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디지털 커머스가 일상생활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EBANX가 분석한 World Data Lab(WDL) 조사에 따르면 2026년 한국 소비자의 전체 소비에서 온라인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2.8%에 달한다. 미국의 8.9%, 일본의 13.9%와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핵심 중산층이 전체 온라인 지출의 35%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 시장에서는 해당 조사 기준 최상위 소득 계층에 온라인 지출의 72%가 집중돼 있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흥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온라인 지출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만 이들 시장은 인구구조 측면에서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에서는 30세 미만 소비자가 전체 온라인 지출의 25%를 차지하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이들이 이커머스 매출의 절반에 가까운 47%를 만들어낸다. 아직 브랜드 선호도와 구매 습관이 형성되고 있는 이러한 젊은 소비층은 게임, 엔터테인먼트, 뷰티 등 한국이 전략적 경쟁력을 보유한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해외 진출은 한국 기업의 DNA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신흥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전반에 걸쳐 복잡하고 파편화돼 있는 결제 환경이다.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 게임이나 뷰티 브랜드를 발견하더라도 결제 단계에서 제공되는 기존 결제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면 실제 구매로 이어지지 못할 수 있다.
◇ 국가마다 다른 결제 환경… 현지화가 시장 진입의 첫 단계
브라질의 실시간 결제 시스템 Pix, 멕시코의 현금 기반 바우처 결제 OXXO Pay, 인도의 실시간 결제수단 UPI는 고성장 시장에서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해야 할 수 있는 다양한 현지 결제수단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지역 단위의 확장 전략을 수립할 때는 상품과 타깃 고객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결제수단 도입 여부를 국가별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EBANX가 Gravity Game Vision과 진행한 사례가 이러한 접근법을 보여준다. EBANX는 브라질, 칠레, 멕시코에서 'Ragnarok Origin: ROO'에 Pix, 디지털 지갑, 계좌 기반 송금, 현금 기반 결제수단, 카드 등 다양한 현지 결제 옵션을 지원했다. 이 사례는 같은 게임 산업에서도 국가와 이용자 특성에 따라 필요한 결제수단의 조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게임 퍼블리셔 역시 자사 이용자에게 필요한 결제수단을 파악하고 실제 구매 행동을 통해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 결제수단 넘어 체크아웃 전 과정의 현지화 필요
소비자에게 익숙한 결제수단을 제공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현지 통화로 가격을 명확하게 표시하고 고객의 언어로 결제 절차를 안내하는 한편, 모바일 환경에서 전체 구매 여정을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소비자가 결제 승인을 위해 기업의 사이트를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구매 상태가 명확하게 표시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는 결제 과정의 중단이 즉각적인 구매 결정을 방해할 수 있는 게임 산업에서 특히 중요하다. 최근 제주에서 열린 EBANX APAC Payments Summit에서는 Pix 체크아웃 과정에서 필수 입력 항목을 10개에서 4개로 줄인 게임 기업 사례가 소개됐다. 결제수단의 종류뿐 아니라 실제 결제가 완료되기까지의 사용자 경험이 구매 전환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가격 접근성 역시 고려해야 할 요소다. 상품 번들, 진입 가격대, 그리고 적절한 경우 할부 결제 옵션을 현지 소비 패턴에 맞춰 테스트할 수 있다. Payments Summit에서 소개된 또 다른 게임 사례에서는 브라질에서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도입한 뒤 매출이 12%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다만 이는 특정 가맹점의 개별 사례인 만큼 동일한 효과를 일반화하기보다는 기업별로 수익성과 반복 구매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 구독 서비스 확산에 반복결제 인프라도 중요
스트리밍, 소프트웨어, 멤버십 기업의 해외 확장에서는 후속 결제를 안정적으로 수취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현지 결제수단을 선택할 때는 반복결제 기능을 평가하고, 고객이 향후 결제를 어떤 방식으로 승인하고 구독을 관리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브라질의 Pix Automatico와 인도의 UPI AutoPay는 반복결제를 지원하는 현지 결제 인프라의 대표적인 사례다. 일상적인 금융생활이 은행 계좌와 현지 결제 시스템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소비자도 이러한 결제수단을 통해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한국 기업 역시 현지 반복결제 인프라가 자사의 구독 상품과 목표 고객층에 적합한지를 시장별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구현 과정에서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결제 승인 전에 청구 금액과 주기를 명확히 설명하고, 구독 취소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제 수취에 실패했을 때 고객에게 어떻게 안내할지도 사전에 계획해야 한다. 결제 사업자와 함께 허용되는 재시도 방식을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시적인 결제 실패가 발생했을 경우 적절한 복구 절차를 가동하고, 서비스 이용을 유지하기 위해 고객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안내해야 한다.
