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시대, 한국외대다움은 무엇일까. 한국외대는 지난 72년 동안 외국어를 가르치는 대학을 넘어 외교·통상·국제교류·특수외국어 교육의 핵심 거점 역할을 맡아왔다. 국가 차원의 세계화 전략과 함께 성장하며 세계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인재를 길러내 한국 사회의 글로벌 확장을 이끌었다.
어학과 인문학을 대표해 온 한국외대 구성원은 지난해 말 예상 밖의 선택을 했다. 한국외대 역사상 처음으로 통계학과 출신 이공계 교수를 총장으로 선출한 것이다. 올해 초 취임한 강기훈 총장은 직선제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1위를 기록했고, 학생·교수·직원 투표에서도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 같은 선택은 AI 시대의 변화 속에서 한국외대의 방향성과 경쟁력을 고민하는 구성원들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 총장이 말하는 경쟁력은 단순한 방향 전환이 아니다. 한국외대가 가장 잘해온 언어·지역학·인문학의 강점을 AI와 데이터 위에서 더욱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외대의 고유한 가치를 유지하면서 AI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기민한 전략이다. 다음은 강기훈 한국외대 신임 총장과의 일문일답.
대담=신혜권 이티에듀 대표
-한국외대 역사상 첫 이공계 출신 총장인데 그 의미는.
▲구성원들의 기대와 함께 다양한 시선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외대가 달라지겠구나'라는 기대도 있을 것이고, 일부 우려도 있을 것이다. 첫 이공계 총장이라는 변화는 인문학에서 공학으로의 전환이 아니라 '한국외대다움의 새로운 확장'이다.
현재는 AI와 데이터 기술이 교육과 사회 전반을 재편하는 시대다. 언어와 문화,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는 오히려 더 중요하다. AI가 정보를 처리할 수는 있어도,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힘은 결국 언어와 인문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계학자로서 데이터를 통해 변화의 흐름을 읽고 의미를 찾는 일을 해왔다. 직감과 관행에 의존하기보다 데이터에 기반해 현실을 진단하고, 구성원과 함께 미래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외대다움의 확장'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한국외대의 강점은 언어를 기반으로 각 지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함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어를 전공한 학생은 중국 사회와 소비문화, 정치 환경과 여론 흐름까지 읽어낼 수 있다. 중국 MZ세대가 무엇에 열광하고 어떤 소비 패턴을 보이는지 중국 SNS와 현지 데이터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 자체가 큰 경쟁력이다. 브라질이나 동남아시아, 중동, 중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외대 학생들은 각 지역의 언어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AI와 데이터 분석 역량이 결합하면 그 파급력은 상상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이를 테면 브라질 환경 데이터와 농업 데이터를 분석해 글로벌 곡물 시장 변화를 예측하거나, 동남아 소비 트렌드를 분석해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과 시장 기회를 발굴하는 일이다. 이러한 새로운 먹거리를 제시하는 역할은 AI 시대에 언어·인문학·지역학을 이해하는 데이터 기반 AI 인재가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러한 인재를 가장 잘 키워낼 수 있는 대학이 바로 한국외대라고 생각한다.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둔 핵심 과제와 임기 안에 이루고 싶은 변화는.
▲AI 시대를 선도하는 글로벌 융합대학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한국외대가 가진 언어·지역학·인문학의 강점과 첨단기술을 결합해 한국외대만의 미래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크게 네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다. 먼저 AI 캠퍼스 구현이다. 특정 전공 학생들만 AI를 배우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학생이 AI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산학협력 강화도 핵심 축이다. 이미 네이버클라우드, LG CNS 등과의 협력을 통해 AI 인프라와 공동연구, 현장 중심 인재 양성 체계를 구체화하고 있다. 한국외대의 다국어·지역학 역량은 글로벌 기업들의 AX·DX 전략과도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한국외대만의 글로벌 싱크탱크 구축 추진과 서울-글로벌-송도를 연결하는 트리플 캠퍼스 전략도 강화한다.
이 네 가지 방향을 통해 구성원과 학생들이 '한국외대가 달라졌다'가 아니라 '한국외대의 강점이 훨씬 커졌다'고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임기 내 만들고 싶다. AI 시대에도 한국외대의 정체성이 더욱 선명해지고, 학생들이 졸업 후 더 큰 경쟁력을 갖는 대학으로의 도약이 목표다.
-AI 캠퍼스 전략으로 학생들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되나.
▲AI로 세계를 읽는 능력이 길러질 것이다. AI는 특정 전공 학생들만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영어를 배우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모든 학생이 갖춰야 할 기본 역량이다. 어문·사회과학·경영·공학 계열 등 각자 전공 안에서 AI를 이해하고 활용 가능해야 한다.
AI 캠퍼스는 단순히 AI 관련 학과를 신설하는 개념이 아니다. 교육·연구·행정·학생 등 전반에서 AI와 데이터를 접목해 대학 운영 방식 자체를 혁신하는 모델이다. 한국외대가 축적해 온 다국어 데이터와 지역학 연구 자산, 글로벌 네트워크를 AI와 결합하고, 학생들이 AI 기반 다국어 상담과 맞춤형 학습 지원 등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 배움의 방식 자체를 전환한다.
획일적인 방식이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과 관심 분야에 맞춘 단계별 AI 교육 체계를 운영하고, 대학 본부 직속 AI융합교육원을 설립해 대학 전체 차원의 AI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취임 후 네이버클라우드, LG CNS 등과의 협력도 속도를 내고 있는데.
