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 세계 독립 서점가를 중심으로 중고 서적 매입량이 폭증하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평소 일주일 단위 판매량에 맞먹는 대량 주문이 해외 기업을 통해 한 번에 들어오는 등, 종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이한 구매 패턴이 포착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BBC 방송은 이 같은 대규모 매입의 배경에 인공지능(AI) 개발 기업들의 학습 데이터 확보가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작가 3명이 AI 기업 앤트로픽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의 윌리엄 알섭 판사는 2025년 앤트로픽이 저작권으로 보호받는 실물 도서를 구매하여 AI 모델 학습에 활용한 것이 저작권법상 '변형적 이용(Transformative Use)'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 과정에서 공개된 법원 문서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파나마 프로젝트'라는 내부 과제명 아래 전 세계의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희귀서와 절판본을 포함한 대량의 서적을 매입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AI 기업들은 수집한 서적의 제본을 해체해 고속 스캐닝을 진행한 후 폐기하는 이른바 '파괴적 스캐닝(Destructive Scanning)'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난해한 라틴어 문헌부터 대중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독특한 텍스트 자료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성능 향상과 독자적인 학습 데이터 구축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미국 법원은 이처럼 서적을 AI 학습용 데이터베이스 구축 및 저작물 학습에 활용하는 방식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으나, 업계 내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반면 영국의 경우 저작물 교육 라이브러리 구축 및 학습 등 모든 복제 행위에 대해 저작권자의 사전 허가를 엄격히 요구하고 있어, 국가별 법적 해석의 차이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서점 업계와 문화계에서는 오랫동안 재고로 남아 있던 서적의 판로가 열렸다는 점을 반기면서도, 희귀 판본이나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서적까지 단지 데이터 추출만을 목적으로 파괴되는 상황에 대해 윤리적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