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위고비·마운자로로 다이어트에 성공했거나, 체형 관리를 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헌혈 현장에선 이런 상황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채 주먹구구식 채혈 관리가 여전하다고 한다. 이들 인기약 사용자들이 헌혈을 한 뒤, 자신신고를 하면 혈액은 폐기되고 안 그러면 그대로 수혈에 쓰인다.
이런 180도 다른 혈액 처리는 우리 낙후된 헌혈 행정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헌혈 전 문진 과정에서 이들 약물에 대한 구체적 투약 여부 확인 없이 헌혈자의 '자진 신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적십자사는 비만 치료제를 헌혈 금지 약물로 지정하지 않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처방 정보 전산망과 연계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헌혈자의 기억과 고지에만 투약 여부를 확인해야 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들 약물은 대개 자가 주사 형태여서 헌혈자들이 일반적 주사제 투여로 스스로 상황조차 인지못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현행 시스템 공백으로 인해 검증되지 않은 혈액이 수혈자에게 전달되거나, 반대로 버려지지도 않아도 될 소중한 혈액이 폐기되는 모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런 낙후된 대처는 만성적 혈액 수급난을 고려할 때 더욱 뼈아프다. 국정감사에도 드러났듯 지난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채혈 후 폐기된 혈액량이 연평균 10만 유닛 이상에 달한다. 현재 전국 적혈구 보유량 역시 적정기준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한쪽에선 한 방울의 혈액이라도 귀중하다며 헌혈을 호소하면서, 다른쪽으론 명확한 과학적 근거 없이혈액을 기계적으로 폐기하는 관행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등 국가는 기저질환만 조절되면 비만 치료제 투약자도 제한 없이 헌혈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명확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헌혈자의 선의와 자진 신고에만 기대는 미봉책으로는 급변하는 의학 환경과 신약 대중화 시대를 감당하기 어렵다. 차제에 보건당국과 적십자사는 신약 투약자에 대한 혈액 관리 가이드라인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비만 치료제의 수혈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신속히 정립하고 그것을 알려야 한다.
아울러 급증하는 신약 정보를 현행 헌혈·수혈 정보체계와 효율적으로 연계하는 시스템 개선도 시급하다. 이를 통해 의학·신약 업계의 정보 활용성을 높여주고, 투명한 정보 환경 아래 관련 신약 개발과 국내 적용·임상도 활성화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혈액 부족국가 현실을 타개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혈 안정성과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이진호 기자 jholee@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