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융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AI는 금융시장에 특이점을 불러올 수 있는 기술로 여겨지지만, 선제적으로 협의 및 연구가 필요한 과제도 산적하다.
전자신문은 21회 스마트금융컨퍼런스를 맞아 국내 AI·금융 전문가들과 함께 AI와 금융산업 미래와 현재를 조망하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선 주요 석학과 금융업 종사자 시각에서 △AI 버블과 금융 △AI가 금융에 미치는 영향 △AI와 금융규제 등 인공지능과 관련된 현안이 심도있게 논의됐다.
[참석자(가나다순)]
김철웅 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
신관호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소사이어티 (SFS) 간사
이종섭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사회=유재수 싱귤래리티 금융소사이어티 (SFS) 간사

△사회(유재수 SFS 간사)=최근 전 세계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가 이른바 'AI 버블' 논쟁이다. 현재의 AI 붐을 혁신의 초입으로 보시는지, 아니면 버블의 징후로 보시는지, 과거 산업혁명·IT버블 사례와 비교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신관호(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현재 AI도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혁명을 가능케 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AI가 낳은 시장 과열도 분명히 존재한다. 경제학자 칼로타 페레즈(Carlota Perez)는 기술혁명과 금융자본 사이클을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 △과잉 투자로 인한 주가 폭등 △금리 인상 등 정책 변화 △수익 악화 △붕괴와 구조조정 5단계로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1차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과 철도 버블, 2차 산업혁명 이후엔 전기 포디즘과 유틸리티 버블, 3차 산업혁명 후 인터넷과 닷컴 버블이 발생했다. 현재 골드만 삭스는 AI 투자로 향후 1조달러 이상 자본 지출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버핏지수는 217%로 IT버블 당시보다 높은 상황이다.

△사회=AI는 이미 현실 경제와 금융 속에 들어오고 있고, 아직 AI버블에 대해 걱정하기엔 이른 상황이라 생각한다. 다만 세계적으로 금융 시장과 현장에선 버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AI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신관호=주도 기업과 진입장벽, 자본구조 등 IT버블과 AI는 몇가지 구조적 차이가 있지만 끊임없는 시장 견제와 정부의 참전은 버블을 확대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시한 국가 주도 AI 과제 플랫폼 구축 행정명령 'Genesis Mission'은 AI 개발이 민간의 상업적 경쟁에서 국가 생존 경쟁으로 격상된 대표 사례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AI 시장에 참여해 기대감을 키우게 되면 버블이 현실화될 수 있다.

◇김철웅(신한은행 상임감사위원)=정부의 과도한 기능은 시장 심사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데에 공감한다. 심사 기능 저해로 인한 버블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종섭(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재무 건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혁신 산업이 진행되지 못하는 경험들을 많이 겪어 왔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버블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혁신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충분한 '재무적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AI가 실질적으로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개인정보·신용정보·전자금융거래 관련 규제 체계와 어떤 방식으로 정합성을 맞춰야 한다고 보는가?
◇김철웅=실제로 유통 등 다른 산업에 비해 금융회사의 AI 활용도는 아직 높지 않다. 이상거래 탐지시스템(FDS)·자금세탁방지(AML)은 정보주체 동의 없이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예외 규정이 있어, 이 분야에서만 AI 활용이 빠르게 발전한 측면이 있다.
최근 금융회사들이 챗봇이나 상담 보조 등 이른바 에이전트형 AI를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 기술이 실제로 소비자에게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한 의사결정을 돕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리스크에 직면해 있다. AI가 판단에 활용하는 정보의 제공·이용 과정에 제약이 많다 보니 금융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여전히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제약 핵심 배경으로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이 있다. 현행 법 체계에서는 원칙적으로 정보주체, 즉 금융소비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개인신용정보를 수집·활용할 수 있다. 결국 소비자가 AI 모델 활용을 위한 동의를 하지 않으면 그 정보는 모델 학습에 쓸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망분리 규제는 AI 도입의 가장 현실적인 제약 중 하나다. 전자금융거래법상 핵심 전산센터는 외부망과 연결할 수 없도록 돼 있어, 상용화된 생성형 AI 서비스를 그대로 쓸 수 없다. 현재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클라우드 환경에서 생성형 AI를 일부 활용하고 있지만, 가명정보·비중요 업무에 한정돼 있어 금융회사 핵심 업무에 AI를 도입하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현재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클라우드 환경에서 생성형 AI를 일부 활용하고 있지만, 가명정보·비중요 업무에 한정돼 있어 금융회사 핵심 업무에 AI를 도입하는 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내년에 시행되는 AI 기본법도 금융권에는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 AI 기본법에는 '고위험 AI' 개념이 들어가는데, 기본권에 영향을 미치는 대출 심사 등이 여기에 포함될 소지가 있다. 고위험 AI로 분류되면 사전 검증과 사전 고지, 위험관리, 설명의무, 이용자 보호방안, AI 보조성 확보, 영향평가 등 여러 의무가 부과된다.

