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한국 대학 다음 경쟁은 특허 수가 아니라 성장경로다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하〉 중국 대학 기술사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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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학 기술사업화가 ANCHOR·TIPS·창업중심대학·캠퍼스혁신파크에 던지는 질문

중국 대학 기술사업화 핵심은 대학이 기업처럼 투자한다는 데 있지 않다. 연구성과가 대학 안에 머물지 않고 지역산업으로 이동하도록 권리, 전문인력, 공간, 자본, 실증환경과 첫 고객을 하나의 경로로 설계한다는 데 있다.

상편에서 본 분산형 조직과 중편에서 살펴본 원사·기술사업화 전문인력·장기자본은 결국 같은 목표를 향한다. 연구실의 기술을 산업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도 필요한 제도적 부품은 이미 갖고 있다. 문제는 사업 수가 아니라 한 기업 성장 과정에서 이 부품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가다.

한 문장 명제는 이렇다. 한국 대학 기술사업화의 다음 경쟁력은 지원사업을 더 만드는 데 있지 않고, 연구성과가 첫 고객과 후속투자, 지역의 제품과 일자리로 이어지는 성장경로를 만드는 데 있다.

한국과 중국에는 비슷한 부품이 있다

2026년 교육부는 2025년 출범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지역성장 인재양성체계(ANCHOR·앵커)로 재구조화했다. 17개 지방정부가 지역발전전략과 연계해 대학을 직접 지원하고, 인재양성·취업·창업·정주를 연결하는 구조다. 성과평가 인센티브와 초광역 협력, 성장엔진 분야 기업·대학 공동연구가 강화됐다.

창업중심대학은 11개 대학을 통해 대학발·지역 기반 창업기업 757곳을 지원한다. 지역 기반 기업에는 약 6만8300달러, 대학 연구성과에서 출발한 기업에는 약 10만2500달러와 멘토링, 투자유치,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캠퍼스혁신파크는 대학 유휴부지를 도시첨단산업단지로 조성해 기업, 연구시설과 창업보육공간을 집적한다. TIPS는 민간 운영사가 먼저 투자하고 추천한 기업에 정부 연구개발비를 붙인다. 2026년 일반트랙은 24개월 약 54만6400달러, 일반트랙 졸업기업 대상 딥테크트랙은 36개월 약 102만4600달러를 지원한다. 사업화와 해외마케팅은 각각 약 10만2500달러까지 별도로 연계된다.

중국에도 각각 닮은 부품은 있다. ANCHOR와 가까운 것은 지역 대학기술이전센터, 지방정부 공동 연구원과 산업펀드 결합이다. 창업중심대학에 대응하는 것은 국가급 혁신창업대학과 실천기지다. 캠퍼스혁신파크와 닮은 것은 국가급 대학과학기술단지이고, TIPS와 가장 가까운 것은 지방정부의 선지원 후지분전환 프로그램과 정부유도기금이다.

그러나 연결 방식은 다르다. 한국은 사업별 주관부처와 선정·평가체계가 비교적 명확하고, TIPS처럼 민간 선별자가 앞단에 있다. 중국은 지방정부가 토지, 공동 연구원, 국유펀드, 실증환경과 지역기업을 하나의 산업유치 패키지로 움직인다. 한국 제도는 투명성과 전문성이 강점이고, 중국은 동원력과 지역산업 연결 속도가 강점이다.

중국식 모델을 이상화해서는 안 된다. 지방정부가 비슷한 펀드와 단지를 중복 조성하고, 전문서비스가 부족한 대학과학기술단지가 임대사업으로 흐르며, 정책목표 때문에 부실 프로젝트를 연장할 위험이 있다. 전담 기술이전조직을 가진 대학·연구기관이 26.7%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대학 간 역량격차를 보여준다. 중국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규모가 아니라 연결이다.

차이는 사업 수가 아니라 연결 방식이다

한국은 연구개발, 기술이전, 창업보육, 지역혁신, 투자 프로그램이 각각 독립된 목적과 성과지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가 어느 창구에 기술을 내야 하는지, 개념검증을 누가 부담하는지, 첫 고객은 어디서 찾는지, 대학이 취득한 지분은 누가 관리하는지, 지역산업 수요가 사업 선정에 언제 반영되는지는 기관마다 다르다.

