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과학기술계 반발을 낳은 연구관리 전문기관 통폐합 추진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각 기관의 연구개발(R&D) 사업 전문성에 대한 고려 없이, 조직 효율화 논리만 내세워 강행한다는 지적에 후퇴하는 모양새다. 국가R&D사업 체계에 큰 영향을 미칠 정책을 소통 없이 밀어붙여 혼란만 불러일으킨 셈이 됐다.
11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부터 물밑에서 진행된 연구관리 전문기관 통폐합 논의가 최근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기능 유사·중복 공공기관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연구관리 전문기관 통합을 검토했지만, 각 부처와 현장 반대 등의 이유로 논의를 중단한 것으로 안다”면서 “조만간 (주무 부처인) 재정경제부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관리 전문기관은 부처별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획, 평가, 관리 업무 등을 위임받아 수행한다. 과기정통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정보통신기획평가원, 산업통상부 산하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총 19개 전문기관이 활동 중이다.

앞서 정부는 R&D 사업 기획, 과제 평가, 연구비 관리 등 이들 기관의 역할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통합을 추진했다. 총리실 산하에 '(가칭)국가연구개발혁신진흥원'을 설치한다는 구체적인 안까지 알려졌다.
이 같은 계획이 전해지자 연구관리 공공기관 노동조합 연합회(연노련)는 지난달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일방적 통합 중단과 사회적 논의를 촉구했다. 산업, 에너지, 보건, 농림, 해양 등 분야별 전문성과 연구자·기업 네트워크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기관마다 다른 임금·직급·복지 체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됐다.
연노련은 “연구관리 전문기관 통폐합은 현장 노동자들의 일터와 정주 여건, 대한민국 연구관리 체계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논의 전 과정의 투명한 공개와 기관별 전문성 보장 등을 요구했다.
전문기관 역시 공론화 없는 통폐합 추진에 혼선을 겪었다. 각 기관은 대체로 R&D 평가·관리 외에 기술사업화, 글로벌 진출, 인증 등 지원 업무까지 포함해 조직을 구성한다. R&D 관리 기능이 이관되면 오히려 분야별 기업에 대한 연속적인 지원 체계가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처럼 기관 성격이 크게 변화하는 사안임에도 정작 전문기관은 논의에서 배제됐다. 각 기관은 통폐합 방안에 대해 뒤늦게 '진위' 여부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기관 관계자는 “부처 의견 조회 요청 외에는 통폐합 관련 공식적인 통보나 전달이 없었다”면서 “수면 아래서 전문기관 통폐합 이야기가 흘러나오다 보니 기관이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연구관리 전문기관을 한곳에 모아 효율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은 이전 정부에서도 있었다. 이때마다 과기계와 기관 현장의 반발에 부딪히는 일이 반복됐다.
과학기술계는 새로운 전문기관 체계를 구축하려면 '통폐합'이라는 하나의 답을 정해놓지 않고, 이해관계자가 모두 참여한 논의를 거쳐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미국은 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 분야별 대표 기관이 R&D 사업을 관리한다. 독일 역시 10여개 전문기관이 여러 부처의 R&D 사업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한편 재경부 관계자는 “연구관리 전문기관 통폐합과 관련해 아직 확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