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가 에이전트로 발전하면서 국내 플랫폼 생태계를 뒤흔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 검색, 메신저, 지도, 여행, 숙박, 배달 플랫폼 분야에서 토종 기업이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AI 서비스가 에이전트로 발전하면서 사업 생태계가 재편될지, 빅테크의 AI 에이전트 서비스에 종속될지 갈림길에 서 있다.
◇검색 대신 AI가 새 관문…국내 플랫폼 '에이전트 유입' 경쟁
국내 플랫폼 기업은 AI 에이전트 서비스로 생태계가 재편되면서 해외 빅테크나 국내 플랫폼 기업과 협업을 강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에 지분을 내주면서 'AI 팩토리' 사업에 진출할 계획이다. 카카오는 오픈AI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서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에서 역사를 쌓아온 플랫폼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의 협력이 가시화되는 모습이다.
국내 다른 플랫폼 기업은 신규 고객 유입 채널로 부상한 외부 AI 서비스 연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통적인 검색엔진이나 자체 애플리케이션(앱)을 넘어 늘어나는 AI 서비스 이용자를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경쟁에 불이 붙었다.
국내 온라인여행사(OTA) 양강으로 꼽히는 놀유니버스와 여기어때가 대표적이다.
놀유니버스는 최근 외부 AI 생태계와 협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공개한 여행상품 추천 대화형 서비스 AI '노리'를 외부 AI 서비스와 연동해 자사 플랫폼 밖에서 AI 노리와 대화하며 여행 상품을 추천받은 이용자를 자연스럽게 놀(NOL)로 유입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기어때는 카카오 AI 생태계에 합류했다. 지난 6월 '카나나 인 카카오톡'에 자사 서비스를 연동해 이용자가 카카오톡 안에서 숙소 정보를 검색하고 여기어때 서비스로 이동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또 AI에 외부 서비스와 도구를 연결하는 개방형 AI 프로토콜인 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MCP)을 구축해 챗GPT, 클로드 등 외부 AI 이용자 유입을 꾀한다.
실제로 AI 이용자의 여행 플랫폼 유입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도비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월 미국 여행 사이트의 AI 유입은 전년 동월 대비 119% 증가했다. 구매 전환율도 상승했다. AI를 통해 여행 플랫폼에 방문한 이용자의 구매 전환율은 AI로 유입되지 않은 이용자보다 1% 낮은 수준으로 조사됐다. 1년 전 격차가 47%에 달한 것과 비교하면 AI 이용자의 구매 전환율이 대폭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OTA 업계 관계자는 “AI 서비스가 대중화되고 이용자 체류시간이 늘어나면서 AI 서비스 생태계에 참여하는 OTA가 늘고 있다”면서 “특히 글로벌 이용자를 공략하려는 국내 OTA 기업들은 해외 AI 서비스와 연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채용 플랫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됐다. 잡코리아·알바몬 운영사 웍스피어는 올해 2월 챗GPT에 외부 앱을 연동하는 '앱스 인 챗GPT'에 잡코리아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용자가 챗GPT와 대화로 채용 공고를 탐색하면 잡코리아 내 채용 공고를 추천한다. 공고를 클릭하면 잡코리아 서비스로 연결된다.
사람인은 지난 3월 카카오톡에서 챗GPT를 이용할 수 있는 '챗GPT 포 카카오'와 연동했다.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통해 사용자 접점을 확대해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업계에서는 AI 서비스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생태계 연동 역량이 플랫폼 간 경쟁 구도를 재편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AI 서비스 생태계 영향력이 커질수록 AI 이용자를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여 구매 등 의사결정으로 연결하는 기업이 고착화된 플랫폼 경쟁 구도를 뒤바꿀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프런티어 AI 고도화…국내 플랫폼 격차 확대 우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등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이 프런티어 모델을 빠르게 고도화하는 점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AI를 운영하는 국내 기업과의 격차도 커지고 있다. 오픈AI는 이달 컴퓨터 사용과 브라우징, 소프트웨어(SW) 개발, 복합 업무 수행 능력을 강화한 'GPT-6 아스트라(Astra)'를 내놓았다. 앤트로픽도 코딩·지식업무 성능을 끌어올린 '클로드 페이블 5.1'과 '미토스 5.1'을 선보이며 맞섰다. 이들 프런티어 모델은 범용인공지능(AGI) 수준에 근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국내 시장에서 생성형 AI 서비스 이용자가 증가하면서 검색, 커머스 등 분야로 진입하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챗GPT는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수(MAU) 1709만9052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203만9420명 대비 42.0% 증가한 수치다. 카카오톡(4847만5513명), 네이버(4725만3614명)와는 격차가 있지만 배달의민족(2440만4648명), 당근(2231만6564명)을 바짝 추격할 정도로 대중화된 서비스로 성장했다.
