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공개 기술도전(揭榜挂帅)과 복수팀 경쟁(赛马制)이 바꾸는 국가 연구개발
중국 국가 연구개발은 오랫동안 정부가 과제를 만들고 연구기관이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문제는 연구가 성공해도 기업이 쓰지 않는 성과가 생긴다는 데 있었다. 산업이 원하는 기술과 공고문에 적힌 기술이 다르고, 연구자는 평가위원이 좋아할 논문과 지표를 우선할 수 있었다. 중국이 공개 기술도전과 복수팀 경쟁을 확대하는 이유는 연구비의 액수보다 '누가 문제를 내고, 누가 중간에 멈추며, 누가 성공을 판단하는가'를 바꾸기 위해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중국식 문제출제형 연구개발은 연구자를 선발하는 제도가 아니라 산업문제를 누가 출제하고, 어떤 마일스톤에서 중단하며, 최종사용자가 무엇으로 성공을 판단할지를 다시 짜는 운영체계다.

먼저 공개 기술도전(揭榜挂帅)과 복수팀 경쟁(赛马制)을 구분해야 한다. 공개 기술도전은 기업·산업·최종사용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성능지표를 공개하고 해결자를 모집하는 제도다. 복수팀 경쟁은 기술노선 불확실성이 큰 과제에 여러 팀을 병렬 지원한 뒤 마일스톤에서 계속 지원할 팀과 기술노선을 선별하는 방식이다.
상하이 과학기술계획 관리방식은 이 제도 핵심을 잘 보여준다. 공개 기술도전 과제는 사용처와 사용자가 명확하고, 기술지표가 객관적이며, 결과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과제는 산업 공통기술과 기업 제안형으로 나뉜다. 공통기술은 한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병목을, 기업 제안형은 실제 생산과 제품개발에서 발생한 문제를 대상으로 한다.
기술수요자는 문제를 제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체자금을 부담하고, 공모내용과 평가지표를 함께 만들며, 제안팀 현장역량을 확인하고, 중간관리와 최종평가에 참여한다. 최종사용자는 성공한 기술을 실제 제품과 공정에 적용해야 한다. 연구비를 받는 팀과 기술을 써야 하는 기업의 책임을 한 계약에 묶는 구조다.
첫째 기업·사용자가 기술 수요를 낸다. 둘째 정부와 전문가가 과제를 검증해 기술지표·예산·기간·지식재산권 조건을 담은 목록을 만든다. 셋째 전국 대학·연구기관·기업에 공개한다. 넷째 수요기업이 현장 역량을 확인하고 해결팀을 선정한다. 다섯째 마일스톤별로 성과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기술노선이나 지원팀을 바꾼다. 여섯째 최종사용자가 실제 제품·공정에서 성과를 평가하고 적용한다. 연구비 출발과 끝에 사용자가 놓이는 구조다.
2026년 상하이는 선박·해양장비, 재사용 발사체 등 전략 분야에서 공개 기술도전 과제를 운영했다. 일부 과제는 상하이에 있는 법인을 요구하지만 다른 공모는 전국 대학·연구기관·기업과 사회 역량에 문을 연다. 동일 제도라도 과제의 안보성·산업정착 목표에 따라 개방범위가 달라지므로 한국 기업과 연구기관은 과제명보다 신청주체, 지식재산권과 현지법인 요건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한국식 공모형 연구개발과 닮았지만 차이는 출제자 권한이다. 일반 공모에서는 정부와 평가위원이 제안서를 선정하고 기업은 참여기관으로 들어간다. 공개 기술도전에서는 수요기업과 최종사용자가 과제 성능·시간·가격·적용조건을 구체화하고, 평가와 검수에 직접 참여한다. 산업수요가 연구개발 뒤가 아니라 앞에 놓인다.
공개 기술도전은 기관 간판과 연구자의 직급을 낮추려는 목적도 있다. 상하이 규정은 제안기관 설립연도, 업종, 연구자 직함에 획일적 문턱을 두지 않고, 지식재산권과 수행역량, 기술방안으로 평가하도록 한다. 신생기업과 지방 연구팀도 대형 국책연구기관과 경쟁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문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산업과제는 시험장비, 품질체계, 생산경험과 자금이 필요하다. 신청 자격을 열어도 대기업·유명 대학이 유리할 수 있다. 중국이 과제비 일부를 수요기업이 부담하게 하고, 제안팀의 현장조사와 시제품 검증을 강조하는 이유는 서류상 기술보다 실행력을 보려는 데 있다.
