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노건기 KETI 원장, “연구실 너머 산업 현장에 유효한 연구 지원…새로운 35년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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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기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지식 축적이나 학술 성과에만 머무르는 연구가 아니라 기업의 실제 매출 증대와 생산성 향상, 그리고 산업 현장의 문제 해결로 직결되는 '유효한 연구'가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존재 이유입니다.”

노건기 KETI 원장이 생각하는 연구원의 존재 이유이자 취임 목표다. 1991년 설립된 KETI는 국내 중소·중견 기업의 기술 혁신과 신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국내 대표 전문 생산 기술 연구기관이다. 정부 지원 예산 없이 자생적으로 과제를 수주하거나 기술 이전, 사업화 등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노 원장은 지난 5월 KETI 제11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산업통상부에서 약 30년 동안 산업정책, 통상전략, 에너지 분야를 두루 거친 그는 대화 내내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적시 공급하는 '실용성'과 급변하는 기술 패러다임에 대응하는 '유연성'을 강조했다.

특히 인공지능(AI) 전환이 가속화하는 이 시기에 KETI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연구개발(R&D) 호흡이 짧아지면서 연구원의 개발 주기나 투자 호흡도 기민해져야 성장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KETI는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노 원장은 '인류의 내일을 설계하는 글로벌 기술 허브'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과감한 R&D 체질 개선과 산업 생태계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취임 100일을 맞은 노 원장을 만나 현재 시각과 미래 청사진, 취임 포부를 물었다.

대담= 안호천 전자신문 소재부품부 부장.

-KETI 원장 취임 100일을 맞았다. 소회는 어떤지.

▲밖에서 바라보던 KETI와 내부에 들어와 접한 KETI는 매우 달랐다. 1400여명에 달하는 임직원과 50여 개 센터·실이 뿜어내는 연구 열정과 기술적 역량은 상상 이상이었다. 전국 21개 이상 연구·사업 현장을 돌며 우리 연구원들 눈빛에서 대한민국 전자·정보기술(IT) 산업을 떠받치는 단단한 사명감을 봤다. 동시에 급변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KETI가 나가야 할 방향성이 무엇인지 한층 명확해진 100일이었다.

-밖에서 본 KETI와 내부에서 본 KETI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외부에서는 KETI를 단순히 정부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유수 연구기관 중 하나로 바라보기 쉽다. 그러나 내부에서 확인한 KETI의 가장 큰 경쟁력은 '현장성'과 '절박함'이었다. KETI는 1991년 대한민국 전자산업 자립을 위해 정부와 70여개 민간 기업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정부 출연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정출연)과 달리, 민간 기업과 직접적인 협력 및 비즈니스 창출을 통해 스스로 성장을 일구어낸 자생 이력을 지니고 있다. 출범 당시 60억~70억원이던 사업 규모가 현재 4000억원 규모로 성장한 동력도 바로 이 차별화된 DNA에 있다.

KETI는 기본적으로 비영리 기관이다. 하지만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처우도 높여야 하고 기관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있다. 단순한 수지 타산보다는 사업의 외연을 지속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KETI 원장으로서 어떤 연구원으로 만들고자 하시는지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KETI를 단순한 연구 기관을 넘어 '인류 내일을 설계하는 글로벌 기술 허브'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지식 축적을 위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기업 매출과 성과로 직결되는 '유효한 연구'를 통해 산업 현장 난제를 해결하는 최고 파트너가 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해외 유수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를 확대하고, 기술 상용화와 지식재산권(IP) 경영을 대폭 강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취임 후 어떤 변화를 줬는지. 단행하신 조직개편의 주요 착안점과 향후 추진할 추가적인 조직 혁신 계획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조직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해 물리적인 틀을 자주 바꾸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급격한 환경 변화 때문에 정부 정책, 대내외 산업 동향에 발맞춰서 유연하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조직개편을 했다.

우선 원내에 분산돼 있던 반도체 소자·공정·패키징 관련 연구 역량을 결집해 '반도체연구본부'를 신설하고 독립된 본부로 만들었다. 둘째, 광주지역본부를 '서남권지역본부'로 확대·개편했고, 오는 12월 1일부터는 기업 협력을 전담하는 부서를 독립된 부서로 마련했다. 1만평 규모 서남권본부는 반도체 패키징, AI, 모바일 등 첨단 산업 R&D 거점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축적된 IP 포트폴리오의 신속한 시장 이전을 위해 '사업화본부'를 원장 직속 편제로 개편했다. 앞으로 환경 변화에 따라 추가적으로 개편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또 보수적인 연구 문화를 깨기 위해 피지컬 AI, 로봇, 드론 등 융합 과제 발생 시 원내 전문가들이 유연하게 결합하는 프로젝트 중심 '매트릭스 연구단' 체계를 도입했다. 예를 들어 피지컬 AI라고 하면 반도체 뿐 아니라 드론 등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목적성이 강한 '연구단'을 구성해 협업 체계를 가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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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기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오른쪽)이 안호천 전자신문 소재부품부 부장과 대담하고 있다.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주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곳을 둘러봤다고 했는데 어떻게 느꼈나.