△사회=AI가 한창 활성화되는 흐름 속에서, 최근 잇따른 개인정보 보안 사고 때문에 금융회사가 다시 위축되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 지나치게 안전성과 보안만을 강화하다 보니 사업성과 혁신성을 찾기 어려운 시장이 된 측면이 있다. 그럴수록 'AI를 통해 한국 금융을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초기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이종섭=장기적으로는 규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내부·외부 데이터 활용 방식이 다시 한 번 큰 전환을 맞을 수 있다. 모든 망을 열어 데이터를 한곳에 모으기보다는, 데이터가 있는 곳으로 모델이 다가가 내부 정보를 활용하고, 외부 데이터 기반 결과와 비교·분석하는 하이브리드형 해법이 당분간 주류가 될 것이다.
◇신관호=규제 당국자라고해서 완벽한 규제를 설계할수는 없다. 금융은 원래도 구조가 복잡하고 변화 속도가 빠른데, 여기에 AI라는 기술적으로 더 난이도 높은 요소가 얹혔다. 규제 당국자가 이 복잡한 기술을 완벽히 이해하기도 어렵고, 민간처럼 변화 속도를 따라가려는 유인도 없다. 결국 몇 가지 핵심 원칙만 분명히 지키되, 나머지 영역에서는 시장의 자율적 발전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김철웅=일각에서는 단순히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전자금융거래법은 애초 AI 도입 이전에 만들어진 법령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 과정에서 AI 관련 조항이 조각조각 붙은 수준이어서, 현재 금융회사가 AI를 설계하고 활용하는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기존 법령을 부분적으로 손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금융권에서 AI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별도의 법·규제 체계를 정교하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클라우드 내에서 가명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특례를 허용하고, 상용화된 외부 생성형 AI와의 연결을 제도권 안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 AI 모델 개발·고도화 구간만큼은 일정 요건을 전제로 보다 유연하게 동의를 적용하는 특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후 개별 고객 대상 마케팅·영업 활용 단계에서는 다시 정보주체의 명시적 동의를 엄격히 받는 이원화 구조로 법체계를 손질해야 한다.
△사회=인공지능(AI)이 전통적인 금융의 업무 방식·상품 구조·시장 미시구조 전반을 바꾸어 놓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 금융을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보는가?
◇이종섭=AI가 금융의 룰을 바꾸고 있다.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누가 만들고, 소유하고, 보상받느냐의 문제다.
특히 AI는 금융 의사결정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고 있다. 가격 결정, 트레이딩, 인수합병(M&A) 딜 소싱까지 사람의 직관이 아니라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싸움으로 재편되고 있다. 항공권·호텔처럼 금융상품 가격도 실시간 수요 예측을 반영해 변동하고, 시장 미세구조를 학습한 알고리즘이 인간의 반응 속도를 압도하는 자동매매를 수행한다.
△사회=금융권에서 인공지능 시대 확보해야할 경쟁력은 무엇인가?
◇이종섭=과거에는 '누가 더 뛰어난 판단력을 가졌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앞으로는 '누가 더 나은 데이터를 얼마나 잘 학습시키느냐'가 관건이다.
AI 확산은 데이터 생성·소유·보상 구조도 바꾸고 있다.앞으로 금융 생태계는 데이터를 수집해 오는 수준을 넘어, 개인이 데이터를 생성하고 소유권을 증명하며 보상까지 받는 구조로 재편될 것이다.
자산 토큰화도 핵심 키워드다. 부동산·채권·예술품·기업 재무데이터까지 모든 자산이 24시간 거래 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블록체인은 이 귀중한 자산 데이터를 저장·거래·이전하는 일종의 '데이터 장터' 인프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사회=AI발달은 생산성 확대라는 긍정적인 점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상존한다. 어떤 점이 큰 문제라고 보는가?
◇이종섭=생성형 AI는 정보 생산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다양한 관점'이 사라지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많은 시장참여자가 동일한 모델과 비슷한 데이터를 쓰면 암묵적 담합(tacit collusion)처럼 비슷한 의사결정 구조가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시장 쏠림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
일례로, 위험대비 수익률이 우수한 펀드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여러 기관이 공통된 정보를 바탕으로 강화학습 모델을 돌리면, 결국 비슷한 판단이 반복되며 특정 펀드로 정보와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박진혁 기자 spark@etnews.com, 박유민 기자 newmin@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