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수출이 사상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에 힘입은 반도체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삼성전자는 3분기 영업이익 107조4000억 원이라는 큰 성취를 이뤄냈다. 국가 경상수지 흑자도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르렀다. 2분기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경상수지 흑자 데이터는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그러나 이 호황을 한국 경제의 전성기로 읽고 환호하기는 이르다. 최근 수출 성장은 반도체, 그중에서도 극소수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2분기 수출 상위 5개 기업이 전체 수출의 50.2%를 차지했다. 상위 5개 기업 수출액은 1년 전 상위 100개 기업의 합계보다 많았다. 2026년 1~9월 기준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41.8%로, 2025년의 24.4%에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상반기 총수출 증가분 1614억 달러 가운데 대기업 기여분은 91.2%였다. 대기업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연배우로 비유한다면, 그러한 배우의 인기를 가능케 하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의 실제 기여는 드러나는 수치상으로는 작을지 모르나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수출 호조는 마치 '괴물투수'가 등장해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야구팀과 같다. 그 선수가 컨디션이 좋을 때는 승리하지만, 부상이나 체력 저하가 오면 팀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잘 나갈수록 조심하고, 자만을 경계하고,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거나, AI 투자 사이클이 꺾이거나, 미·중 기술 규제가 강화되면 한국 수출은 단일 품목과 소수 기업에 노출된 만큼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자동차, 자동차부품, 철강, 가전 등 전통 주력 제조업의 수출은 반도체 급등과 대비해 부진하거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 수출의 취약성은 반도체 수출이 40% 넘게 차지하는 품목 집중, 상위 5대 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기업 집중, 미국, 중국, 아세안 등 일부 시장에 과다하게 의존하는 시장 집중이라는 삼중고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첫째, 반도체 강점을 AI기반 스마트제조와 피지컬AI로 확장해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자동차·로봇·조선·정밀화학이라는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AI를 결합하면 공장 자동화, 산업용 로봇, 드론, 스마트 물류, 디지털 트윈 같은 새로운 수출 상품을 만들 수 있다.
둘째, 전통 제조업을 AI와 결합된 미래 산업으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자동차는 완성차 수출에만 의존하지 말고 배터리·소프트웨어·자율주행·모빌리티 서비스도 함께 키워야 한다. 철강과 석유화학은 탄소저감, 고기능 소재, 바이오소재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시장 다변화를 구호가 아니라 실제 수주로 이어가야 한다. 최근 국제 분쟁 등 지정학적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인도,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는 아직 비중이 작지만 성장 여력이 크다. 일부 기업과 무역촉진 기구에서 예전부터 시행해온 지역전문가 양성을 대학이나 중소기업까지 확대해야 한다.
경제학의 오랜 교훈은 볕들 때 혁신하고 구조조정하라는 것이다. 소비와 생산이 줄고 금리가 오른 상황에서는 구조조정의 고통이 배가 된다. 지금처럼 반도체가 초과이익을 내고 외환 흑자가 커지는 시기야말로, 산업 구조를 다듬을 최적의 시간이다.
수출 신기록은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그 신기록의 이면에 보이는 고도집중 경제를 방치한다면, 오늘의 호황은 내일의 취약성으로 돌아올 것이다. 반도체와 같은 초격차 산업이 두 개, 세 개로 늘어날 수 있도록 지금이야말로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가들이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