기술성숙도도 중요하다. 상하이 산업형 과제는 최종적으로 제품·공정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관리규정은 기술성숙도를 일반적으로 7단계 이상까지 끌어올리는 과제를 상정한다. 이는 기초연구 지원과 성격이 다르다. 공개 기술도전은 아직 과학적 원리가 불확실한 장기연구보다 병목이 명확하고 일정 기간 안에 사용 가능성을 검증할 수 있는 과제에 적합하다.
고위험 과제에서는 처음부터 한 팀을 고르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 복수팀 경쟁은 다른 기술노선의 여러 팀에 초기자금을 나눠주고, 중간 마일스톤을 통과한 팀에 후속자금을 집중한다. 전략적 의미가 크지만 성공 확률이 낮거나 시간이 촉박한 과제에 적용된다.
상하이 규정은 프로젝트 전담자가 진행 상황을 깊이 점검하고, 마일스톤 결과에 따라 과제를 종료하거나 연구팀·기술노선을 바꿀 수 있도록 한다. 공개 기술도전 과제는 원칙적으로 기간 연장, 수행기관과 책임자 변경을 제한한다. 실패를 숨기며 시간을 늘리는 대신 중간에 정리하고 자원을 재배치하는 제도다.
이 방식은 국방·우주·반도체·바이오처럼 기술노선이 여러 개인 분야에서 유용하다. 한 팀이 실패하면 국가과제 전체가 멈추는 위험을 낮추고, 초기 단계에는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동일한 장비와 인력을 여러 팀에 중복 지원해 비용이 커질 수 있다. 복수팀 경쟁은 경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포트폴리오 방식이어야 한다.
공개 기술도전 마일스톤은 논문 수와 특허 건수만으로 설계하기 어렵다. 장비라면 신뢰성·수율·원가·생산속도, 소재라면 불순물·수명·공정 호환성, 소프트웨어라면 정확도·지연시간·보안·기존 시스템과의 통합이 평가 기준이 된다. 과제 시작 전에 수요기업과 연구팀이 검증방법과 데이터, 시험환경을 합의해야 한다.
지식재산권도 미리 정해야 한다. 문제를 낸 기업이 모든 성과를 독점하면 대학과 스타트업이 참여하기 어렵고, 연구팀이 권리를 모두 가져가면 수요기업이 비용을 부담할 이유가 줄어든다. 상하이는 공모 단계에서 지식재산권 귀속, 자금투입, 적용조건을 명확히 하도록 한다. 공동특허, 특정 분야 독점사용권, 다른 시장에 대한 비독점 라이선스 등 기술 확장 가능성을 남기는 설계가 필요하다.
성과평가에서 최종사용자 비중이 커지는 것도 중요하다. 평가위원은 기술 학술성을 볼 수 있지만 실제 공정 유지보수·원가·안전과 조달 절차까지 판단하기 어렵다. 수요기업과 최종사용자는 기술평가보고서를 내고 종합성과에 반영한다. 연구성과가 '평가를 통과한 기술'에서 '사용자가 받아들인 기술'로 바뀌는 지점이다.
상하이 제도는 과제 운영을 세 개의 계약 관계로 본다. 과학기술 행정기관은 공공자금과 절차를 관리하고, 기술수요자는 문제·자체자금·시험환경을 제공하며, 과제수행자는 기술개발과 성과를 책임진다. 세 주체가 별도 역할을 가진다는 점은 일반 보조금과 다르다. 정부가 수요기업 연구개발비를 대신 내주는 것이 아니라, 공공성이 있는 산업 병목에 민간자금과 공공자금을 함께 투입한다.
재정지원 방식도 유연하다. 과제비를 세부 항목마다 사전 통제하기보다 목표와 마일스톤을 중심으로 관리하는 경비 총액책임제가 적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기술노선 변화에 맞춰 예산을 조정할 수 있지만 결과와 일정에는 더 강한 책임을 진다. '돈을 어떻게 썼는가'에서 '어떤 산업문제를 언제까지 해결했는가'로 관리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공개 기술도전이 산업별로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도 봐야 한다. 반도체 장비에서는 국산 부품 성능·수율·장기안정성이 핵심이고, 선박·해양장비에서는 극한환경과 인증, 재사용 발사체에서는 안전·회수·반복사용 횟수가 중요하다. 인공지능 과제에서는 정확도보다 현장 데이터 접근, 운영비용과 보안이 더 큰 병목일 수 있다. 공통된 제도를 적용하되 평가항목은 산업 사용조건에 맞춰야 한다.
