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시장이 점진적인 회복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에너지저장장치(ESS)는 전기차 보조 수요를 넘어 독자적인 성장 시장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공급망 재편과 글로벌 규제 강화까지 더해지면서, 소재 기업들은 단순한 제품 경쟁만으로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은 244.6GWh로 전년 동기 대비 9.1% 성장했다. 다만 회복 양상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유럽은 친환경 정책과 보조금 재정비, 고유가 흐름이 맞물리며 뚜렷한 회복세를 나타내는 반면, 북미는 보조금 조기 종료로 전기차 판매가 28.4% 감소하며 일부 셀 제조사들이 전기차용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가장 주목할 변화는 프리미엄 세그먼트의 빠른 반등이다. 글로벌 완성차업체(OEM)의 프리미엄 전기차 라인업은 캐즘 국면에서도 견조한 수요를 유지했고, 에너지 밀도와 주행 거리에서 우위를 갖는 하이니켈 양극재가 독보적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울트라 하이니켈은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소수 기업만이 양산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프리미엄 시장 회복은 곧 하이니켈 양극재 출하량 증가로 직결되고 있다.
한편 ESS 시장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 재생에너지 연계 수요, 에너지 안보 이슈가 맞물리며 전기차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2035년까지 글로벌 ESS 누적 설치 용량이 2024년 대비 약 12배 증가한 2.0T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SNE리서치에 따르면 북미에서는 올해 ESS 배터리 수요가 지난해 대비 50%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재생에너지 연계를 넘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ESS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의미로, 전기차의 보조 수요처에 머물던 ESS가 전력망 핵심 인프라 산업으로 위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양극재 산업의 경쟁 구도도 변화하고 있다. 프리미엄 전기차에서는 하이니켈 삼원계(NCM)가, ESS와 보급형 전기차에서는 리튬인산철(LFP)이 핵심 역할을 수행하면서, 시장 용도별로 최적 기술이 분화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결국 단일 소재의 우위가 아니라 포트폴리오의 유연성이 경쟁력의 기준이 되고 있다.
여기에 LFP 공급망의 90% 이상이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구조적 리스크로 부각되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글로벌 양극재 출하량의 72%를 LFP가 차지했으며, 출하 상위 10개사는 모두 중국 기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중국산 ESS 배터리에 43%를 웃도는 관세를 부과하고 역내 조달 요건을 강화하는 흐름은 공급망 자체가 산업 경쟁력의 결정 변수가 됐음을 의미한다.
엘앤에프는 이에 대응해 하이니켈과 LFP의 '투 트랙 체계'를 구축해 왔다. 1분기에는 울트라 하이니켈 단독 공급과 46파이 신규 제품 출하 확대로 가동률 회복과 실적 개선을 이뤘고, LFP는 상반기 엘앤에프플러스 준공을 마무리하고 8월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공급망 측면에서는 LS그룹 합작사 LLBS를 중심으로 광산·정제련·전구체·양극재·리사이클링으로 이어지는 해외우려기관(FEOC) 규제 충족 공급망 구축도 추진 중이다.
캐즘 이후의 시장은 경쟁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는 구간이다. 하이니켈 기술력, LFP 양산 대응력, 비중국 공급망 확보는 양극재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변수이며, 이에 대한 대응은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 배터리 가치사슬 전반의 과제다.
엘앤에프 이병희 최고운영책임자(COO) lfpr@land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