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 권리 산업규칙과 거래 인프라로 바꾸는 중국식 지식재산권 운영

특허를 많이 보유하면 기술기업이 강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특허 한 건은 배타적 권리일 뿐 시장지배력을 자동으로 만들지 않는다. 제품에 꼭 필요한 기술인지, 표준에 포함되는지, 다른 기업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실제 거래와 소송에서 권리가 유지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중국 특허정책 초점을 출원 수에서 운영으로 옮기고 있다. 표준필수특허(标准必要专利·SEP), 특허풀(专利池), 기술거래소, 라이선스와 특허금융을 통해 개별 특허를 산업표준과 거래할 수 있는 자산으로 묶는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특허전략은 권리를 많이 쌓는 데서 끝나지 않고, 표준·특허풀·기술시장에 연결해 산업의 공통규칙과 현금흐름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표준필수특허는 특정 표준을 구현할 때 기술적으로 피할 수 없는 특허다. 통신, 동영상 코덱, 와이파이, 자동차 연결 기술처럼 제품 간 호환성이 필요한 산업에서 중요하다. 표준을 따르려면 해당 특허를 써야 하기 때문에 권리자는 강한 협상력을 얻는다.
그 대신 권리자는 공정·합리·비차별(公平, 合理, 无歧视·FRAND)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해야 한다. 표준화 참여 과정에서 특허를 공개하고, 경쟁사를 차별하거나 과도한 사용료로 시장진입을 막지 않아야 한다.
중국 국가지식재산권국은 표준과 특허 연계를 강화하면서 SEP 공개, 필수성 판단, 라이선스 협상과 분쟁 해결을 정책과제로 다룬다. 2026년 지식재산권 강국 건설계획도 핵심 산업 특허풀과 산업 지식재산권 운영을 확대하도록 했다.
표준화기구에 SEP로 선언됐다고 모두 실제 필수특허인 것은 아니다. 기업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넓게 선언할 유인이 있고, 표준이 개정되면서 기술이 빠질 수도 있다. 중국 연구자료는 5G 등 일부 분야에서 선언특허 가운데 실제 필수성이 인정될 비율이 20~30%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라이선스와 투자에서는 특허 수보다 필수성 평가가 중요하다. 청구항이 표준의 어느 조항에 대응하는지, 대체기술이 있는지, 특허가 유효한 국가가 어디인지, 잔여기간과 무효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표준필수특허는 기술·법률·경제가 동시에 얽힌다. 기술적으로 필수여도 사용료가 과도하면 경쟁법 문제가 생기고, 낮게 책정하면 혁신투자 회수가 어려워진다. 법원과 경쟁당국, 표준화기구, 기업이 라이선스 원칙을 조정해야 한다.
특허풀은 여러 권리자 특허를 한데 모아 일괄 라이선스하는 구조다. 제품 제조사는 수백·수천건 특허를 개별 협상하는 대신 한 번에 허가를 받을 수 있고, 권리자는 관리·소송비용을 줄이며 수익을 배분받는다.
동영상, 통신, 광디스크와 방송기술에서 특허풀이 확산된 이유다. 최근에는 사물인터넷, 커넥티드카, 배터리와 산업표준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에는 특허풀이 양면적이다. 해외풀에 가입하면 글로벌 시장진입에 필요한 라이선스를 정리할 수 있지만, 높은 사용료와 소송위험을 부담한다. 36Kr는 일부 글로벌 특허풀이 중국 제조기업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라이선스와 소송을 확대하면서 거래비용을 줄이는 플랫폼인 동시에 강력한 권리집행 조직이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자체 특허풀을 육성하는 이유도 단순한 국산화가 아니다. 국내 기업 특허를 묶어 해외 협상력을 높이고, 중소기업이 합리적 조건으로 핵심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공공지원 특허풀이 특정 대기업 이익도구가 되거나 경쟁기술을 배제하면 시장을 왜곡한다.