◇ 시장 진출 이후에는 결제 데이터 분석이 관건
시장 진출 이후에는 구매 과정에서 어느 지점에서 실패가 발생하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체크아웃 완료율과 결제 승인율을 각각 추적하고 국가와 결제수단별 차이를 살펴야 한다. 카드 결제의 경우 카드 발급 은행별 차이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EBANX는 Payments Summit에서 거래 응답 코드와 함께 이러한 요소들을 결제 승인 분석의 주요 지표로 소개했다.
세부 데이터를 분석하면 결제 실패의 원인에 따라 서로 다른 개선책을 적용할 수 있다. 체크아웃 단계에서 이탈이 많다면 구매 과정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고, 카드 승인이 거절된다면 카드 발급사의 응답, 결제 처리 연결 구조 또는 인증 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기업은 결제 사업자에게 현지 매입(local acquiring), 라우팅, 토큰화를 어떻게 지원하는지 확인하고, 제안된 개선 방안의 효과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지도 살펴봐야 한다. 결제 성과 개선 방안은 가설로 간주하고 기업 자체의 실제 거래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업적 성과를 관리하는 대시보드에는 반복 구매와 성공적인 갱신 결제 뿐만 아니라 사기 피해, 환불, 결제 비용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표를 함께 검토해야 승인율 상승이 실제 매출의 질과 수익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지 판단할 수 있다. 제품, 결제, 재무팀이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동으로 책임을 갖는 체계도 필요하다.
새로운 결제수단을 도입하기 전에는 기준선을 설정하고, 도입 이후 실제로 새로운 유료 고객이 늘어났는지 아니면 기존 거래가 새로운 결제수단으로 이동했을 뿐인지 살펴봐야 한다. 가능하다면 같은 기간 동안 유사한 고객 집단을 비교하는 것이 좋다. 이를 통해 어떤 결제 연동에 추가 투자가 필요한지, 어떤 부분을 조정해야 하는지 보다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다.
◇ 현지 결제와 함께 운영 인프라도 갖춰야
기업은 고객에게서 수취한 자금이 최종적으로 자사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지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시장 진출 전에 결제 사업자와 정산 통화와 주기, 외환 비용, 환불 절차, 대사 요건을 정해야 한다. 재무팀은 고객의 개별 구매 내역과 회사가 최종적으로 수취한 금액을 연결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시장에 동시에 진출하는 기업의 경우 통합 결제 인프라를 활용하면 각 시장에 필요한 현지 결제수단을 유지하면서 운영을 단순화할 수 있다. 결제 사업자를 선정할 때도 지원하는 결제수단의 범위 뿐만 아니라 운영 지원과 리포팅 역량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시장과 결제수단을 선별해 진출하고, 실제 결제 완료율과 반복 구매 데이터를 토대로 투자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의 높은 디지털 성숙도는 까다로운 온라인 소비자를 상대해 온 한국 기업에 소중한 경험을 제공한다. 신흥시장은 이러한 경험을 서로 다른 소비자층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신흥시장 진출에서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 뿐만 아니라 현지 결제 접근성, 체크아웃 품질, 안정적인 반복결제를 초기 사업 전략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해외 소비자의 관심을 실제 구매와 지속적인 고객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결제 인프라가 시장 진출 전략의 일부로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션 유 EBANX 아시아태평양 커머셜 부문 부사장은 “아시아 기업들이 현지 결제 솔루션을 활용해 신흥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션 유는 중국 상하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Visa와 Mastercard에서 금융 서비스 분야의 경력을 쌓았다. 또한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피츠버그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