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이름으로 금융서비스가 개설되고, 범죄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통장을 만든 적도, 서비스를 신청한 적도 없는데 기록에는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남아 있다면 말이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는 2만건을 넘었고 피해액은 1조원을 웃돌았다. 범죄 수법이 지능화되면서 신분증 도용과 명의도용으로부터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은행 창구에서는 고객의 주민등록증을 정부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대조해 진위를 정확히 확인한다. 반면에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 같은 전자금융서비스에서는 은행 창구와 동일한 수준의 진위확인이 이뤄지지 못했다. 보안이라는 성벽의 대문은 신원확인이라는 문지기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지만, 정작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쪽문은 빗장이 느슨했던 셈이다.
정부는 2014년부터 은행·증권사·보험사에 주민등록증 진위확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비슷한 시기 전자금융서비스도 등장해, 2014년 카카오페이에 이어 이듬해 토스와 네이버페이가 출시됐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간편결제와 송금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국민의 일상이 됐다. 그러나 신원확인 제도는 은행·증권사·보험사에 한정돼 전자금융업계까지 닿지 못했다. 그 사이 보이스피싱과 명의도용은 지능화됐고, 범죄자는 제도가 닿지 못한 틈을 파고들었다. 국민의 일상과 가장 가까워진 금융서비스가 정작 신원확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 틈을 메운다.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이 국민의 불안으로 바뀌지 않도록, 정부는 관계 법령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전자금융업계에도 진위확인 서비스를 제공할 길을 열었다. 지난 7월 9일 행정안전부는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 금융감독원·금융결제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누군가 내 신분증을 도용해 가입하려 해도 사진과 정보를 정부 시스템과 대조해 진위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이름이 범죄에 쓰이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다.
이번 협약에서 주목할 점은 정부가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기보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정확한 신원확인은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금융서비스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신뢰할 수 있는 신원확인 기반을 제공하고, 기업은 이를 활용해 더욱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와 기업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의 방식이다.
올해 말 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토스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성과와 안정성을 검증한 뒤, 내년부터 적용 대상을 단계적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관련 법령도 정비해 전자금융업계를 서비스 제공 대상에 명시하고, 이용 절차와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 국민이 금융서비스의 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수준의 보호를 받아서는 안 된다. 은행 창구에서든 지하철 안 스마트폰에서든,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같은 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오래 열려 있던 쪽문에도 이제 문지기가 생겼다. 그러나 문단속에 끝은 없다. 범죄 수법이 진화하는 만큼 신원확인 체계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정부는 보다 정확하고 안전한 신원확인 체계를 구축하고, 금융을 넘어 국민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분야로 협력을 넓혀 신원확인의 빈틈을 선제적으로 메워 나가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이름이 범죄에 쓰이지 않도록, 일상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안전망을 촘촘히 갖추는 것. 그것이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정부의 역할이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