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해킹이 더 이상 예고된 위협이 아니라 현실의 공격 수단으로 등장했다. 금융권 연쇄 침해 사고는 AI가 취약점 탐색부터 공격 실행까지 자동화하면서 특정 산업을 넘어 모든 기업의 보안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지고 있다.
◇금융사 취약점 훑었다
최근 금융권 침해 사고에서는 AI 도구를 활용한 공격 정황이 포착돼 AI 위협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충격을 던졌다.
지난 주말 신한·KB국민·하나·BNK부산은행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 금융사에서 유사한 침해 사고가 확인됐으며, 금융당국은 복수 금융사 공격에 동일 공격자가 관여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일부 금융사에서는 동일한 IP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공격자가 AI 도구를 활용해 다수 금융사의 외부 노출 시스템을 탐색하고 취약점을 자동으로 찾아 공격했을 가능성도 조사하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사람이 기업별 시스템을 일일이 확인하던 방식보다 공격 대상과 취약점을 빠르게 선별해 공격 속도와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은 은행을 공격한 IP에서 중국어 기반 AI 자율형 침투테스트 시스템 '아르텍스(ARTEX) AI' 흔적이 확인된 정황을 토대로 관련성을 조사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은 구체적인 공격 경로와 AI 도구 활용 범위를 조사 중이다. 이번 사고에서 주목할 점은 개별 금융사별 수법의 차이보다 실제 금융권 공격 과정에서 AI 도구 활용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이다.

◇AI끼리 분업…해킹 문턱 낮춰
아르텍스는 9월 중국 청두에서 바이두 보안응급대응센터(BSRC)가 개최한 '에이전트+ 공방능력 챌린지'에서 우승한 프로젝트다. 본래 기업 시스템 취약점 점검을 위한 침투테스트 시스템이지만 공격에 악용될 여지가 컸다. 취약점 탐색, 공격 경로 설계, 보안도구 실행 등 침투테스트 과정이 실제 해킹 절차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아르텍스는 자체 AI 모델을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용자가 원하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선택해 연결하는 구조다. 연결된 LLM을 기반으로 전체 작업을 설계하는 '플래너'가 목표를 세부 업무로 나누고, 복수의 '워커'가 각각의 작업을 병렬로 수행한다. 워커의 결과가 다시 플래너에 전달되면 다음 작업을 재설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러한 멀티에이전트 구조는 LLM의 안전장치인 '가드레일'을 우회하는 데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공격 목적이 하나의 명령으로 전달되는 대신 정보 수집과 취약점 분석, 도구 실행 등 여러 작업으로 세분화되면서 개별 AI가 전체 공격 목적을 인식하고 차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르텍스 소스코드가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 깃허브(GitHub)에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과거 대비 전문성이 없더라도 손쉽게 공격 환경을 구성할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AI를 활용한 취약점 분석 도구가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고, 공격자 역시 이러한 도구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시대”라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사후 대응으론 늦다…상시 방어체계 전환
AI가 공격 속도를 끌어올린 만큼 방어에도 AI 활용이 필수가 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사람이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방식만으로는 자동화된 취약점 탐색과 공격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신한은행 사고 이후 금융사들이 자체 점검에 나서면서 추가 피해 사실이 연이어 확인됐다. 외부에 노출된 서버와 웹서비스 등 IT 자산을 지속적으로 식별하고 취약점을 점검하는 공격표면관리(ASM)를 상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직원·협력사 계정 관리뿐 아니라 기업 내 AI 관리체계 마련도 시급하다. AI 자율성이 높아지면서 AI 에이전트의 시스템 접근권한과 수행 범위를 통제하는 체계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공격 경로로 활용된 것으로 알려진 웹서비스의 보안도 전면 재진단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고객 이용이 모바일 앱 중심으로 이동했더라도 인터넷에 노출된 웹서비스는 공격자에게 여전히 유효한 침투 경로가 될 수 있다. 이용 빈도가 낮거나 오래된 서비스는 전수 점검하고 불필요하면 폐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공격에서 드러난 웹서비스 보안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관리 후순위로 밀린 시스템이 보안의 '잊힌 허점'으로 공격자의 침투경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외부에 노출된 웹서비스를 전수 점검하고, 불필요한 서비스는 폐쇄하는 등 관리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영빈 에버스핀 대표는 “AI 봇은 외부에 노출된 사이트를 광범위하게 스캔하고 알려진 공격을 반복하면서 취약한 곳을 찾아낸다”며 “기업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거나 관리하지 않는 자산이 손쉽게 공격 경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이번 공격에서도 평소 보안조치 수준에 따라 결과가 갈렸다. 금융당국은 다중인증을 적용하거나 취약점을 사전에 조치한 금융사는 공격 시도가 실제 침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AI 공격 시대에는 새로운 방어기술 도입 못지않게 기본 보안조치를 얼마나 촘촘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느냐가 피해 여부를 가르는 핵심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종현 지니언스 시큐리티센터장은 “공격자는 한 곳만 뚫으면 되지만 방어자는 모든 곳을 막아야 한다”며 “AI 공격에 대응하려면 기존 보안 조직이 상시 대응할 수 있도록 인력과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형 기자 j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