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AI의 '마지막 1마일' 데이터 스페이스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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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모 엠큐닉 대표이사

인공지능(AI) 기술이 거대언어모델(LLM)과 멀티모달(Multimodal)의 파도를 타고 글로벌 실물 경제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바야흐로 단순한 생성형 AI의 대중화를 넘어, 제조·물류·모빌리티 등 실물 산업 현장에 AI를 융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인공지능 전환(AX)'의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기술적 성취 뒤에는 차가운 현실이 존재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AI 솔루션이 가동 현장과 인프라를 연결하는 최종 단계, 즉 '마지막 1마일(Last Mile)'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 AX의 성패를 가르는 이 마지막 1마일의 핵심은 더 이상 알고리즘의 고도화나 단일 하드웨어의 연산 속도가 아니다. 본질적인 해결책은 분산된 영역에 존재하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의 상호 운용성 확보와 안전한 연결에 있다.

이러한 한계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스마트시티 교통 제어 등을 아우르는 미래 모빌리티 생태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다. 모빌리티 산업은 완성차 제조사, 부품사, 통신사, 플랫폼 기업, 지자체의 교통 인프라까지 수많은 이종 이해관계자가 얽힌 연합 생태계다. 각 주체가 보유한 데이터가 유기적으로 융합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이라도 특정 영역에만 갇힌 '우물 안 개구리'식 부분 최적화에 머무르게 된다. 중국은 이미 바이두(Baidu)의 자율주행 플랫폼 '아폴로(Apollo)'를 앞세워 1억km 이상의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우한과 베이징 등 대도시 전역에서 상용화 속도를 높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제한적인 규제 샌드박스 아래 72만km 수준의 데이터 축적에 그치며 제한된 테스트 운행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격차의 이면에는 기업들이 영업비밀 유출이나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 상실을 우려해 핵심 데이터를 공유하기를 거부하는 고질적인 '데이터 고립(Data Silo)'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데이터가 흐르지 않으니 공공 데이터나 파편화된 오픈소스 데이터에만 의존하게 되고, 학습 데이터의 질적 저하로 AI의 예측력과 신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 교착 상태를 타개할 유일한 해법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데이터 스페이스(Data Space:데이터 공간)'다. 데이터 스페이스는 공공이나 특정 플랫폼이 데이터를 한곳에 긁어 모아 통제하는 기존의 중앙집중식 허브나 클라우드 스토리지와는 궤를 완전히 달리한다. 데이터의 물리적 소유권은 원보유자에게 그대로 남겨둔 채, 사전에 합의된 정책 규칙에 따라 필요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거래·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연합형(Federated) 분산 아키텍처'다.

이 연합형 데이터 경제를 실현하는 기술적 핵심은 가이아엑스(Gaia-X) 프로젝트나 국제데이터스페이스협회(IDSA) 표준 가이드라인을 충족하는 '이클립스 데이터스페이스 커넥터(EDC)' 기술이다. EDC는 다자간 데이터 교환 과정에서 정책 강제 이행, 사용 이력 로깅, 감시 및 정산 기능을 분산 프레임워크 상에서 수행함으로써 대기업 플랫폼에 대한 종속성 없이 데이터 주권을 수호한다. 유럽연합(EU)이 자동차 공급망을 중심으로 '카테나엑스(Catena-X)' 생태계를 빠르게 확장하며 이를 환경 규제 및 공급망 실사 지침과 연계하는 이유도 글로벌 표준을 선점해 자국 산업의 데이터 주권을 지키기 위함이다. 국가 전체의 동력으로 확장하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추진 중인 '한국형 데이터 스페이스(K-Data Space)' 참조모델 및 표준화 전략을 본격화해야 한다. 거버넌스, 인프라 등 5계층 아키텍처와 3개 관점 프레임워크로 설계된 K-Data Space는 연합 구조를 유지하면서 독일의 DIN SPEC 27070 보안 표준 및 일본의 IEEE P3800-2024 신뢰 아키텍처 사양을 포괄한다. 특히 사용 이력 로깅 및 청산 관리(Clearinghouse) 기능을 분산 원장 기술과 융합함으로써 데이터 거래 이력을 투명하게 검증하고 정산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다.

나아가 모빌리티 분야에서 데이터 스페이스는 차량 단말의 한계를 뛰어넘어 교통 인프라와 연결하는 '인프라 우선(Infrastructure-First)' 전략과 맞물려야 한다. 차량 중심의 접근법을 넘어 도로 통신 및 관제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소프트웨어 정의 인프라(SDI)' 및 '도시 OS'의 가동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IT 및 OT 리소스를 가상화하여 추상화, 접근성, 자동화라는 '3A(Abstraction, Access, Automation)' 가치를 실현하는 SDI 환경이야 말로 공간지능 데이터가 흐르는 디지털 고속도로가 된다. 실제로 도로변 CCTV 비전 데이터와 영상언어모델(VLM)을 결합해 돌발 상황을 실시간 감지하거나, 시공간 학습 모델을 활용해 도시 단위의 교통 흐름을 예측하는 '공간 AI' 기술들이 하나 둘 결실을 맺고 있다. 인프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국내 혁신 스타트업들의 출현은 이러한 인프라 우선 전략의 유효성을 적극 뒷받침한다.

자율주행과 모빌리티의 미래는 결국 개별 차량의 독자적인 성능이 아닌, 인프라와 차량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거대한 플랫폼 위에서 완성된다. 대한민국이 이 흐름에서 글로벌 '플랫폼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먼저 데이터 스페이스를 국가 차원의 전략적 핵심 인프라로 지정하고, 범부처를 수평적으로 연계할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법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 또 정부 주도로 'K데이터 트러스트'를 수립해 대기업의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고, 중소·스타트업도 양질의 비정형 데이터에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 환경을 열어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구시대적 규제와 대기업 중심의 폐쇄적 관성에 머무른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어 기술 식민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반대로 데이터 주권을 지키는 연합형 생태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한다면, 우리는 세계 무대를 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로 위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은 육중한 자동차이지만, 그 흐름의 안전과 최적화된 질서를 제어하는 힘은 보이지 않는 backend의 데이터 스페이스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승모 엠큐닉 대표이사 smyoo@mqn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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