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차 SFS포럼] “AI 붕괴 우려보단 대응이 관건”…정책·조직 역량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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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귤래리티 금융 소사이어티 제9차 회의가 22일 서울 중구 더존을지타워에서 열렸다. 회의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조윤제 연세대 특임교수를 좌장으로 열린 SFS 토론 세션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거품 논쟁을 '붕괴 여부'가 아닌 구조적 전환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전문가들은 AI 거품론의 향방은 기술 자체보다 정책·금융 환경, 데이터 축적 역량, 조직의 대응 방식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유재수 간사는 “신산업이 등장할 때마다 역사적으로 고평가는 반복돼 왔다”며 “거품이 꺼지더라도 본질적 인프라와 투자 성과가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과 통화 환경이 관리되는지가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이어 유 간사는 “중앙은행이 과도한 긴축으로 고평가 된 시장을 한꺼번에 누르려기보다 일부 조정을 통해 실물 투자와 성장 동력을 살리는 방향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제한적인 만큼, 일정 수준의 고평가 국면이 당분간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종섭 교수는 AI 투자 확대 이면에 쌓이고 있는 자본시장 내 차입 구조의 불투명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빅테크 데이터센터 투자는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인 실물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화 금융과 사모신용(프라이빗 크레딧)을 통해 자본시장 전반으로 위험이 분산돼 있다”며 “장기 임대 수익을 담보로 한 구조화 채권이 사모시장 중심으로 쌓이고 있지만, 이 영역은 통계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교수는 “실제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사모시장 플레이어부터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 이후 프라이빗 크레딧의 롤오버 국면에서 어떤 균열이 나타나는지가 AI 거품 논쟁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종원 KDI 초빙연구위원은 “AI 버블을 논할 때 단순히 몇 기업의 주가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관련 기업 전반의 레버리지와 투자 회임기간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AI투자에 대규모 재원이 소요되지만 3-4년만에 교체가 필요할 정도로 회임기간이 짧기 때문에 버블이 누적될 소지는 적을 수 있고 버블이 생기더라도 과거처럼 전면 붕괴보다는 미니 버블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 위원은 “위험이 큰 상황에서 정부와 민간이 투자 분야와 리스크를 어떻게 분담할지가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AI 거품론을 하나의 산업 전체로 판단하는 시각에 대해서는 경계론도 제기됐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는 “AI를 하나로 묶어서 버블이냐 아니냐를 논의하기보다, 어디가 가장 약한 고리인지를 보는 게 훨씬 중요하다”며 “인프라·플랫폼·애플리케이션으로 나눠 보면, 가장 취약한 부분은 애플리케이션 영역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반도체나 클라우드, 플랫폼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수요의 기반이 분명하지만, 애플리케이션은 소비자와 기업이 실제로 비용을 지불할 만큼의 효용이 빠르게 나타날지 불확실성 하다는 설명이다.

유재수 간사도 “엔비디아처럼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이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제조업체, 오픈AI처럼 파운데이션 모델을 운영하는 기업은 비교적 역할이 명확하다”며 “그 외 기업들은 본업에 AI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과연 그만큼의 새로운 수요가 실제로 창출될 수 있는지가 핵심 변수”라고 지적했다.

노동 구조 변화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형년 두나무 부회장은 “AI는 사람의 업무 숙련도와 산출물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다만 그렇다고 기존 인력을 즉각적으로 대체하거나 줄일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현실적인 선택은 인력 감축이 아니라 채용을 멈추고, 기존 인력이 새로운 역할과 역량으로 전환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종규 KB금융그룹 고문은 “노동시장은 더 이상 과거의 관성대로 유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전환됐다”며 “AI 확산으로 시니어와 청년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지만, 인구 감소로 고용 경쟁률이 낮아진다는 점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 전환, 청년층을 AI 인재로 양성하는 교육제도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AI가 고용을 줄이기보다 재배치와 재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례도 소개됐다. 류정혜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은 “이케아는 소비자 상담 영역에서 AI 에이전트를 먼저 도입해 콜센터 업무를 대체했고, 대신 수천 명의 인력을 재배치해 인테리어 컨설팅과 같은 고부가 서비스로 재배치했다”며 “CS는 자동화했지만, 사람은 오히려 부족한 영역으로 이동시켜 매출을 조 단위로 키운 사례”라고 소개했다.

데이터 중심의 AI 경쟁이 심화할수록 기업간거래(B2B) 시장에서 정보 비대칭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종섭 교수는 “모델을 가져와 자체 데이터를 인덱싱하고 내부 데이터로 나눈 솔루션이 늘고 있지만, 출발점 자체가 데이터 사이즈에서 크게 차이 난다”며 “원래 큰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던 쪽에서 훨씬 더 경제적 가치가 나오기 때문에 기업간 정보 비대칭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이 흐름이 계속되면 산업 활성화 측면에서도 몇 개의 거대 데이터 허브 기업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고, 프라이빗 섹터라기보다 공공 영역 성격이 강해지면서 규제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용구 더존비즈온 성장전략부문 대표는 “데이터 영역은 스케일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다”며 “지금 우리가 고민하는 데이터 처리 방식도 7개월 뒤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고,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고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 부사장은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단계가 되면 어떤 서비스의 가치는 편의성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유용성, 또 어떤 것은 차별화된 경험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스케일의 법칙이 작동하면서 비대칭은 필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AI 경쟁력은 기술 도입 속도보다 데이터 축적과 활용 역량에서 갈린다는 제언도 이어졌다.

이종섭 교수는 “한국은 다양한 산업을 가진 대기업 구조 덕분에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한 비즈니스 섹터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며 “모델 측면에서는 늦었을 수 있지만, 잘 정리·분류된 데이터 축에서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을 전략적으로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류정혜 의장은 “AI 시대에 데이터는 쌀이나 원유에 가까운 전략 자산이기 때문에, 이를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최대 화두”라면서 “산업 측면에서는 일반 기업에 데이터를 단순히 제공하라고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센티브 구조 설계가 쟁점”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금융·의료처럼 산업성과 공공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이 두 성격을 결합해 한국만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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