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할 무렵, 인공지능(AI)이 몰고 온 급격한 변화는 사회 전반을 흔들고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파도는 더욱 거세져 우리의 상상을 앞지르고 있다. 작년 12월 구글이 제미나이 2.0을 발표하며 AI가 복잡한 연구 계획까지 대신 수행하는 '딥 리서치' 기능을 선보였고, 지난 1월에는 오픈소스 모델 딥시크-R1이 공개돼 수학·코딩 능력에서 글로벌 최상위권 성능을 입증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불과 몇 달 사이에도 AI 분야는 혁신적 발전이 계속되고 있으며, 기술의 진화 속도는 현실 체감을 압도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2025년 전 세계 생성형 AI 지출이 전년 대비 76.4% 증가한 총 6440억달러(약 896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올해 생성형 AI 지출은 서버, 스마트폰, PC 등 하드웨어에 AI 기능이 통합되면서 크게 증가해 전체 생성형 AI 지출 80%가 하드웨어 부문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AI가 생활 속 기기와 서비스 전반에 스며들면서, 창작의 방식 또한 전통적인 도구에서 알고리즘과 데이터로 확장되고 있다. 이로 인해 글쓰기·그림·음악 등 예술 전 분야에서 인간의 손과 AI의 연산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으며, AI는 창작자에게 도구이자 경쟁자이고 동시에 창작의 의미와 저작권의 경계에 의문을 던지는 거대한 화두가 되고 있다.

K팝, K드라마, K웹툰 등 K콘텐츠는 이제 세계적 문화 현상으로 발돋움했다. 음악 차트와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한국 콘텐츠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웹툰과 게임 등은 새로운 한류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저작권 기반 산업의 수출 확대를 넘어 문화 확산과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로 이어지며, AI 기술과 디지털 플랫폼의 발달은 그 속도를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AI 환경에 능동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가 콘텐츠 제작과 유통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전통적인 저작권 산업의 구조에도 강력한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제저작권협회연맹(CISAC)이 2024년 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약 30억유로(약 5조원) 규모였던 음악 분야 AI 시장은 2028년 640억유로(약 105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주요 국제 영화제에서도 AI가 만든 단편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출품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AI의 등장은 저작권 산업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끄는 전환의 계기다. AI 산출물과 인간의 창작물이 공존하는 환경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실효적이면서도 장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지혜로운 해법이다.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기술 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권리 보호와 기술 발전이 균형을 이룰 때, 저작권은 단순한 지식재산을 넘어 창작 생태계와 산업 혁신을 함께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생성형 AI가 급격히 확산된 2023년 초부터 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국내 AI 개발·서비스사업자와 저작권계를 아우르는 협력적 제도개선 플랫폼으로서 'AI-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구성·운영해 왔다. 2023년에는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를 통해 AI 개발사, 저작권자, AI 이용자 등 주요 이해 관계자에게 저작권에 관한 유의 사항을 안내하고, 이를 영문으로 제작·배포해 국제적 논의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이어 지난 6월에는 '생성형 AI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 등록 안내서'와 '생성형 AI 결과물에 의한 저작권 분쟁 예방 안내서'를 발간해 제도적, 실무적 관점에서 복잡한 저작권 쟁점을 정리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분쟁을 예방하고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워킹그룹은 AI 모델의 학습에서 산출물 활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쟁점과 정책 개선 과제를 논의했다. 학습 단계에서는 학습데이터의 이용 방안과 목록 공개를, 산출물 단계에서는 표시·침해·등록 문제를 중심으로 심층적인 논의를 진행하면서 AI-저작권 제도 개선을 위한 구체적·실질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아울러 3년 연속으로 AI와 저작권을 주제로 '서울 저작권 포럼'을 개최하며 각국 정부, 글로벌 AI 선도 기업가, 주요 학계 전문가와 최신 논의 동향을 공유하고, 선도적 정책 논의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국제 사회의 모범적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나아가 워킹그룹은 올해 학습데이터 거래활성화 분과를 신설해 AI 개발사와 권리자의 원활한 협상을 촉진하며 학습데이터 이용에 관한 표준과 모범사례를 확립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위원회는 AI 기업이 학습용 데이터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학습과 관련된 저작물의 권리 확인, 계약 지원, 법률·정책 자문, 협상 중재 등 서비스 제공을 위한 AI 특화 상담·컨설팅·분쟁조정 창구 마련 등을 통해 AI 기업과 저작권자 간 학습을 위한 저작물 이용 관련 이견을 좁혀나갈 수 있는 실질적 협력 기반을 구축할 계획이다.
한편 이 거대한 시대적 변화를 마주하며, 위원회는 AI 환경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8월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원화돼 있던 저작권 이용정보 통합전산망 구축·운영 업무와 저작권 사용료 심의 기능을 하나로 묶어, 위원회가 보유한 다양한 저작권 이용 정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양한 권리의 사용료 및 수수료 규정 심의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권리자와 이용자, 산업계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제도의 기반을 마련하고 적시에 권리를 처리해 국민들이 편리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있다. 바로 창작의 힘이다. 사람이 빚어낸 작품은 명품이 되고, AI가 만들어낸 산출물은 새로운 시장과 기회를 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위원회는 산업계가 AI 학습데이터를 보다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저작물 권리관리정보를 보강하고 상이한 항목을 표준화하여 권리자 확인에 소요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과감히 줄이고, 창작과 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실질적 인프라를 확립하겠다. 특히 이같은 인프라가 특정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수 있도록 각 분야의 저작권 집중관리단체와 긴밀히 협력해 추진하겠다. 아울러 위원회는 세계적 흐름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WIPO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 및 각국과의 교류를 적극 확대해 글로벌 저작권 질서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
강석원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 swkang@copyright.or.kr
〈필자〉강석원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산업과장, 저작권국장을 역임하며 저작권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아왔으며 기획조정실장으로서 조직의 발전과 효율성을 높이는데 기여해왔다. 건국대사대부고,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과학기술원 공학석사, 박사와 미 퍼듀대에서 MBA 석사를 했다. 기술고시 29회에 합격해 1995년 정보통신부 국제협력관실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