챗GPT는 무료 서비스뿐 아니라 유료 구독 서비스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용자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평가다. 앱과 별개로 기업·기관에 기업간거래(B2B) 방식으로 공급하는 챗GPT 엔터프라이즈는 지난달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약 28배로 늘었다고 오픈AI는 밝혔다.
또 구글 애플리케이션(앱)은 안드로이드 운용체계(OS)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최근 국내에서 이용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앱 MAU는 유튜브 5116만2536명, 카카오톡 4847만5513명, 구글 4767만7456명, 네이버 4725만3614명, 크롬 4277만856명 순이었다. 모바일 앱 이용자 수 상위 5위 안에 구글의 3개 앱이 포진했다. 지난달 구글지도의 MAU는 1117만5409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구글, 오픈AI, 메타 등이 AI 에이전트로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면 국내 기업은 물론 창작자 생태계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에서는 데이터 생태계를 지키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대표적으로 네이버는 로봇 배제 표준인 'robots.txt'로 블로그·카페·뉴스 등 자사 주요 콘텐츠 데이터의 불법 크롤링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미 챗GPT 아스트라나 앤트로픽의 미토스 등 보안을 우회할 수 있는 프런티어 AI 모델이 나오면서 불법 크롤링 차단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美에만 쌓이는 한국인 AI 데이터…플랫폼 경쟁력 가른다
전문가들은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등 미국 빅테크의 AI 서비스만 활용할 경우 결국 데이터에서 국내 기업과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성 중앙대 AI학과 교수는 “이용자가 AI 서비스를 많이 사용할수록 AI 서비스 개발사는 AI를 고도화하기 위한 데이터를 축적한다”면서 “이용자들이 챗GPT, 클로드 등 해외 AI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이러한 피드백 데이터는 해외 기업에 치중되고, 국내 AI 기업은 데이터를 확보할 기회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데이터뿐 아니라 AI 서비스 통제권 확보를 위해 해외 AI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AI 모델에 의존하면 '미토스 사태(지난 6월 미국 정부가 앤트로픽의 AI 모델 미토스에 대한 접근 금지 조치를 내린 것)'와 같이 해외 AI 모델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면 일상과 업무가 모두 마비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용자들이 토종 AI 모델을 이용하도록 인센티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데이터 사용 규제를 풀고 고품질 한국어 데이터를 생성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AI 서비스의 경쟁력은 얼마나 좋은 데이터를 보유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이를 위해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 공공 데이터 등 AI 서비스를 위해 활용하지 못하는 데이터에 대한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당장 큰 수익을 올리기 어려운 만큼,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 등에 대한 사용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뒤 사후에 이용 대가를 지급하도록 하는 방식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저작권자와 AI 서비스 개발사 간 이해충돌이 지속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가 이를 사전에 협의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장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플랫폼 기업이 프런티어 AI 모델의 데이터 수집을 무한정 막을 수 없다면서 데이터를 일정 부분 개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에이전트 AI가 많아질수록 네이버를 통한 쇼핑이나 광고의 볼륨 자체는 커질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이 검색하는 게 아니라 에이전트들이 검색한다는 점”이라면서 “빅테크의 에이전트 AI가 많아질수록 광고와 쇼핑을 우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어 “사람인지 AI인지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면 결국 응용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열어야 할 것”이라면서 “데이터를 잃는 것만 걱정해 글로벌 기업과 협업하지 않는 것은 기회를 놓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현대인 기자 modernma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