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고, 이를 수행하는 과학기술인 역시 그렇습니다. 과기인이 보다 존중받는 사회를 이루는 것은 국가 전체 발전을 이루는 것에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창립 60주년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취임한 권오남 신임 회장은 과기인에 대한 처우 개선과 위상 제고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과기인이 현 국가 위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 앞으로도 역할이 큰 것을 고려해 과기인에게 그동안 없었던 '레드 카펫'을 깔아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가 최고 권위의 대통령상인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부터 손 봐야 한다고 피력했다. 과거에는 여러 과기 분야에 걸쳐 한 해 3~4명씩 시상했는데, 현재는 단 한 명 시상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공학 분야 후보가 자연생명 분야 후보와 수상을 다투는, 마치 베토벤과 피카소가 경쟁하는 듯한 의아한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상금도 제정 후 20년 넘게 그대로여서, 과기인 처우의 박한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했다.
권 회장은 높아지는 위상만큼 과기인이 더 많은 역할을 도맡을 것이라는 뜻도 전했다. 과총도 과기인 집단지성을 국가 대계에 반영하는 '정책 플랫폼' 역할을 자임하는 등 국가에 보답하는 더 많은 길을 찾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은 이미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경쟁력이 된 상황으로, 앞으로 과총의 60년 간 영향력은 지난 60년을 아득히 초월할 것이 분명하다. 이를 준비하는 취임 100일 차 권 회장을 만나 향후 구상과 복안, 여러 현안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대담=김정희 전자신문 전국부 부장

-이전에 여러 단체를 이끌었는데, 과총 회장직은 어떤 게 다른지.
▲과거 여성과총과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 등 조직을 이끌었는데, 당연히 과총 회장직이 더 무겁다. 604개 회원단체와 500만 과기인을 잇는 대표 조직이고 기초와 응용, 대형·중소 학회, 지역과 세대, 국내외 과기계를 함께 봐야 한다.
올해 창립 60주년이라는 점도 그렇다. 지난 60년 성과 기념은 물론, 앞으로 60년을 어떻게 설계할지도 답해야 한다. 교수로서 연구 현장과 학생들 가까이에서 느낀 불안·기대를 과총 정책 의제로 바꾸는 것이 임기 내 이어갈 일이다. 현장 목소리를 정책과 행동으로 옮기겠다.
-취임 후 강조한 '공명하는 혁신'은.
▲604개 과총 회원단체가 각자 전문성·목소리를 잃지 않으며, 국가 의제 앞에서는 하나의 큰 울림을 만드는 구조다.
이것이 구호가 아닌 작동하는 구조임을 지난 100일 동안 보였다. 지난 3월 학술단체 의견조사에서 받은 연구 현장의 요구를 5개 분야(이학·공학·농수산·보건·종합) 학술진흥위원회가 정리하고, 과학기술정책위원회가 이를 정책 언어로 다듬는 파이프라인이 이미 돌아가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요구가 하나의 정책 의제로 수렴되는 이런 과정이 곧 공명의 실제 모습이다.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게 들렸던 중소 학회, 지역, 청년 과기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례 소통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강점을 살려 더 큰 협력으로 잇는 이것이 과총 혁신의 출발점이다.

-과총의 정책 영향력을 높이겠다는 계획은.
▲과총은 의견을 전달하는 기관에 머물지 않고, 정책 형성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과기계 대표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의제를 먼저 던지고 정부를 움직이는 조직으로 바꾸겠다.
성명서·건의문을 더 많이 내겠다는 뜻이 아니다. 현장의 문제의식을 데이터로 정리하고, 정부·국회가 검토할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미다.
이미 가동 중이다. 앞서 밝힌 3월 학술단체 조사와 분야별 학술진흥위 수렴 결과를 토대로 '학술 활동 지원체계 개선안'을 정리 중이며, 이를 정부·국회 대상 정책 제안으로 연결하겠다.
또 임기 첫해 안에 우리의 정책 제안이 정부·국회에 어디까지 반영됐는지 회원단체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정책반영 추적 체계'를 구축하겠다. 반영되지 못한 사안은 그 이유까지 밝혀 다음 제안을 더 날카롭게 벼리는 근거로 삼겠다.
-만약 전 정부의 R&D 예산 삭감 사태가 재현된다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과총이 당시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2024년도 정부 R&D 예산안이 전년 대비 16.6% 삭감되자, 과총은 연구 현장의 우려를 정부에 전했고,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회·정부 관계자를 만나 투자 확대와 기초연구·청년 과기인 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노력이 증액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역대 최대인 35조 5000억 원으로, 과제는 '이 큰 예산을 어떻게 제대로 쓰느냐'로 옮겨가야 한다.
과총은 증액을 요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산이 기초연구와 청년, 장기 과제에 제대로 배분되는지, 평가·집행이 합리적인지를 현장에서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맡겠다.
이를 위해 분야별, 청년·지역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연구 인력과 과제, 분야별 투자 현황 등 데이터를 지속해 축적하겠다. 그래야 예산이 흔들릴 때 감정이 아닌 데이터로, 단순 문제 제기를 넘어 실질적 대안으로 말할 수 있다.