복수팀 경쟁은 단순히 여러 팀을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술노선 자체를 비교하는 수단이다. 예를 들어 같은 목표를 반도체 기반 센서, 광학 방식, 소프트웨어 보정으로 풀 수 있다면 초기에 세 노선을 모두 시험하고, 중간 데이터로 선택할 수 있다. 정부가 사전에 한 기술노선을 정하면 정책이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복수팀 경쟁은 국가가 정답을 아는 척하지 않고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면에 탈락팀 인력과 지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실패 원인을 공개 데이터로 남길 수 있는 부분과 영업비밀로 보호할 부분을 나누고, 후속 과제나 다른 사용처로 기술을 전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실패를 처벌하면 연구팀은 쉬운 지표를 선택하고, 실패를 무조건 용인하면 예산규율이 사라진다. 마일스톤 투명성과 독립평가가 두 위험 사이의 균형점이다.
공개 기술도전은 중앙정부 과제만이 아니다. 지방정부, 산업단지와 국유기업이 지역 병목을 목록으로 만들고 전국에서 해결자를 찾는다. 슝안신구는 인공지능 응용문제를 공개해 기업과 연구팀을 모집했고, 쓰촨은 인공지능·로봇·산업소프트웨어 실제 사용처를 과제로 제시했다. 36Kr(36氪)는 이런 정책을 기술공급자가 아니라 사용자가 공모의 출발점이 되는 오픈이노베이션 방식으로 분석했다.
중국 산업사슬 책임제와 제조업혁신센터, 혁신연합체도 공개 기술도전과 결합한다. 지방정부가 병목을 찾고, 체인주기업이 사용조건을 제시하며, 대학과 스타트업이 기술을 개발하고, 파일럿 플랫폼이 검증한 뒤 조달·투자로 연결한다. 공개 기술도전은 독립된 지원사업이 아니라 산업정책의 문제해결 인터페이스다.
첫째, 문제정의가 부실하면 공개경쟁도 서류경쟁이 된다. 기업이 내부개발 실패를 정부과제로 넘기거나, 특정 공급업체에 유리한 사양을 과제로 만들 수 있다. 기술지표는 명확해야 하지만 해결방식을 미리 고정하면 새로운 접근을 막는다. 정부와 독립전문가가 문제 공공성과 경쟁성을 검토해야 한다.
둘째, 최종사용자가 강할수록 중소기업 협상력이 약해질 수 있다. 대기업이 데이터·설비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서 실패 책임을 연구팀에 넘기거나, 평가권을 이용해 지식재산권을 낮은 가격에 가져갈 위험이 있다. 수요기업 자금 부담과 데이터 제공, 구매 또는 실증의무를 계약에 넣어야 한다.
셋째, 마일스톤 중심 관리가 단기성과를 과도하게 요구할 수 있다. 어려운 기술은 중간에 지표가 흔들릴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과학적 발견이 중요할 수 있다. 모든 국가연구를 공개 기술도전으로 바꾸면 기초연구가 위축된다. 문제와 사용자가 명확한 산업과제에 선택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넷째, 복수팀 경쟁은 실패 정보를 공유하지 않으면 비용만 늘린다. 탈락팀이 확인한 데이터와 공정한계를 다음 단계에 활용할 수 있는 규칙이 필요하다. 동시에 영업비밀과 특허를 보호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공개 기술도전 형식보다 책임구조를 배워야 한다. 기업이 문제를 내면 일부 자금을 부담하고, 시험설비와 데이터를 제공하며, 최종 평가와 구매 검토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과제 선정 뒤 수요기업이 빠지고 대학과 스타트업만 보고서를 만드는 구조를 막아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기업 병목을 기술명으로 나열하기보다 성능·원가·납기·규제조건으로 구체화해야 한다. 대기업은 오픈이노베이션 과제를 홍보 행사로 사용하지 말고, 마일스톤을 통과한 기술에 실증라인과 조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대학은 논문성과와 산업성과를 구분하고, 기술이전·지식재산권 협상을 앞단에서 지원해야 한다. 금융권과 벤처캐피털은 정부 선정 여부보다 중간 마일스톤과 최종사용자 평가를 투자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문제를 공개한 기업이 실제 예산과 구매 권한을 가진 조직인지 확인해야 한다. 데이터 접근, 시험비용, 지식재산권, 중단 시 보상과 다른 고객에 대한 판매권을 계약으로 정해야 한다. 중국 과제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은 중국법인 요건, 기술수출통제와 공동특허 지역별 권리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공개 기술도전 핵심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개방성이 아니다. 문제를 낸 사용자가 돈·데이터·평가·적용 책임을 함께 지고, 성과가 없으면 중간에 멈출 수 있다는 운영규율이다. 한국 산업계가 물어야 할 질문은 공개 공모를 몇 개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 국가 연구개발에는 문제 주인과 최종사용자, 그리고 중단을 결정할 책임자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박지민 36kr코리아 공동 대표 3guowill@krstar.c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