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출연연구기관을 과제 수주 경쟁으로 내몰았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 결정 1년을 맞아 정부가 새로운 체제 안착에 속도를 낸다. 출연연별 핵심 연구 분야를 정하고, 연구개발(R&D) 성과에 따른 보상을 강화하며 출연연을 국가 연구개발(R&D) 거점으로 도약시킨다는 목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8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제247회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연연의 국가대표 연구기관 도약을 위한 포스트-PBS 세부 이행 방향'을 심의·의결했다.
PBS는 출연연이 인건비와 연구운영비 일부를 정부·민간의 R&D 과제 수주로 확보하는 방식이다. 연구 성과 증진을 목표로 1996년 도입됐지만, 본래 취지와 달리 출연연을 단기 성과 위주의 연구로 내모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PBS 폐지를 결정했다. 대신 출연연이 직접 과제를 기획하는 '전략연구사업'을 올해 신설했다. 내년부터 정부 수탁 과제는 중단되고, NST 산하 출연연의 전략연구사업 예산은 올해 2962억원에서 내년 정부안 기준 5905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출연연은 각자 역량을 집중할 핵심 임무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연구를 수행하도록 사업구조를 개편한다. 예를 들어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측정표준 확립, 측정과학기술 R&D, 측정표준·과학기술 보급 등을 핵심 임무로 삼고, 이에 부합하는 기본·전략연구 사업을 기획하게 된다. 23개 출연연의 핵심 임무는 연내 국민에게 공개한다.
NST는 출연연 간 협력체계를 위해 핵심 분야별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산·학·연 연구 협력과 지역 주도 전략연구사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임무 중심 연구체계로 전환하며 출연연 평가체계도 개편한다. NST는 기관 R&D 사업 운영 적절성을 기관평가에 반영하고, 그 결과를 예산·인센티브와 연계하기로 했다. 연구 수당 등 개별 인센티브는 과제 수탁 규모와 연동된 기존 방식에서 우수성과 중심의 차등 보상으로 재편한다.
NST는 개별 출연연이 수행하기 어려운 대형 기술이전과 딥테크 창업을 지원하는 총괄 기술이전전담조직(TLO)을 정식으로 편성하고, 이해충돌 규제 정비 등 사업화 친화적 제도개선에 나선다. 홍보와 국제협력 업무 역시 NST가 주관하며 출연연 전체가 하나의 국가 연구기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도록 돕는다.
다만 출연연 종사자 반발이라는 숙제가 남았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최근 성명서를 내고 전략연구사업의 전면 재검토, NST 중심의 행정 통합 백지화, 실질적인 처우개선 이행을 요구했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한 전략연구사업이 기존 수탁사업과 차이가 없고, 연구 현장에 대한 이해가 없는 NST의 행정 통합은 연구 자율성을 오히려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기존 체제에서 기획하던 연구 과제를 올해 전략연구사업이 급하게 편성한 측면이 있다”면서 “연구자 입장에선 전략연구사업 결과에 따른 책임 문제 등으로 부담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와 NST는 9일부터 출연연을 방문해 제도 전환 취지와 세부 이행 방향을 설명하기로 했다. 11일 NST 이사진과 23개 출연연 기관장 등이 참여하는 출연연 경영협의회에서도 이행 방향을 발표한다.
김영식 NST 이사장은 “PBS 폐지는 정부가 결단하고 현장이 오래 기다려 온 변화이지만, 그 성패는 결국 이행 주체인 NST와 출연연이 얼마나 내실 있게 실행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이번 이행 방향의 후속 조치들이 차질 없이 이행되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NST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출연연이 '국가대표 연구기관'으로서 국가 산업을 뒷받침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핵심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축적된 역량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스스로 혁신해야 할 시점”이라면서 “정부는 '포스트 PBS' 체계의 현장 안착을 위해 지속적으로 현장과 소통하며 정책을 고도화하겠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