▲정부 균형발전 프로젝트인 '5극 3특'이나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 등 지역 투자 및 국가 정책 드라이브에 적극 부응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특히 이번에 광주지역본부를 '서남권지역본부'로 이름을 바꿨다. 서남권지역본부가 다양하고 독자적인 R&D 산업을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 상대로 적극적으로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KETI에는 지역본부가 3곳 있는데,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된 R&D나 기반구축 사업을 하고 있다. 동남권지역본부는 기계·방산·항공, 전북지역본부는 농기계, 특장차, 운송 등 농업 기반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피지컬 AI, 로봇 관련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서남권은 원래 모바일, 자동차, 가전 등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AI 관련 사업을 많이 하려고 하고 반도체 부대사업이 많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있다. 단순한 R&D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산업 기술에 연계할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역본부는 단순한 분원이 아니라 지역 산업 생태계 핵심 파트너다. 각 지자체 및 지역 기업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R&D부터 시험·인증, 시제품 제작까지 밀착 지원을 펼치고 있다. 지역별 특화 산업과 연계한 맞춤형 인프라 및 기술 지원을 한층 더 확대하겠다.

-와서 봤을 때 가장 큰 현안은 무엇인가.

▲AI와 관련된 산업 전환이다. 상상하기 힘든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어 수많은 민간 영역이 참여하고 있으며 자원이 투자되고 있다. 산업 전체가 연동돼 같이 가는 양상이다. KETI가 이에 뒤처지지 않고 선도적으로 기술 혁신을 창출하며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대응하고자 한다.

-KETI의 AI 분야 R&D 박차를 가하기 위한 전략이 있다면.

▲AI가 본격적으로 정책과 시장 화두로 들어선 지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KETI는 2개의 AI 연구본부와 10개 이상의 AI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AI 시대 핵심은 'R&D 호흡 단축'이다. 과거처럼 3~4년씩 걸리는 R&D 방식으로는 AI 기술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 개발 주기와 투자 호흡을 한 박자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 KETI는 산업부 등과 협력해 '제조 데이터 AI 라이브러리 구축 사업(M.AX)' 등 피지컬 AI 및 자율제조 대형 국책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10개 업종, 100개 이상 기업의 원료, 공정, 재고 데이터를 체계화해 산업 현장의 AI 전환을 선도하겠다.

-해외 사업이나 파트너십은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우리가 기술 개발을 한다거나 산업 혁신 허브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 개발로는 어렵다. 대내외적인 시너지를 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와의 관계, 해외 파트너와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KETI는 미국 MIT와 로봇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독일 프라운호퍼하고도 배터리 관련 공동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업화 측면에서는 개발도상국 대상으로 다른 연구기관 파트너에 우리가 가진 기술을 이전하거나 특허 이용료를 받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이런 외연 확장이 KETI 연구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에서도 우리를 필요로 하도록 하는 형태의 파트너십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프라운호퍼나 벨기에 아이멕(IMEC)처럼 키운다는 목표도 제시했는데, 필요한 점은.

▲ 연구원의 아이덴티티나 문화와 같은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직 KETI는 유사 업종을 하는 연구원 중에는 규모가 작다고 생각한다. 대신 환경에 대한 발 빠른 적응력이 장점이다. 궁극적으로는 큰 연구원들처럼 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30년 PBS(과제 중심 제도) 폐지 등 R&D 환경이 대전환 시기를 맞고 있다. 정출연은 대규모 전략 과제 중심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KETI는 기업 현장 실제 난제를 해결하는 선제적 아이디어를 제안해 대형·실증형 과제 중심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한편, 정출연이 다루기 힘든 현장 밀착형 중소·중견 R&D 과제를 통해 KETI만의 차별화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임기가 3년이다. 임기 내 목표가 있다면.

▲올해 8월,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연구원은 '인류의 내일을 설계하는 글로벌 기술 허브'를 비전으로 잡았다. 지난 35년이 고민과 성장의 시기였다면 앞으로 35년은 확산과 재도약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한 산업 혁신 거점, 국가대표 연구기관 토대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35살은 사람으로 따지면 청년이 가지는 패기와 중년이 가지는 노련함이 조화를 이루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어떻게 하기에 따라서 KETI의 앞으로 35년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연구원들이 최적 환경에서 연구하고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내 기여가 KETI라는 큰 탑을 쌓는 돌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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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기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 노건기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 원장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서울과학기술대에서 에너지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행정고시 39회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지식경제부 성과관리고객만족팀장, 에너지절약협력과장, 주캐나다대사관, 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과장, 전력산업과장, 무역정책과장, 통상협력국장, 통상정책국장, FTA정책관, 산업기술융합정책관 등 주요 요직을 두루 맡았다.

2022년 실장급으로 승진한 이후에는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 통상교섭실장 등 통상 분야에서 활약했다. 올해 5월부터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원장에 취임해 연구원의 '글로벌 기술 허브' 도약에 힘쓰고 있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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