대학 연구팀이 기술이전을 하면 산학협력단 성과가 된다. 창업하면 창업지원사업 성과가 되고, 입주하면 캠퍼스혁신파크 성과가 되며, 투자받으면 TIPS 운영사와 벤처펀드 성과가 된다. 그러나 같은 기술의 성장 데이터는 기관 사이에서 끊긴다. 연구팀과 창업기업은 단계마다 비슷한 자료를 다시 만들고, 지원 종료 뒤에는 다음 창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중국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규모가 아니다. 대학 연구성과가 지역기업 제품과 매출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하나의 설계도로 보고, 각 조직이 어느 위험을 맡을지 정했는가다.

성장경로를 일곱 단계로 설계해야 한다

한국의 대학 기술사업화는 일곱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역기업 문제와 대학 기술을 연결하는 수요발굴이다. 둘째, 특허 소유권과 연구자 보상, 교수 겸직을 정리하는 권리확정이다. 셋째, 개념검증으로 기술과 시장을 확인한다. 넷째, 공동 파일럿으로 실제 공정과 규제환경에서 검증한다. 다섯째, 라이선스와 창업 가운데 경로를 선택하고 경영팀을 만든다. 여섯째, 민간투자와 TIPS, 정책금융을 붙인다. 일곱째, 첫 구매와 후속 고객, 캠퍼스혁신파크·지역산업단지 입주로 확장한다.

이 가운데 가장 약한 곳은 개념검증과 첫 고객이다. 기초연구비는 원리를 밝히는 데 쓰이고, 민간투자는 시장 가능성이 보일 때 들어온다. 그 사이에 시제품을 만들고 고객 설비에서 테스트하며 규제와 원가를 검토할 자금이 부족하다. 공공사업은 기술을 선정하지만 구매로 이어지지 않고, 대기업 공동연구는 종료 뒤 조달계약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새 사업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ANCHOR가 지역산업 기술수요를 정하고, 공동 개념검증센터가 기술위험을 낮추며, 창업중심대학이 팀과 사업모델을 만들고, 민간 운영사가 투자한 기업에는 TIPS가 연구개발을 붙이며, 캠퍼스혁신파크가 입주·시험공간을 제공하도록 데이터와 진입조건을 연결해야 한다.

예산을 하나로 합치자는 뜻이 아니다. 같은 기술이 다음 단계로 갈 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하지 않도록 공통 프로젝트 번호와 단계별 성과 데이터를 만들자는 뜻이다.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 원인, 기술검증 결과, 고객 반응도 다음 심사에 남아야 한다.

정부: 공통규칙을 만들고 지역에는 선택권을 줘야 한다

중앙정부는 특허 소유권, 기술가치 평가, 대학 지분취득, 교수 이해상충, 학생 참여와 성과정보 공통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정상 절차를 거친 사업화가 실패했을 때 담당자를 보호하는 면책기준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은 가치가 불확실하지만 파급력이 큰 기술보다 행정적으로 안전한 기술만 선택한다.

지역에는 산업 선택권을 줘야 한다. 모든 시도가 AI·반도체·바이오를 동시에 내세우면 중국 지방정부의 중복투자를 되풀이한다. 반도체 지역은 장비·소재 검증, 자동차 지역은 차량용 소프트웨어와 센서, 바이오 지역은 임상과 의료기기, 조선·해양 지역은 자율운항과 친환경 연료처럼 한두 개 산업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다른 지역 대학과 시설을 공동 사용하는 광역권 협력도 필요하다. 고가 파일럿 시설을 모든 대학이 보유할 수는 없다. ANCHOR의 초광역 공유대학과 성장엔진 공동연구는 교육과정 공유를 넘어 장비, 개념검증, 기술사업화 전문인력까지 공유해야 한다.

대학: 산학협력단에 모든 일을 몰아넣지 말아야 한다

산학협력단은 연구비 관리와 행정에서 강하지만 모든 조직이 투자, 창업, 고객개발과 산업단지 운영까지 잘할 수는 없다. 연구행정, 기술이전, 지분관리, 창업보육과 투자심사를 기능별로 분리해야 한다. 대신 교수와 기업에는 한 번의 접수로 관련 조직이 공동 대응하는 통합창구를 제공해야 한다.