▲네이버클라우드와는 한국외대가 보유한 다국어 데이터와 지역학 자산을 기반으로 협력을 추진 중이다. AI 캠퍼스 구축과 공동 연구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LG CNS와는 글로벌 DX·AX 인재 양성이 핵심이다. 해외 현지 언어와 문화, 법·제도·비즈니스 환경까지 이해하면서 AI 기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함께 키우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재학생 약 20여 명이 LG CNS 글로벌 인턴십에 참여할 계획이며, 해외 현지 파견도 포함돼 있다. 기업은 단순한 개발 역량보다 언어와 지역 이해 역량을 갖춘 학생들에게 주목한다. 향후 인턴십을 통해 양측의 신뢰와 성과가 축적된다면 계약학과 등 보다 구체적인 협력 모델로 확대할 것이다.
-AI로 인해 어문학과 인문학의 위기라는 우려가 있는데.
▲과거처럼 언어 자체만 익히고 교육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자동번역 기술과 AI 기반 통번역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의 본질까지 대체하긴 어렵다.
외교·통상·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람 사이의 신뢰와 관계 형성이 핵심이다. 단순히 언어를 번역한다고 협상과 소통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국가와 문화, 사회적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 국가의 정서와 분위기, 문화적 코드까지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AI 시대에 언어와 지역학, AI와 데이터를 함께 이해하는 인재가 더 중요해진다는 뜻이고 인문학과 언어 교육의 가치가 오히려 더 커지는 이유다.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글로벌 싱크탱크의 모습과 역할은.
▲한국외대는 세계 각 지역의 언어·역사·정치·경제·문화를 아우르는 독보적인 연구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별 연구소와 분야 중심으로 흩어져 운영되면서 대학 전체의 시너지로 이어지지 못했다. 파편화된 지역 연구 역량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해, 한국외대가 보유한 네트워크와 연구 역량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국가와 산업, 국제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략적 지식을 제공하는 종합 체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외교·안보·통상 전략과 글로벌 문화콘텐츠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외대만의 연구 브랜드를 구축하고자 한다. '글로벌외교안보통상전략연구원'은 외교·안보·통상 분야에서 국제 정세 분석과 정책 제언을 수행하며 국가 전략 수립에 기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글로벌문화콘텐츠&트렌드연구원'은 K-컬처와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흐름을 연구하고, 세계 각 지역의 문화와 소비 트렌드를 분석하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한국외대에 외국인 유학생 3800여 명이 재학 중이다. 이제는 유치보다 관리와 지원이 더 중요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외대 유학생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이다. 현재 40여 개국 출신 학생들이 재학 중이며, 유럽·중남미·아프리카 등 출신 지역도 폭넓다. 이러한 다양성 자체가 한국외대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제 외국인 유학생 정책도 입학 지원을 넘어 '입학-학업-생활-진로-동문'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성장 생태계로 확장돼야 한다. 학업 적응과 생활 상담, 진로 설계까지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AI 캠퍼스와 연계한 24시간 다국어 상담 서비스 등도 제공할 계획이다. 글로벌 동문 네트워크를 통해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외대와의 연결이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데이터 기반 책임 경영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오나.
▲대학 운영이 감이나 관행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생 충원, 재정, 교육 성과, 연구 경쟁력, 국제화 등 주요 지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총장 직속 혁신전략실 설치와 실시간 경영 대시보드 구축은 단순한 숫자 관리 시스템이 아니다. 대학의 강점과 문제를 구성원들과 투명하게 공유하고 정책의 효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장치다. 사업을 추진하고 제도를 바꾸는 이유에 대해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의 근거가 명확할 때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학령인구 감소, RISE 사업 전환 등 고등교육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응 방안은.
▲오랫동안 축적해 온 언어·지역학·국제화 역량 위에 AI와 데이터, 첨단산업, 지역혁신을 연결하며 서울-글로벌-송도를 잇는 트리플 캠퍼스 전략을 추진한다. 서울캠퍼스는 인문사회 분야 정체성을 강화하고, 글로벌캠퍼스는 AI·데이터 기반 융합교육과 첨단산업 연계 거점으로, 송도캠퍼스는 바이오와 국제화 플랫폼으로 육성한다.
RISE 등 지역혁신 정책에서도 한국외대가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글로벌캠퍼스가 위치한 용인은 반도체와 첨단산업의 핵심 거점이다. AI와 데이터, 공학 분야에 한국외대의 언어·국제화 역량을 결합해 지역 산업이 필요로 하는 글로벌 융합 인재를 양성한다. 결국 대학은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과 산업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기관이 돼야 한다.
-QS 국내 10위 목표를 제시했는데 전략은.
▲지역학 연구와 특수외국어 교육의 강점을 키우고, 연구지원 체계도 논문 수보다 영향력과 질 중심으로 혁신하겠다. AI와 데이터 기반의 연구 지원과 국제 공동연구를 확대해 교육·연구·국제화가 맞물리는 선순환 구조 구축이 핵심이다. 3년 정도 지나면 변화의 성과가 가시화되면서 QS 국내 톱 10 진입도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외대가 어떤 대학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단순히 변화를 따라가는 대학이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방향을 먼저 제시하는 대학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언어로 세계를 연결해 온 한국외대가 이제는 AI와 데이터까지 연결하는 '글로벌 지식혁신 허브 대학'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강기훈 한국외대 총장
1966년 제주 출생으로 제주제일고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통계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호주국립대 근무를 거쳐 2001년 한국외대 통계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행정지원처장, 산학연계부총장 등을 거치며 대학 행정과 산학협력 분야 경험을 쌓았다. 현재 한국통계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통계위원회 위원, 과기정통부 기초연구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계와 정책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과 옥조근정훈장을 수상했으며, 지난해 한국외대 총장 선거에서 교수·직원·학생 각 집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