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의 특이점(Singularity) 시대] 〈12〉소버린 AI 전략,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추구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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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인공지능(AI) 혁명은 각국의 산업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간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저부가가치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한다는 전통적인 산업정책의 공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국가 차원의 소버린 AI 전략이 있다. 소버린 AI란 국가가 AI 스택, 즉 AI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인프라(칩, 데이터센터 등 AI HW, 통신, 원자재 등 기반 시설), 데이터(모델 학습 데이터 및 시스템 내에서 처리되는 데이터로 데이터 주권과 직결), 모델(AI 시스템을 구동하는 기본 모델로 언어, 문화, 가치관 반영), 애플리케이션(사용자가 직접 이용하는 AI 솔루션) 등 4대 스택이 포함된다.

이미 기술적 신냉전이라고 불리는 미중 간의 AI 패권 경쟁은 이들 4대 스택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배타적인 풀스택 확보 경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산업 응용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AI가 작동하는 물리적 세계, 즉 피지컬 AI 분야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고, 미국은 최첨단 거대언어모델(LLM)을 바탕으로 AI가 의미를 갖는 디지털 세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등한시했던 제조업 분야 중 AI 생태계와 관련된 부분은 빠른 속도로 재정비에 나서면서 일시적인 공백은 배타적인 동맹 구축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미·중의 생존을 건 AI 경쟁을 지켜보는 많은 나라들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손을 놓고 있을 경우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지도 모를 위험성이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기술력과 자본력이 무한정 요구되는 풀스택 확보에 나설 수 있는 형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하지 않지만 전략적 독자성을 확보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소버린 AI 전략은 어떤 것일까? 헨리 키신저는 전략의 본질을 '선언한 한계의 기술(strategy is the art of declared limits)'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즉,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뿐만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지를 대외적으로 명확히 밝히는 행위라는 의미다. 키신저의 주장처럼 우리의 소버린 AI 전략 역시 AI 산업 전체 가치사슬 중 일부 분야에서 이른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되 나머지는 외부에 의존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즉, 상대방이 꼭 필요한 스택을 보유한 상황에서 다른 나라로부터 필요한 것을 얻는 전략적 상호의존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AI 주권의 핵심은 완전한 자급자족이 아니라 통제권 확보에 있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며, 미중을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들이 채택한 전략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UAE처럼 풍부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국가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을 통해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려고 한다. 우리의 경우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HBM이라는 병목 자산을 보유해 AI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연결고리에 위치한 덕분에 전략적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하이브리드 전략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글로벌 상황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 우리를 고민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즉, 미·중 간에 누가 최첨단 파운데이션 모델을 가지는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의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독주하던 이 분야에서 중국의 오픈소스 모델들이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하면서 양국 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가 미국 앤트로픽과 오픈AI의 최첨단 모델에 근접한 성능을 갖춘 개방형 모델 '키미 K3'를 발표하면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고 각종 대중국 기술 수출 제한을 하고 있는 미국을 놀라게 했다.

문제는 양국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국이 AI 모델들을 무기화하고 있어 미·중의 첨단 모델에 의존해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던 많은 나라들의 경계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2026년 6월 앤트로픽의 고성능 AI 모델인 미토스 5와 페이블 5에 대해 국가 안보 우려와 사이버 악용 방지를 이유로 외국인 사용 금지 및 수출 통제 조치를 내리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미국의 폐쇄형 모델 개발과 달리 개방형(오픈소스 또는 오픈 웨이트) 모델 개발을 추구해 왔던 중국마저 자국의 최첨단 AI 모델에 대해 해외 접근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비록 성능이 떨어질지언정 우리 만의 독자적인 첨단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의 소버린 AI 전략은 민간기업과 협력한 독파모 개발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독파모 개발이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가 존재했었다.

최첨단 LLM을 보유한 국가, 나아가 거대 기술기업들이 AI를 무기로 전통적인 자유주의 글로벌 질서를 무너뜨리고 다른 나라들을 디지털 식민지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우리만의 AI를 가지자'라는 주장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며, 어차피 개발해 보았자 글로벌 첨단 모델에 비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왜 개발 경쟁에 나서는가라는 회의론이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첨단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필요한 GPU 인프라의 압도적인 차이로 인해 우리 모델이 미중의 첨단 모델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최첨단 AI 모델에 대한 해외 접근을 제한하자 독파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외부의 첨단 LLM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언제든 서비스 중단 압박이나 가격 인상 등 경제적·정치적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최근 미국의 금지 조치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독파모 개발은 단지 글로벌 AI가 자국의 언어나 문화적 맥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편견을 낳을 위험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화적 이유를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다만 여기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미·중이 벌이고 있는 최첨단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경쟁에 뛰어들 일은 아니다. 유럽조차도 미스트랄 AI를 필두로 모델 크기 대비 성능이 극대화된 소형·중형 오픈소스 모델을 전 세계에 공개하며 글로벌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영국 역시 독자 모델의 체급 싸움이 아닌 딥마인드 출신 연구진과 탄탄한 기초과학 기반을 바탕으로 신약 개발, 기후 변화, 소재공학 등 과학 분야 전문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도 독파모의 성능을 높이는 경쟁을 지속해 나가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방, 의료 등 국가 안보 및 안전과 관련된 핵심 분야에 대한 독자적인 AI 모델과 나아가 제조 등 우리가 강점을 보이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응용 AI 모델 개발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것은 미국의 최첨단 폐쇄형 모델은 물론 중국의 오픈소스 모델에 기반한 개발이라도 록인(lock-in)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각국의 소버린 AI 프로젝트들이 오픈소스 모델에 기반해서 구축되고 있는데, 이는 비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이용자가 모델을 직접 수정하고 자국 내에서 운영할 수 있어 미국 AI 기업의 독점적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일정 부분의 통제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픈소스 모델에 기반한 개발도 데이터 준비, 사후 학습, 하이퍼파라미터 자동 최적화 등 모델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파운데이션 모델로부터 완전한 독립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물론 록인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동안 미국 AI 기업들이 공공 및 민간 고객들을 대상으로 고객 기업의 국내에 데이터센터 구축, 현지 운영 파트너 활용, 데이터의 역외 이전 방지 등 기술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고, 최근 이 서비스를 국가를 대상으로 연장한 '서비스형 AI 주권(Sovereign-as-a-Service)'이라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있지만 이를 전적으로 믿을 일은 아니다.

결국 첨단 모델의 성능은 활용하되 운영의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닌 이를 활용하는 고객의 몫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만 경계감을 높이되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교황 레오 14세의 “AI 혁명은 우리 시대의 건설 현장(construction site)으로, 손을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라는 가르침은 이 점을 상기시키고 있다.

미·중조차도 AI 스택의 모든 층위에서 완전한 기술적 자립을 달성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만의 AI 주권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착실히 실현해 나가는 것만이 독립성을 가지고 AI 혁명에 올라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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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의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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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략 방향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SFS) 간사 yoojs6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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