기술사업화 책임자의 위상과 경력경로도 바꿔야 한다. 산업기술을 이해하고 고객을 찾고, 라이선스와 창업을 비교하며, 최고경영자와 투자자를 연결할 수 있는 전문직군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단기계약과 낮은 보상을 적용하면 역량은 축적되지 않는다. 중국 저장대 전담관, 상하이교통대 개념검증 전문팀에서 참고할 부분이다.

대학 기술지주회사와 교육기금회의 투자도 투명해야 한다. 기술평가, 투자승인, 지분보유와 이해상충 관리를 한 조직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정책투자인지 재무투자인지 목적을 구분하고, 단계별 투자와 중단 기준, 외부 민간운용사의 독립적 판단을 보장해야 한다.

공동 개념검증·파일럿 시설이 핵심 인프라다

대학별로 작은 개념검증 사업을 반복하기보다 고가 장비와 규제역량이 필요한 분야에는 광역권 공동시설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공정·패키징·신뢰성 평가, 바이오는 시제품 생산과 임상·인허가, 로봇은 안전성과 실제 작업환경, 에너지는 장주기 운전과 계통연계를 검증해야 한다.

공동시설에는 기업이 단순 후원자가 아니라 평가자와 잠재고객으로 참여해야 한다. 기술의 학술적 우수성뿐만 아니라 공정 호환성, 원가, 규제, 유지보수와 구매 가능성을 함께 검증해야 한다. 검증을 통과한 프로젝트에는 TIPS 추천, 정책금융, 대기업 구매검토와 캠퍼스혁신파크 입주를 연속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한국 TIPS의 민간 선별 기능은 유지하되 대학 딥테크에는 별도 진입경로가 필요하다. 대학·출연연 원천기술은 일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보다 검증기간이 길고 장비비가 크다. 개념검증을 통과한 기술을 운영사가 선별하고, 첫 공정 적용까지 지원하는 대학 딥테크 경로를 검토할 수 있다.

지자체: 보조금보다 실증과 첫 고객을 제공해야 한다

지자체의 가장 큰 자산은 보조금이 아니라 지역 산업현장과 공공수요다. 지역 주력기업 기술문제 목록을 공개하고, 공공기관과 지역기업이 개념검증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검증을 통과한 기술에는 규제특례, 테스트베드, 첫 구매와 레퍼런스를 제공할 수 있다.

캠퍼스혁신파크도 건물 면적과 입주기업 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학 연구팀과 기업이 공동 사용한 장비, 파일럿 검증, 반복 공동연구, 지역기업 구매와 후속 민간투자를 봐야 한다. 공간은 기술사업화의 조건이지 결과가 아니다.

ANCHOR 성패도 대학별 계획서보다 지역 기술수요표에 달려 있다. 대학이 하고 싶은 연구 목록이 아니라 기업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 공공서비스가 필요한 기술, 지역 공급망 공백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대기업: 돈보다 공정과 구매망을 열어야 한다

대기업은 공동연구비를 주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해결할 기술문제를 공개하고, 개념검증 단계에서 엔지니어와 설비·데이터를 제공하며, 성공한 기술에는 구매검토권이나 라이선스 옵션을 약속할 수 있다. 한국 대기업이 대학 기술사업화에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희소한 자원은 현금보다 실제 공정과 구매망이다.

오픈이노베이션 성과도 협약 수가 아니라 적용률로 측정해야 한다. 파일럿을 통과한 기술 가운데 구매로 이어진 비율, 비용절감과 품질개선, 외부 고객 확대를 봐야 한다. 대기업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묶어두고 구매하지 않는 문제를 막기 위해 일정 기간 안에 채택하지 않으면 대학과 스타트업이 다른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

금융권·VC: 기술단계와 생태계를 함께 실사해야 한다

금융권과 벤처캐피털은 대학 브랜드보다 기술단계를 실사해야 한다. 개념검증 이전, 시제품 단계, 첫 고객 단계에 같은 투자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단계별 분할투자와 기술 마일스톤, 후속 구매계약을 결합해야 한다.

