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미래 친환경 조선산업의 핵심, 고부가가치 혁신 소재

글로벌 조선해양 산업 경쟁 지형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대형화, 건조 속도, 원가 경쟁력이 시장을 지배했다면 이제는 강화되는 환경 규제와 에너지 전환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의 깊이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선은 친환경 선박 시장 핵심 축으로 자리잡았고 액화수소(LH2) 운송선은 탄소중립 시대를 향한 차세대 전략 선종으로 부상 중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이들 선박의 미래 경쟁력은 더 이상 '어떤 설계를 했는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제는 '무엇으로 만들었는가'다. 즉 소재 혁신이 성패를 가르는 시기가 왔다.

LNG 운송선 시장은 이미 성숙기에 들어선 듯 보여도 경쟁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연료 효율 개선과 증발가스(BOG) 관리, 극저온 환경에서의 장기 안정성은 기본 요건이다. 운송 가능함을 넘어 운용 기간 내내 안전성과 경제성을 유지하는 '신뢰성'이 핵심 가치가 되고 있다.

LH2 운송선은 도전 강도가 훨씬 높다. 영하 253도의 초극저온 조건, 수소 취성, 미세 누설에 대한 높은 민감도는 기존 조선 기술의 단순 확장만으로 대응이 어렵다. 결국 LNG와 LH2 운송선 모두 공통 질문은 하나로 수렴한다. 극저온·수소 환경을 버티는 소재와 그 소재 신뢰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지점에서 소재는 부품 중 하나가 아닌 시스템 전체 기반이 된다. 극저온에서도 인성과 강도를 유지하는 금속 소재, 수소 취성을 억제하는 합금 설계 기술, 열 유입을 차단하는 고성능 단열·차폐 소재, 접합부와 용접부의 미세 결함을 관리하는 공정·검사 기술은 화물창 안전의 본질이다.

선박 설계나 추진 시스템이 아무리 진화하더라도 이를 실제 최고 수준의 성능을 가진 선박으로 구현하게 만드는 건 결국 소재 물성이다. 친환경 선박 경쟁력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시스템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소재의 과학과 데이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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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화수소의 장점과 단점

단, 소재 경쟁력은 단기간에 확보되지 않는다. 소재는 기초 연구에서 시작해 실증·장기 신뢰성 평가, 국제 규격 및 인증, 양산 체계 구축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초극저온·수소 환경 소재는 단발성 성능 시험만으로는 부족하다. 초극저온과 수소라는 극한 환경, 반복되는 열사이클에서의 용접부 취약성, 장기 열 유입에 따른 성능 저하 등 '현장 조건'을 반영한 수년 단위 신뢰성 데이터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 장기 인프라와 데이터를 축적하지 못하면 기술은 활용할 수 있는 신뢰성을 갖춘 기술로 이어지지 못한다.

따라서 정책 초점도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친환경 조선의 핵심 소재를 전략 기술로 지정하고 국가 R&D 사업 지향점을 '단기 데모'에서 '전 주기 성숙도 확보'로 바꿔야 한다. 연구개발-실증-신뢰성-표준·인증-양산으로 이어지는 전 단계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둘째, 초극저온·수소 환경 소재 시험·평가 인프라를 공공영역에서 구축해야 한다. 기업 단독으로는 구축 비용과 장기 운영 부담이 크고 데이터도 파편화된다. 공공 인프라를 중심으로 시험 프로토콜과 데이터 형식을 표준화하고 산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공용 데이터 플랫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표준화된 데이터와 공공성을 갖는 데이터 플랫폼 구축은 인공지능(AI)과 연계해 그 효용성을 더 크게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국제 규정·선급 인증과 연동된 R&D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출연연의 역할, 특히 재료·소재 전문 출연연의 주도적 역할은 결정적이다. 소재 혁신은 장기 축적과 반복 검증, 실패를 감내하는 구조가 필요한데 시장 압력 속에서 단기성과를 요구받는 개별 기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공공 연구기관이 '기반 기술의 소유자'이자 '검증 체계의 운영자'로서 산업 생태계를 견인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2025년 말 출범한 '한국재료연구원-삼성중공업 재료혁신연구센터'다. 삼성중공업은 현장 수요 발굴과 기술 로드맵 실증·검증을 맡고 한국재료연구원은 소재로 대표되는 기반 기술의 개발과 신뢰성 평가를 맡는다. 초기 집중 분야로 LNG 화물창(멤브레인) 소재, LH2 관련 초극저온 소재 및 제조 기술 등을 제시하며 조선·해양 소재 기술개발 허브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이 같은 모델은 정책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하나, 소재 전문 출연연이 산업체와 결합해 '수요 기반 로드맵-기반 기술-신뢰성 평가-실증'의 사슬을 만든다면 기술개발은 훨씬 빠르게 실선 적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 센터형 협력 구조는 기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장기 시험과 데이터 축적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국가적으로 재사용 가능한 자산으로 전환한다.

셋, 궁극적으로 이는 '기술 확보'가 아닌 '기술 자립과 생태계 강화'로 연결된다. 즉 친환경 조선 경쟁력의 유지뿐만 아니라 LH2 시대의 시장 확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출연연이라 할지라도 정부의 장기적인 정책 지원이 없이 이를 실현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 전략 기술로서의 소재 기술부터 친환경 선박 기술에 이르는 거대한 전주기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비용적 측면과 기술개발 기간적 측면에서 전략 기술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전략적 지원이 절실하다.

국가 R&D는 전주기 프로그램으로 재편돼야 하며 재료 전문 출연연은 산업계와 함께 신뢰성 평가와 데이터 축적을 주도하는 게임체인저가 돼야 마땅하다. 조선해양 강국의 다음 단계는 결국 소재 혁신을 장기적인 정책 지원 하에 누가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이를 어떻게 축적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철진 한국재료연구원(KIMS)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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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진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필자〉 1961년생으로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재료공학 석·박사를 받았다. 1986년 한국재료연구원에 입사해 나노분말재료그룹장, 나노기능분말연구그룹장, 분말.세라믹연구본부장 등을 수행했다. 2024년 한국재료연구원 제7대 원장에 취임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심의)회의 기계.소재 전문분과 위원장,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 대한금속재료학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2024년 과학기술 훈장, 2016년 국무총리 표창,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2010년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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