특허를 보유했다고 거래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기술설명, 권리범위, 가치평가, 구매자 탐색, 계약·세무와 후속사업화가 필요하다. 중국은 중국기술거래소(中国技术交易所), 상하이기술거래소(上海技术交易所), 선전 기술성과·지식재산권 거래 플랫폼(深圳证券交易所科技成果与知识产权交易平台) 등을 통해 기술거래 인프라를 구축했다.
중국 기술계약 거래액은 2020년 2조8300억위안에서 2024년 6조8400억위안(약 1조80억달러)으로 늘었다. 2025년 특허가 포함된 기술계약만 1조1800억위안(약 1738억달러)에 달했다. 단순 특허양도뿐만 아니라 기술개발·자문·서비스·라이선스를 포함한 수치이지만 연구성과와 기업수요를 연결하는 시장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베이징 2025년 기술계약 거래액은 9865억위안(약 1453억달러)이다. 대학·연구기관·기업이 밀집하고 기술거래기관과 펀드, 공공수요가 함께 있는 도시 장점이 나타난다.
기술거래소 역할은 가격표를 붙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매니저가 권리와 시장을 정리하고, 투자자와 산업고객을 찾으며, 분쟁·세무와 성과배분을 설계해야 한다. 거래소가 단순 정보게시판이 되면 계약은 늘지 않는다.
개별 특허가 표준에 들어가면 라이선스 수요가 생긴다. 여러 특허가 풀로 묶이면 거래가 단순해진다. 기술거래소에서 권리와 계약이 정리되면 은행은 질권을 설정하고, 투자자는 포트폴리오를 평가할 수 있다. 공공 조달과 첫 제품 정책은 실제 사용데이터를 만든다.
중국이 지식재산권 운영을 산업정책과 연결하는 이유다. 특허는 연구개발 결과이면서 표준·공급망·금융 입력값이다. 고가치 특허는 기술성만 높아서가 아니라 여러 시장에서 유지되고, 고객 제품에 적용되며, 표준·라이선스 수익과 협상력을 만드는 특허다.
첫째는 과다선언과 부실특허다. SEP 숫자와 특허풀 규모가 커도 실제 필수성과 유효성이 낮으면 협상력이 없다.
둘째는 FRAND 분쟁이다. 합리적인 사용료의 기준, 제품 전체가격과 부품가격 가운데 어느 것을 기준으로 할지, 글로벌 포트폴리오의 관할권을 두고 소송이 발생한다.
셋째는 시장지배력 남용이다. 특허풀이 필수특허와 비필수특허를 묶거나, 경쟁풀·대체기술을 배제하면 독점문제가 생긴다.
넷째는 정보비대칭이다. 중소기업은 어떤 특허가 필요한지, 사용료가 합리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기술거래소와 공공서비스가 계약 당사자의 실사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는 국제신뢰다. 중국 법원과 행정기관이 자국 기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해외 권리자와 투자자의 협력이 줄어든다. 반대로 해외풀과 권리자가 중국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한다는 우려도 있다. 투명한 필수성 평가와 중립적 분쟁 해결이 중요하다.
표준필수특허 생태계에는 여러 유형의 기업이 있다. 연구개발을 통해 핵심 특허를 만들고 라이선스 수익을 얻는 기업, 제품을 대량 생산해 사용료를 지급하는 실시기업, 특허를 모아 협상하는 특허풀 운영자, 필수성을 평가하는 전문기관, 거래·분쟁을 지원하는 법률·기술서비스 기업이다. 같은 특허 수를 보유해도 산업 내 협상력은 전혀 다르다.
중국 기업도 업종별 위치가 다르다. 통신·영상코덱·사물인터넷처럼 국제표준이 성숙한 분야에서는 글로벌 라이선스 협상이 핵심이고, 자동차·로봇·산업인터넷에서는 기존 통신특허와 새로운 응용특허가 충돌한다. 중국 특허풀과 기술거래소 확대는 국내 거래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해외 라이선스 분쟁에 대응할 공동협상 기반을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읽을 수 있다.
