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POSTECH)은 윤용주 화학공학과·시스템생명공학부 교수, 시스템생명공학부 통합과정 윤민지 씨 연구팀이 최근 생김새는 같지만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카이랄(Chiral) 분자'를 정밀하게 선택·생산할 수 있는 백금(Pt) 촉매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고 30일 밝혔다.

'카이랄 분자'는 왼손, 오른손처럼 서로 겹치지 않는 두 형태(거울상 이성질체)로 존재한다. 구성 성분이 똑같아도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1950년대 임산부에게 처방된 '탈리도마이드' 사례처럼 한쪽은 입덧을 완화하는 등 효과를 내지만, 다른 쪽은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약 산업에서는 원하는 방향의 분자만 만드는 것이 안정성과 효능 모두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다.
이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금속 촉매를 이용한 '수소화' 반응이다. 크기가 작고 가벼운 수소를 이용해 분자 구조를 바꾸는 이 과정에서는 백금(Pt) 등 금속 촉매가 반응이 빨리 진행되도록 돕는다. 여기에 촉매 표면에 '카이랄 개질제(반응 방향을 조절하는 보조 물질)'를 더하면, 반응물이 특정한 방향으로만 접근하도록 유도할 수 있어 원하는 형태의 분자를 선택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어렵다. 촉매 표면 성질을 바꾸는 '카이랄 개질제'가 촉매 표면에서 어디에 자리 잡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촉매 표면에는 가장자리나 모서리처럼 이웃하는 원자들이 적은 '불안정한 자리(저배위 자리)'와 비교적 평탄하고 원자 배열이 정돈된 '안정적인 자리(잘 배위된 자리)'가 함께 존재한다.
카이랄 개질제가 안정적인 자리에 자리 잡을수록 원하는 거울상 이성질체가 선택적으로 생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조 유기물을 이용해 안정적인 자리만을 선택적으로 노출시키는 촉매 표면 제어 방식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보조 유기물을 단일 처리하는 기존 방식은 불안정한 자리뿐 아니라 안정적인 자리까지 함께 덮어버리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촉매 표면을 반복적으로 조정하는 전략을 도입했다. 에틸렌디아민(EDA)이라는 간단한 유기 분자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카이랄 개질제가 잘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불안정한 자리에는 EDA 잔여물이 채워지고, 카이랄 개질제가 자리 잡기 적합한 안정적인 자리는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이와 동시에 백금 표면에도 전자를 덜 가진 상태의 백금이 늘어 카이랄 개질제가 보다 강하고 안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됐다. 마치 작업 공간을 조금씩 정리해 꼭 필요한 작업대만 남기게 된 셈이다.
실험 결과, 이렇게 설계된 촉매는 거울상 이성질체 선택도를 최대 96.5%까지 끌어올렸다. 반응 속도 역시 향상됐다. 연구팀의 기술은 두 형태가 섞인 상태로 생산된 뒤 원하는 것만 분리해야 했던 기존의 공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처음부터 원하는 형태의 분자를 높은 비율로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분리·정제 과정이 줄고, 생산 비용과 에너지 사용도 크게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의약품 품질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윤용주 교수는 “반복 공정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접근을 통해 촉매 표면의 전자 상태와 구조를 동시에 정밀하게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라며, ”이 기술은 거울상 이성질체 선택적 수소화 반응을 넘어 다양한 선택적 반응에서 촉매 성능을 향상시키는 범용 설계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사업과 선도연구센터(ERC)사업 지원을 받아 수행된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촉매 분야 국제 학술지 'ACS 카탈리시스(ACS Catalysi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