대학·지자체 펀드에는 민간 운용사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정책목표 때문에 부실 프로젝트를 계속 연장하지 못하도록 중단·회수 기준과 정보공개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인내자본은 무조건 오래 기다리는 돈이 아니라 기술주기에 맞게 평가 기간을 늘리되 투자규율을 유지하는 자본이다.

은행은 매출과 담보가 없는 초기 대학기술에 직접 대출하기 어렵다. 개념검증 결과, 대기업 구매의향, 특허 포트폴리오, 정책펀드 후순위 위험부담을 결합한 보증·대출 상품을 설계할 수 있다. VC와 정책금융, 은행이 같은 기술의 단계정보를 공유해야 자금의 공백이 줄어든다.

최고 전문가 네트워크는 실행형이어야 한다

중국의 원사 공동연구거점을 그대로 도입할 필요는 없다. 다만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출연연 책임자와 산업계 최고기술책임자가 지역의 난제에 장기적으로 참여하는 과제형 네트워크는 검토할 만하다.

명예직 자문회의가 아니라 문제 선정, 기술검증, 후속 연구팀 연결과 중간평가에 실제 시간을 투입하는 구조여야 한다. 성과는 전문가가 몇 번 방문했는지가 아니라 공동 특허와 기술기준, 후속 연구자 배치, 기업의 비용절감과 매출로 측정해야 한다.

교수·스타트업: 권리와 책임을 사전에 정해야 한다

교수와 연구자에게는 창업의 권리와 책임을 함께 부여해야 한다. 연구성과를 공개하고, 대학과 특허·지분 관계를 미리 정리하며, 교수와 회사 경영자 역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창업휴직, 겸직, 학생 참여, 대학 장비 사용, 회사와 공동연구 규칙이 투명해야 투자자와 대학 모두 신뢰할 수 있다.

스타트업에 필요한 것은 지원사업 목록이 아니라 끊기지 않는 경로다. 대학 기술을 이전받은 팀이 개념검증, 법인 설립, 초기투자, TIPS, 첫 구매와 입주공간을 신청할 때마다 같은 자료를 처음부터 제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공 데이터와 성과정보는 연결하되 기업의 영업비밀과 투자자의 독립적 판단은 보호해야 한다.

평가지표를 특허 수에서 산업성과로 바꿔야 한다

기술이전료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사업화는 아니다. 대학이 많은 지분을 가졌다고 기업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다. 공동연구가 반복됐는지, 첫 고객 뒤에 외부 고객이 생겼는지, 후속 민간투자가 들어왔는지, 지역 공급망에 새로운 제품과 일자리가 생겼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도 대학과 산업 간 지식이전을 특허와 라이선스뿐만 아니라 공동연구, 창업기업, 인력이동과 시설공유 등 여러 경로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이 중국보다 잘할 수 있는 지점은 거대한 펀드와 단지를 빠르게 만드는 동원력이 아니다. 투명한 권리규칙, 민간 선별능력, 대기업 산업검증, 지역 간 협력을 결합하는 일이다. 중국 강점은 속도와 규모이고 병목은 전문성, 시장규율과 책임구조다. 한국 강점은 연구역량과 민간기업, 법제이고 병목은 사업 사이 단절과 짧은 평가주기다.

한국이 배워야 할 것은 대학 펀드가 아니라 경로 설계다

연구자는 기술위험을, 대학은 권리와 전문서비스를, 지자체는 실증과 첫 수요를, 대기업은 산업검증을, 민간투자자는 사업위험을 맡아야 한다. 최고 전문가 조직은 어려운 기술문제 방향과 검증을 돕고, 정부는 이 역할들이 충돌하지 않도록 규칙과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중국은 대학 연구실을 지역산업 출발점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ANCHOR, TIPS, 창업중심대학, 캠퍼스혁신파크라는 좋은 부품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업명이 아니라 이 부품들을 한 기업 성장경로로 연결하는 일이다.

한국 대학의 다음 평가지표는 특허와 창업기업 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연구성과가 지역기업 제품과 매출, 후속투자와 일자리로 이어진 경로를 증명할 것인가.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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