투자자와 기업은 특허의 등록국가와 잔존기간, 표준 기여문서, 실제 필수성, 라이선스 수익, 소송이력과 실시제품을 함께 봐야 한다. '표준 관련 특허'라는 표현만으로 기업가치를 높이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선언된 특허 가운데 실제 필수특허 비중이 낮을 수 있다는 연구는 특허 수 중심 평가 한계를 보여준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통신모듈, 스마트카, 로봇, 영상·AI 제품을 판매할 때는 완제품 특허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제품에 포함된 칩·통신규격·코덱·운용체계·클라우드 기능별로 표준필수특허와 특허풀 가입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중국 공급업체가 라이선스를 확보했다는 주장도 계약범위가 완제품 제조사까지 확장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중국 기술거래소나 특허풀을 활용해 공동 라이선스와 기술도입을 검토할 수 있지만, 거래소 등록과 정부 인증이 특허 유효성·침해위험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적인 필수성 평가, 자유실시 분석, 해외 판매국가별 라이선스 조건을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한국 정부·특허법원·산업협회는 표준필수특허 분쟁 해외판례와 중국 행정·사법 동향을 기업에 제공하고, 중소기업 필수성 평가와 공동협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대학도 논문·특허를 표준기여와 연결하고, 기업은 연구개발 초기부터 특허·표준·제품 로드맵을 하나로 관리해야 한다.
표준필수특허 사용료는 개별 기업 간 계약으로 정해지지만, 실제로는 산업 전체 비용구조를 바꾼다. 지나치게 높은 사용료는 완제품 가격과 중소 제조사 진입비용을 높이고, 지나치게 낮은 사용료는 원천기술 투자유인을 약화시킨다. 중국 당국이 특허권자 권리보호와 실시자 접근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다.
기업은 라이선스 협상에서 특허 한 건 가격보다 포트폴리오 범위, 판매국가, 제품단계, 누적 판매량과 상호라이선스를 함께 본다. 법원·행정기관 분쟁 해결과 금지명령 가능성도 협상력에 영향을 준다. 기술거래소와 특허풀이 가격 투명성을 높일 수 있지만, 독립적인 필수성 평가와 경쟁법 심사가 병행돼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 특허출원과 표준화 역량을 갖고 있지만 대학·스타트업 특허가 제품·표준·라이선스 수익으로 연결되는 비율은 낮다. 특허 지원이 출원비 보조와 포트폴리오 숫자에 머물면 유지비만 늘어난다.
정부는 국가 연구개발과 표준화, 특허풀, 기술거래, 공공조달을 같은 산업 로드맵에 넣어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 대학 특허를 나열하기보다 지역기업 문제와 국제표준을 기준으로 묶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사 특허를 무상으로 흡수하거나 독점적 사용권으로 묶지 말고, 공동표준·라이선스와 수익배분 규칙을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금융권과 벤처캐피털은 특허 건수보다 필수성, 해외권리, 적용제품, 라이선스와 소송위험을 실사해야 한다.
대학은 기술이전료 한 번보다 표준화 참여와 장기 라이선스, 창업기업 시장 확장을 평가해야 한다. 스타트업은 SEP 선언이 협상력을 주는 동시에 FRAND 의무와 글로벌 소송비용을 만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은 중국표준과 특허풀, 현지 법원 분쟁 동향을 제품설계 단계부터 점검해야 한다.
중국 특허전략에서 배울 것은 특허를 많이 출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개별 권리를 표준과 풀, 거래시장, 조달과 금융에 연결해 산업이 사용할 수 있는 계약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은 특허를 연구성과의 마지막 숫자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시장의 규칙과 반복수익을 만드는 자산으로 운영할 것인가.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