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中 가전 추격자에서 경쟁자로...韓·中 '프리미엄·B2B' 전장서 정면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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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전업체의 1분기 부진은 단순한 수치 감소가 아니다. 성장 동력이었던 내수 소비 가전 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마이디어가 2.6% 성장에 그치고 하이얼·하이센스가 역성장한 것은 중국 가전업계 전반 변곡점을 알리는 신호다.

중국 가전업체가 돌파구로 선택한 방향이 삼성전자·LG전자가 이미 걸어가고 있는 길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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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26이 2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 피라 그란 비아에서 열렸다. 중국의 애지봇 부스에서 관람객이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을 살펴보고 있다. 바르셀로나(스페인)=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2026.3.2

◇ 성장 엔진 꺼진 중국 가전…구조 변화 신호탄 “추격자서 경쟁자로”

중국 가전업체 성장 둔화에는 복합 요인이 겹쳐 있다. 내수에서는 중국 정부의 '이구환신(以舊換新)' 가전 교체 보조금 효과가 소진되고 있다. 앞당겨진 수요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울 새 성장 동력이 없다는 분석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관세 인상이 직격탄을 날렸다. 하이얼은 북미 관세 여파로 1분기 순이익이 15.2% 급감했다고 인정했다.

반면, B2B 부문은 견조하다. 마이디어는 빌딩 기술·로봇·자동화 부문에서 각각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다. 성장세가 소비가전에서는 막히고 산업용에서는 열린 셈이다. 중국 가전업체들이 AI 데이터센터 냉각, 스마트 빌딩, 산업용 자동화 쪽으로 자원을 집중하는 이유다. 과거 성장 공식이 통하지 않는 환경에서 찾아낸 현실적 출구다.

문제는 이같은 전략이 삼성전자·LG전자가 수년 전부터 개척한 영역과 겹친다는 데 있다. LG전자는 AI 데이터센터 냉각, 전장, 구독 서비스로 사업 무게중심을 이미 옮겼다. 삼성전자는 식기세척기·전자레인지 등 일부 가전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외주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스마트싱스 기반 B2B 스마트홈과 HVAC 확장을 통해 종합 솔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 중이다.

과거 중국 가전업체는 저가 제품으로 신흥 시장을 공략하는 '추격자'였다. 이제 양상이 다르다. TCL은 소니와 합작해 프리미엄 TV 시장에 뛰어든다. 하이센스 역시 TV 부문에서 프리미엄 제품근으로 기반으로 글로벌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마이디어는 AI 데이터센터용 액체냉각 설비를 직접 개발한다. 하이얼은 유럽·동남아 프리미엄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한국 가전업계가 선점한 전선으로 중국이 정면으로 밀어들어오는 형국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CES 2026에서 삼성전자가 비운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센트럴홀 자리를 하이센스가 채운 장면은 상징적”이라며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산업 경쟁 구도 이동을 압축해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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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한 한국전자전이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나흘 일정으로 열렸다. 마이디어 부스에서 관람객이 2kg+1kg 미니 세탁기 건조기를 살펴보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2025.10.21

◇얼마 남지 않은 한국 가전의 시간…선점 효과 얼마나 버티나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가전업체 현재 위상은 나쁘지 않다. 초프리미엄 제품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고, B2B, 구독 사업도 순항 중이다.

삼성전자는 체질 전환 초입에 있다. 저수익 품목 구조조정과 B2B 라인업 확충, 구독 서비스 해외 확대가 과제다.

삼성전자는 최근 가전 사업 구조개편에 착수했다. 식기세척기·전자레인지 등 저수익 품목 생산라인을 줄이고 외주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직접 생산 영역을 줄이는 대신 핵심 제품군에 자원을 집중하는 구조로 옮겨가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HVAC 거래선을 유럽과 북미, 아시아권으로 확대하고, 데이터센터 냉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액체냉각 설루션도 강화할 계획이다. 스마트싱스를 기반으로 B2B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B2B 특화 라인업 확충에도 나선다. 성장 사업인 가전 구독 서비스도 한국 판매를 가속화하고 해외 진출에도 발 빠르게 나설 계획이다.

LG전자는 B2B 전환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1분기 매출 23조7272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1조6737억원으로 32.9% 급증하며 시장 기대치를 11.8% 상회했다. 가전(HS)과 전장(VS) 사업본부 합산 매출은 사상 처음 10조원을 돌파했고, 전장 사업본부 영업이익률이 출범 후 처음으로 6%를 넘어서며 수익성을 입증했다. 구독 사업 매출은 64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 성장했다.

AI 데이터센터향 냉각 수주는 1년 만에 3배 증가했고, 2027년 칠러 매출 1조원 조기 달성을 전망했다. 로봇 사업도 가속화하고 있다. 상반기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초도 물량 양산에 돌입하고, 2028년 홈로봇 상용화를 목표로 엔비디아와 피지컬 AI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 업체가 중국에 비해 갖는 강점은 브랜드 프리미엄과 생태계 완성도다. 스마트싱스와 씽큐(ThinQ) 기반 스마트홈 생태계는 단기간에 복제하기 어렵다. 글로벌 B2B 레퍼런스와 수십 년간 쌓아온 유통망도 무형 자산이다.

그러나 자본력에서 중국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이디어가 3년간 13조원을 AI·스마트홈에 투자하겠다고 밝힌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 계획이다. 중국 업체 기술 추격 속도를 감안하면 현재 격차가 영원히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2~3년이 한·중 가전 경쟁의 향방을 가르는 분수령”이라며 “프리미엄·B2B·AI 전환 속도에서 얼마나 격차를 벌려 두느냐가 핵심 변수”라고 말했다. 먼저 개척한 전선을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지킬 수 있을지가 한국 가전업계 진짜 시험대라는 것이다.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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