-기초과학 연구와 실패 용인의 중요성도 강조해 왔는데.
▲오늘날 AI·바이오·반도체·우주산업의 화려한 응용은 모두 기초과학을 뿌리로 서 있다. 뿌리가 마르면 가지가 무성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기초연구 과제를 확대하고, 5~7년 이상 장기 연구 트랙과 예측 가능한 예산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평가 역시 논문과 특허 수 중심에서 벗어나 문제 정의 진전, 가설 정교화, 실패로 축적된 지식까지 반영해야 한다. 실패는 연구 종착점이 아닌 '다음 질문으로 가는 과정'이다.
아울러 박사후연구원 고용 안정과 경력 경로를 강화하고, 연구 기획·평가·집행 전 과정에 연구자가 주체로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과기 국제협력은 중요하지만, '퍼주기식' 우려도 있다. 옥석을 가릴 방안은.
▲퍼주기 우려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 정부 국제 공동연구 예산이 단기간에 세 배 가까이 늘어 집행 실적을 채우고자 2·3류 기관과 손잡는 일이 우려된다. 이럴 때일수록 '얼마나 많이'가 아닌 '누구와, 무엇을 위해'가 기준이 돼야 한다.
또 옥석을 가리는 원칙은 두 갈래여야 한다. 하나는 이미 세계적 성과를 내는 우리 강점 분야와 선도 연구자를 두텁게 지원하는 '보텀업'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차원에서 세계 1류 연구기관과 협력의 길을 새로 여는 '톱다운' 방식이다. 이 둘이 병행될 때 우리 연구가 세계 중심부와 연결된다.
우리 연구자가 세계 학계의 신뢰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과총이 가교로서 이 역할을 하겠다. 노벨상을 비롯한 국제 과학상은 '추천된' 후보 중에서 수상자를 선정해, 추천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뛰어난 업적도 세계의 눈에 띄지 않는다. 내년 신규사업으로 'K-넥서스 신진 연구자 글로벌 학술교류 지원사업'을 추진, 신진 연구자가 글로벌 석학·재외 과기인과 지속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

-급격한 AI 발전에 '코딩 교육 무용론'도 불거진다. AI 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AI가 코딩을 대신하면서 세계 빅테크 신입 채용이 최근 3년간 절반 넘게 줄었고, 국내에서도 초급 개발자 채용이 77%까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코딩 열풍도 빠르게 식었다.
그러나 이런 '코딩 교육 무용론'은 틀렸다. 무용해진 것은 '문법을 암기하는 코딩'이지, 문제를 설계하는 힘이 아니다.
AI가 코드를 대신 짜줄수록, 문제를 논리적으로 나누고 해결 과정을 설계하며 결과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능력, 즉 '계산적 사고'가 더욱 귀해진다.
수학자로서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다. 수학에서는 전제·조건이 틀리면 아무리 정교한 풀이도 결코 옳은 답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AI도 같다. 흔들리지 않아야 할 기본은 바로 '질문하고 검증하는 힘'이다.
미래 교육은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더 나은 질문을 만들며 답을 비판적으로 따져보는 힘을 기르는데 집중해야 한다. 이런 근본 역량에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급격한 과기 발전에 대응하는 가장 확실한 자세라고 믿는다.
-심각한 의대 쏠림 현상 해법은.
▲이는 과기인의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 사회적 신뢰가 부족하다는 신호다. 우수한 인재들이 '과학자의 길'에서 안정적이고 존중받는 미래를 확신하지 못해 다른 진로를 택하는 것이다. 이를 탓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제는 쏠림이 의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부 반도체 계약학과 선호도가 의약학 계열에 버금갈 만큼 높아지고 있다. '쏠림의 2단계'다. 기초과학을 비롯한 비인기 분야가 공동화되고, 결국 국가 차원의 인력 미스매칭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랜 수학 교육자 생활로, 학생들의 이공계 외면이 '수학·과학으로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는지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탓' 이라는 것을 느꼈다. 문제를 깊이 탐구하고 스스로 답을 발견하는 기쁨이 쌓일 때 학생들이 이공계를 진로로 선택한다.
교육 현장 노력만으로는 이 흐름을 바꿀 수 없다. 연구자의 처우와 경력 경로, 청년 연구자에게 한 번의 실패가 경력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재도전 안전망'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 교육 단계에서는 흥미와 도전의 경험을, 연구 현장에서는 안정적인 미래를, 사회 전체로는 과기인에 대한 존중과 보상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과총이 이에 힘을 보태겠다.

-임기를 마칠 때 듣고 싶은 평가가 있다면.
▲과학기술은 이제 산업 경쟁력의 수단을 넘어, 국가안보와 국민의 삶, 미래 세대의 기회를 좌우하는 핵심 가치다. 그만큼 과총의 역할도 단순 의견 수렴이나 사업 수행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창립 60주년을 계기로, 과기계 집단지성을 국가 전략으로 전환하는 정책 플랫폼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장의 절실한 목소리를 정부·국회·산업계·국민에게 전달하고, 실행 가능한 정책 대안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청년과 지역, 중소 학회가 '내 목소리가 정책 논의에 닿고 있다'고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로써 '청년에게는 희망을, 현장에는 신뢰를, 국가에는 전략을 제시한 과총이었다'는 말을 임기를 마칠 때 듣고 싶다.
과총은 옆에서 따라가는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 과기계 전체의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선도 주자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제가 만들고 싶은 과총의 모습이다.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은
권오남 회장은 이화여대 과학교육과(수학전공)를 졸업하고, 서울대 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여성과총) 회장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직무대행을 역임했으며, 현재 세계수학교육심리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월에는 제22대 과총 회장으로 선출돼, 3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