금과 회사 자원을 통해 피해를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은 가상자산 시장 전반에도 충격을 줬다. 해킹 소식이 전해진 30일 가상자산 가격이 하락했고, 스테이블코인의 전체 시가총액도 감소했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이 가상자산 시장에서 자금을 회수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TRM랩스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전 세계에서 약 150건의 해킹 사건이 발생해 총 29억달러(약 3조8738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이 탈취됐다. 이번 바이낸스 사건 한 건의 피해 규모가 지난해 전체 피해액의 두 배를 웃도는 셈이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