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콘텐츠 위기진단] 〈1〉K콘텐츠 전성시대의 그늘, 무너지는 안방 생태계

국내 방송콘텐츠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공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사용대가 갈등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본원적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 콘텐츠 산업의 건전한 성장은 특정 업계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산업 전반의 경쟁력, 다양성, 품질과 직결된 과제다. 본지는 학계와 법조계, 산업계의 릴레이 기고로 방송콘텐츠 시장 실태를 진단하고, 산업을 되살릴 해법을 4회에 걸쳐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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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식교수

바야흐로 'K콘텐츠 전성시대'다. K콘텐츠의 한 축을 지탱하는 드라마와 예능 등 방송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제 콘텐츠는 반도체를 잇는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까지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화려한 수식어의 그늘 뒤에서, 정작 그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국내 방송 생태계는 심각한 고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

통계는 이 냉혹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 방송사업 매출액은 2022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제작의 핵심 재원인 방송광고 매출은 지난 10년 사이 무려 38%나 급감했다. 반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공세로 출연료와 제작 단가가 폭증하면서 방송 제작비 부담은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치솟았다. 제작을 진행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적 악순환 속에서 방송 제작 현장의 비명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더 본질적 문제는 시장 내 불합리한 대가 체계와 왜곡된 수익 구조다. IPTV 사업자들이 플랫폼 시장을 독식하며 급성장하는 동안, 그 성장의 파트너인 콘텐츠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대가는 글로벌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대중이 방송을 이용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콘텐츠에 있다. 콘텐츠의 가치가 플랫폼의 수익 창출에 결정적으로 기여함에도 그 성과가 제작 주체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느 제작자가 위험을 감수하며 지속적인 투자에 나서겠는가. 결국 투자와 회수의 선순환이 끊긴 자리에는 제작 위축과 산업의 퇴락만 남게 된다.

이 악순환의 뿌리는 '방송은 공짜'라는 오랜 착시와 안일함에 있다. 과거 지상파를 무료로 시청해 온 경험에 더해, 유료방송 플랫폼들이 초고속 인터넷이나 이동통신 상품에 방송을 '끼워 팔기' 식으로 제공해 온 관행이 화근이었다. 창작자들의 수많은 노동과 자본, 시간이 응축된 방송 콘텐츠가 통신 상품의 미끼로 전락하면서, 그 가치는 철저히 저평가되어 왔다.

콘텐츠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환경이 고착화되면, 국내 콘텐츠 산업에게 남은 선택은 앉아서 고사되거나 더 나은 보상과 환경을 찾아 해외 플랫폼으로 떠나는 것뿐이다. 우수한 창작자와 원작의 지식재산(IP) 등 고품질 콘텐츠를 만드는 원천 역량이 소실되거나, 화려한 허울만 남겨놓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과실과 IP 권리는 고스란히 해외 플랫폼에 넘겨주는 구조가 고착되는 것이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개혁과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의 방송산업 정책 기조를 '콘텐츠 친화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오랜 시간 방송 정책이 통신 인프라와 플랫폼 진흥에 무게를 두어왔다면, 이제는 콘텐츠산업 자체를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에 두고 지속 가능한 제작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와 함께 플랫폼 중심으로만 편중된 시장 질서를 바로잡고, 방송 콘텐츠에 대한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제도적 개선을 단행해야 한다. 특히 유료방송 플랫폼이 독단적으로 적용해 온 대가 산정 기준을 재검토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주도가 아닌, 콘텐츠의 실제 기여도와 시장가치가 공정하게 반영되는 합리적인 거래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K콘텐츠의 지속 가능한 미래는 플랫폼과 콘텐츠 공정한 관계에 기반한 건강한 생태계 위에서만 가능하다. 지금 방송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경고를 방치한다면, 세계가 찬사하는 K콘텐츠의 원천이 정작 안방에서 고갈되는 '비극적 역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콘텐츠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고 제값을 치르는 상식의 질서를 세우는 것, 그것이 우리 콘텐츠 산업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홍원식 동덕여자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wraiso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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