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병원들이 의료 인공지능(AI) 경쟁력을 높이려면 병원 간 데이터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병원별로 파편화된 의료 데이터를 연결·통합하지 못하면 AI 도입 효과는 물론 의료 혁신 자체에도 한계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엔리케 마틴스 교수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HIMSS 2026' 현장에서 본지와 만나 “한국 병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높은 의료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제는 병원 간 협력이 없으면 더 큰 혁신을 만들기 어려운 시점이 됐다”면서 “각 병원이 영상 AI, 소화기 AI 등 각자만의 특화 분야를 정해 협력한다면 시장 성장과 기술 혁신을 모두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틴스 교수는 유럽 각국 병원과 연구기관의 의료 데이터를 연결해 연구와 의료 서비스에 활용하는 '유럽 의료데이터공간(EHDS)'을 설계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석학이다. 포르투갈 최초의 최고 의료정보책임자(CMIO) 가운데 한 명이며 포르투갈 디지털보건부 산하기관(SPMS) 회장을 약 7년간 역임했다. 이후 유럽연합(EU) 최고 정책 협력체인 EU e헬스 네트워크 공동의장을 맡아 유럽 보건 데이터 정책을 이끌었다.
그는 한국이 환자 데이터를 통합해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AI 때문이 아니라 '환자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마틴스 교수는 “많은 의료 AI 알고리즘이 특정 병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되므로 다른 병원 환경에서는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데이터 표준화와 병원 간 협력이 이 문제를 해결할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 간 데이터 공유가 어려워 환자 진료의 질 향상에도 한계가 있다”며 “데이터가 통합되면 병원 간 진료 품질을 비교할 수 있고 AI 개발에도 도움이 된다. 이는 AI 도입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EU가 추진하는 EHDS를 대표적인 협력 모델로 꼽았다.
마틴스 교수는 “유럽은 20개가 넘는 언어와 서로 다른 의료 체계를 갖고 있지만 수많은 병원의 의료 데이터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도 데이터 교류가 가능하다면 세계 어디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차원철 삼성서울병원 교수와 함께 '이노베이티브 하스피탈 10(iH10)' 공동 창립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세계 각국 병원이 협력해 공동 연구를 하고, 병원 혁신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는 국제 협력 네트워크다.
마틴스 교수는 10년 후 더 스마트해질 미래 병원을 '키위(KIWI) 병원'으로 명명했다. 지식 기반(Knowledgeable)으로 지능화(Intelligent)되고, 지혜로우며(Wise) 상호운용성(Interoperable)을 갖춘 병원을 이상적인 모델로 꼽았다.
그는 “앞으로 최소 10년은 인간과 AI가 함께 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될 것”이라며 “병원 간 데이터 교환과 협력 능력이 향후 의료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스베이거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