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발전 확대→전기화’ 새 단계…전력망 투자 대폭 확대 주문
韓 첨단제조·디지털 경쟁력 주목…“인허가·그리드가 재생e 확대 관건”

“지금 당장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와 미래에 높은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프란체스코 라 카메라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사무총장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 등 급증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핵심 전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지목했다. 기존 원전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규 전력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확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경쟁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라 카메라 사무총장은 16일 부산에서 열린 '2026 기후산업국제박람회' 기자간담회에서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에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가 유리할 수 있다는 질문에 “가장 저렴하면서 공급할 수 있는 공급원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는 확장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원자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신규 원전은 건설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만큼 빠르게 늘어나는 전력수요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는 재생에너지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라 카메라 사무총장은 이번 박람회 기조연설에서도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을 새로운 전력수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세계 에너지전환이 단순히 청정전력을 많이 생산하는 단계를 넘어 경제 전반을 전기로 전환하는 '전기화' 단계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음 단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전력을 생산하느냐보다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라며 “앞으로 10년은 전기화의 시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3%다. 라 카메라 사무총장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수준으로 억제하는 경로에 부합하려면 이를 2045년 약 35%, 2050년에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시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산업·수송·건물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분야로 확산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재생에너지가 이미 경제성 측면에서도 에너지전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신규 유틸리티 규모 재생에너지 설비 상당수가 신규 화석연료 발전보다 비용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재생에너지는 기존 에너지시스템의 대안이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의 경제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재생에너지만 늘려서는 전기화가 완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송전망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디지털 기술 등 전력 인프라를 동시에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전력망을 에너지전환의 사후 대책이 아닌 선제적 인프라로 규정했다. 늘어날 전력수요와 태양광·풍력 보급을 예상해 전력망을 미리 현대화하고 확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향후 전력망에 대규모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며 현재보다 투자 속도를 크게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도 전력망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라 카메라 사무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많은 나라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은 그리드가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허가 역시 걸림돌이다. 그는 해상풍력 사업 등을 예로 들어 “투자를 하는 데 인허가를 받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장벽 가운데 하나”라며 “한국의 인허가가 특별히 느린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를 포함해 많은 나라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기요금을 끌어올려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는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인프라에 투자하면 공급가격이 올라간다는 것은 개념적으로 오류가 있다”며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것은 수익성을 높일 뿐 아니라 전기료 인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에는 높은 평가를 내렸다. 그는 한국을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기술 강국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면서 첨단 제조업과 디지털 기술을 강점으로 꼽았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와 반도체, 케이블 등 연관 산업의 기술력 역시 향후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라 카메라 사무총장은 “필요한 기술은 이미 있고 경제적 타당성도 있다”며 “중요한 것은 적절한 속도로 실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렴한 비용으로 깨끗한 전력을 적절한 시기에 공급하는 능력이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